기유각서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감옥 사무를 일본에 넘긴 각서입니다.
배경
정미 7조약의 부속 각서에는 사법과 감옥 사무를 일본인 관리가 맡도록 하는 내용이 이미 들어 있었습니다. 1907년 이후 재판소와 감옥에는 일본인 판검사와 관리가 대거 임명됐습니다. 일본은 이를 더 나아가 사법권 자체를 넘겨받으려 했습니다.
1909년 7월 6일 일본 내각은 ‘적당한 시기에 한국 병합을 단행한다’는 방침을 결정했습니다. 병합에 앞서 한국 정부가 가진 기능을 하나씩 일본으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했고, 재판과 감옥은 의병과 항일 인사를 처벌하는 데 직접 관련된 분야였습니다.
전개
1909년 7월 12일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가 ‘한국 사법 및 감옥 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에 서명했습니다. 이 해가 기유년이어서 기유각서라 부릅니다.
각서는 한국의 사법 제도와 감옥 사무가 완비될 때까지 이를 일본 정부에 맡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각서는 모두 5개 조항으로 이뤄졌습니다. 한국의 사법과 감옥 사무를 일본 정부에 맡기고,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도 재판소와 감옥의 관리로 임용할 수 있게 하며, 한국 신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한국 법령을 적용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같은 달 30일에는 대한제국의 군부도 폐지되고, 황궁을 지키는 친위부만 남았습니다.
결과와 의미
대한제국의 법부와 재판소가 폐지되고, 통감부 사법청과 통감부 재판소가 재판을 맡게 됐습니다. 의병과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판도 일본의 법정에서 이뤄지게 됐습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외교권과 군대에 이어 사법권까지 잃었고, 이듬해 경찰권마저 넘어갔습니다.
1909년 10월 말 법부와 한국 재판소가 문을 닫았고, 11월 1일부터 통감부 재판소가 재판을 맡았습니다. 통감부 재판소는 고등 법원·공소원·지방 재판소·구 재판소로 짜였고, 판검사 대부분이 일본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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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기
“한국의 사법과 감옥 사무가 완비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 한국 정부는 사법과 감옥 사무를 일본국 정부에 위탁한다.”
인물
소네 아라스케1849~1910
이완용1858~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