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연표

근대› 개항기

고종 친정과 강화도 조약

고종이 직접 정치를 맡은 뒤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고, 조선은 강화도 조약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수신사를 일본에 보내 바깥 세상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기간
1874.1 ~ 1879.12.31 · 5년 11개월
누가 다스렸나
임금 고종 ·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이 정권 주도
담긴 것
사건 4 · 영상 29 · 영화·드라마 4

이 시기를 한 번에 보는 영상 5편

여러 사건을 이어서 다루는 영상입니다. 옆으로 넘겨 보세요.

해설·교양 · 강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 암군인가 개혁 군주인가, 고종은 어떤 왕이었을까

사피엔스 스튜디오 · 169.3만회 ·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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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재위 기간을 훑는 강연입니다.

1864.1.21 ~ 1907.7.20 · 운요호 사건 → 조일 수호 조규 부록·조일 무역 규칙

해설·교양 · 해설

흥선대원군부터 한일 병합까지 근대 한국사 한번에(지도 애니메이션)

로빈의 역사 기록 · 97만회 · 1: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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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부터 병합까지 근대사를 90분에 훑는 통합 영상입니다.

1864.1.21 ~ 1910.8.29 · 운요호 사건 → 조일 수호 조규 부록·조일 무역 규칙

해설·교양 · 다큐

KBS 한국사전 — 흥선대원군, 왜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나

KBS 히스토리 · 95.5만회 · 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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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과 고종의 대립을 축으로 집권부터 을미사변 무렵까지 다룹니다.

1864.1.21 ~ 1895.10.8 · 운요호 사건 → 조일 수호 조규 부록·조일 무역 규칙

해설·교양 · 강의

7일의 기적 5일차 2교시 — 개항부터 갑신정변까지

최태성 1TV · 79.7만회 ·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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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부터 갑신정변까지의 기출 개념을 한 번에 정리한 강의입니다.

1875.9.20 ~ 1885.4.18 · 운요호 사건 → 조일 수호 조규 부록·조일 무역 규칙

해설·교양 · 다큐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EBS 다큐 · 70.5만회 · 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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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외교 선택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 일부입니다.

1864.1.21 ~ 1907.7.20 · 운요호 사건 → 조일 수호 조규 부록·조일 무역 규칙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드라마 4편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드라마 · 1982· 제목만

「풍운」

배경 1863 ~ 1898

KBS 대하드라마(51부작). 유주현의 소설 『대원군』이 원작으로, 흥선대원군(이순재)의 집권과 쇄국을 그렸습니다

드라마 · 2001· 공식 영상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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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66 ~ 1895.10.8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의 일생을 따라 대원군과의 갈등부터 을미사변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드라맛집] 내가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 몰아보기

KBS Drama Classic · 12.3만회 ·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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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2018· 공식 영상

「미스터 션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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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71.6.1 ~ 1907.8

tvN.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이 미군 장교가 되어 돌아온 이야기. 의병 운동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최유진♥고애신 명장면 하이라이트

TVING 티빙 · 159.3만회 ·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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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09· 제목만

「불꽃처럼 나비처럼」

배경 1873 ~ 1895.10.8

명성황후와 호위 무사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엮은 영화

사건 연표 4건

AI 분석 — 영상마다 제목·설명문·채널을 붙은 사건과 대조해 일치도(그 사건을 얼마나 정면으로 다루나)와 추천도(일치도·출처·설명의 충실함·조회수)를 매겼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본 결과가 아니라 추정치입니다(2026-09-25 기준). 영상은 사실 기록(그때 찍은 기록·방송 뉴스), 해설·교양(다큐·강의·교양 예능), 창작(드라마·영화 — 허구가 섞임)으로 나눴습니다.

앞 시기에서 이어지는 일: 청전 유통 (~1874)

  1. 1875

    9.20

    전쟁음력 8월 21일

    운요호 사건

    일본 군함 운요호가 허가 없이 강화도 초지진에 접근해 조선 수비대와 포격전을 벌이고, 영종도에 상륙해 약탈했습니다. 일본은 이 충돌을 빌미로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배경

    1873년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직접 정치를 맡으면서 조선 조정 안에서는 외교 문서 문제로 막혀 있던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메이지 유신 뒤 일본이 보낸 국서에 ‘황(皇)’·‘칙(勅)’ 같은 글자가 들어가 조선이 접수를 거부한 서계 문제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 안에서는 무력으로 조선을 굴복시키자는 정한론이 1873년 한 차례 밀려났지만, 정부는 기회를 보아 조선을 개항시키려 했습니다. 1854년 미국 페리 함대가 일본을 연 방식, 곧 군함을 앞세운 압박을 그대로 조선에 쓰려 한 것입니다.

    그사이 일본은 1874년 타이완에 군대를 보내 무력을 앞세운 대외 정책을 시험했습니다. 1875년 초에는 외무성 관리 모리야마 시게루가 부산 왜관에 와서 국교 문제를 협상했지만, 문서 형식과 접견 예절을 둘러싼 이견으로 협상이 멈췄습니다. 일본 정부 안에서는 협상으로는 길이 열리지 않으니 군함을 보내 압박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습니다.

    전개

    1875년 5월 무렵부터 운요호 등 일본 군함이 부산 앞바다에서 무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같은 해 9월 20일(음력 8월 21일) 운요호는 서해안 측량과 식수 보급을 내세워 강화도 초지진 앞까지 작은 배를 보냈고, 조선 수비대가 경고 포격을 하자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운요호는 이튿날 초지진에 포격을 퍼부은 뒤 영종도의 영종진에 군대를 상륙시켰습니다. 신식 무기를 가진 일본군에 조선 수비대는 크게 패해 수십 명이 전사했고, 일본군은 성을 불태우고 대포와 무기를 빼앗아 돌아갔습니다.

    운요호는 245톤 규모의 군함으로, 9월 12일 나가사키를 떠나 조선 서해안으로 향했습니다. 교전은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 동안 이어졌습니다. 22일 영종진을 공격할 때 조선 측은 35명이 전사하고 16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일본군은 대포 38문 등 무기와 군수품을 포로들에게 운반하게 한 뒤 풀어 주고 관아와 민가에 불을 질렀습니다.

    결과와 의미

    허가 없이 남의 나라 연안에 들어와 먼저 도발한 쪽은 일본이었지만, 일본은 오히려 자기 배가 공격받았다며 책임을 묻는 사절과 함대를 보내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 충돌은 이듬해 강화도 조약 협상의 구실이 됐습니다.

    운요호는 9월 24일 나가사키로 돌아갔고, 일본 해군성은 10월 8일 교전 경위를 발표했습니다. 발표 내용은 식수를 구하러 갔다가 먼저 공격받았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항해 기록과는 달라 뒷날 연구자들은 국제법상 문제가 될 부분을 감추려 보고를 고쳐 썼다고 지적합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74년일본이 타이완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무력으로 이웃 지역에 압력을 넣는 방식이 처음 쓰였습니다.
    2. 1875년 초모리야마 시게루가 부산 왜관에서 국교 협상을 벌였으나 문서와 예절 문제로 진척이 없었습니다.
    3. 1875년 5월 무렵운요호 등 일본 군함이 부산 앞바다에 들어와 포 사격 훈련을 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4. 1875년 9월 12일운요호가 나가사키를 떠나 조선 서해안으로 향했습니다.
    5. 9월 20일운요호의 작은 배가 강화도 초지진 앞까지 들어왔고, 조선 수비대가 포를 쏘아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6. 9월 21일운요호가 초지진에 포격을 퍼부었습니다.
    7. 9월 22일일본군이 영종진에 상륙해 성을 함락했습니다. 조선 측 35명이 전사하고 16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대포 38문을 빼앗겼습니다.
    8. 10월 8일일본 해군성이 ‘식수를 구하러 갔다가 공격받았다’는 취지의 보고를 발표했습니다.
    9. 1876년 2월구로다 기요타카가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와서 이 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며 조약 체결을 요구했습니다.

    인물

    • 이노우에 요시카(井上良馨)1845~1929

      운요호 함장으로 강화도·영종도 교전을 지휘했습니다.

      사쓰마 출신 일본 해군 군인입니다. 운요호 사건 뒤 해군에서 승진을 거듭해 뒷날 해군 원수에 올랐습니다.

    • 모리야마 시게루(森山茂)

      운요호 사건 직전 부산 왜관에서 국교 협상을 맡았고, 협상이 막히자 군함 파견을 건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지 정부 외무성의 관리로, 1870년대 조선과의 국교 교섭을 여러 차례 맡았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협상 때에도 일본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더 알아두기

    ‘식수를 구하러 왔다’는 주장
    일본은 물을 얻으려 다가갔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강화도는 수도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허가 없는 외국 배의 접근을 막는 곳이었고, 일본 쪽 기록에도 측량 목적이 드러나 있어 의도된 도발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오늘날 남은 흔적
    인천 강화군의 초지진은 사적으로 지정돼 있으며, 병인양요·신미양요·운요호 사건 때의 포격 흔적이 남은 소나무와 성벽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때 주변에서는
    1875년 일본은 러시아와 사할린·쿠릴 열도 교환 조약을 맺어 북쪽 국경을 정리했습니다. 북방 문제를 매듭지은 일본은 조선 문제에 힘을 쏟을 여유가 생겼고, 운요호 사건은 그해 가을에 일어났습니다.

    해설·교양 · 다큐

    역덕이슈 오늘 I 81 1875년 9월 20일 운요호사건 발발

    KBS 히스토리 · 1.8만회 ·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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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1875년 9월 20일 초지진·영종진 포격전을 날짜 순으로 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30 일본의 운요호사건 조작

    KBS 히스토리 · 6,601회 ·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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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함장 보고서로 운요호 사건이 꾸며진 과정을 짚습니다.

    해설·교양 · 만화

    일본 군함의 조선 침공, 운요호 사건

    지니스쿨 역사 · 82.9만회 ·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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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운요호 사건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조선의 몰락을 예고한 신호탄? | 조선 개항 시작과 운요호 사건 [설민석의 한국통사 EP.49] | 매주 월요일 공개

    설민석 Seol Min Seok · 2.3만회 ·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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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민석 한국통사로 개항의 시작과 운요호 사건을 다룹니다.

    해설·교양 · 예능

    일본의 무력 침공 '운요호 사건'으로 인한 불평등 조약 "강화도 조약" #벌거벗은세계사 EP.36 | tvN 220301 방송

    tvN Joy · 4.1만회 ·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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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운요호 사건에서 강화도 조약까지를 다룬 방송 클립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 l 근대 한국사 5부

    로빈의 역사 기록 / Robin's Historical Records · 5.8만회 ·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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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을 이어서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해설

    "강화도 조약" 이전 일본과 조선의 상황

    엠장기획 · 13.6만회 · 1: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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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운요호가 조선 해안을 돌며 충돌한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고1 한국사] 3단원 3차시│운요호 사건│강화도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

    워니비 · 8.1만회 ·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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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요호 사건을 강화도 조약·조미 조약과 함께 가르치는 수업입니다.

  2. 1876

    2.27

    조약음력 2월 3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조선이 외국과 맺은 첫 근대 조약입니다. 부산 외 두 항구를 열고, 일본에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 첫 조항에서 '조선은 자주국'이라 적었는데, 청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 부산에 이어 원산(1880)과 인천(1883)이 열렸습니다.
    • 같은 해 맺은 부속 조약과 무역 규칙으로 일본 화폐 유통과 양곡의 무제한 유출이 허용됐고, 협상 대표끼리 주고받은 공문으로 무관세 무역이 정해졌습니다.

    배경

    운요호 사건 뒤인 1876년 1월, 일본은 구로다 기요타카를 전권 대신으로 삼아 군함과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에 와서 조약 체결을 요구했습니다. 이미 페리 함대에 개항당한 경험을 조선에 되풀이한 것입니다.

    조정의 의견은 나뉘었습니다. 우의정을 지낸 박규수는 일본과 관계를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역관 오경석은 청에서 보고 들은 서양 세력의 힘을 알리며 개항 쪽에 힘을 실었습니다. 반대로 최익현은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엎드려 ‘일본은 서양 오랑캐와 같다(왜양일체)’며 개항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됐습니다. 청 역시 조선이 일본과 충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 왔습니다.

    전개

    협상은 강화부 연무당에서 조선의 접견 대관 신헌과 일본의 구로다 기요타카 사이에 열렸습니다. 일본은 함포 사격 연습을 하며 압박했고, 조선은 결국 1876년 2월 27일(음력 2월 3일) 모두 12개 조항의 조일 수호 조규에 서명했습니다.

    주요 조항은 이렇습니다. 제1관은 ‘조선은 자주의 나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적었습니다. 제4·5관은 이미 왜관이 있던 부산 외에 두 항구를 더 열게 했는데, 이것이 뒷날 원산과 인천이 됐습니다. 제7관은 일본이 조선 연안을 자유롭게 측량할 수 있게 했고, 제10관은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저지른 범죄를 일본 관리가 재판하게 했습니다(영사 재판권).

    세부 사항은 뒤로 미뤄져 같은 해 8월 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규칙으로 정해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조선이 국제법 형식을 갖춰 외국과 맺은 첫 근대 조약입니다.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은 일본에만 주어진 일방적 권리였기 때문에, 오늘날 교과서와 학계는 이 조약을 불평등 조약으로 봅니다.

    제1관의 ‘자주의 나라’ 문구는 조선을 청의 영향에서 떼어 내려는 일본의 계산에서 나왔습니다. 조선 쪽은 이를 전통적인 교린 관계를 되살린 것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근대 조약이 어떤 권리를 넘겨주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서명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조약 이후 조선은 부산(1876), 원산(1880), 인천(1883)을 차례로 열었고, 미국·영국·독일 등 서양 나라와도 조약을 맺으며 국제 질서에 들어섰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76년 1월구로다 기요타카가 이끄는 일본 사절단이 7척의 배를 이끌고 강화도 앞바다로 향했습니다.
    2. 1876년 2월 11일 무렵강화부 연무당에서 조선의 신헌과 일본의 구로다가 첫 회담을 열었습니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의 책임을 조선에 물었습니다.
    3. 1876년 2월(음력 1월)최익현이 도끼를 지니고 궁궐 앞에 엎드려 개항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됐습니다.
    4. 1876년 2월 27일(음력 2월 3일)12개 조항의 조일 수호 조규에 서명했습니다.
    5. 1876년 5월답례 사절로 김기수가 이끄는 1차 수신사가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6. 1876년 8월 24일(음력 7월 6일)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규칙이 맺어져 세부 사항이 정해졌습니다.
    7. 1880년·1883년조약 제5관에 따라 원산(1880)과 인천(1883)이 차례로 개항했습니다.

    사료로 읽기

    “朝鮮國自主之邦, 保有與日本國平等之權.”
    — 조일 수호 조규 제1관(1876)조선국은 자주국이며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 청과 조선의 관계를 끊어 내려는 일본의 의도가 담긴 조항으로 해석됩니다.
    “조선국 연해의 섬과 암초는 종전에 자세히 조사한 적이 없어 지극히 위험하므로 일본국 항해자가 수시로 연해를 측량해 그 위치와 깊이를 재고 지도를 만들어 양국 항해자로 하여금 위험을 피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한다.”
    — 조일 수호 조규 제7관(1876), 우리역사넷 번역항해 안전을 명분으로 일본에 조선 해안을 마음대로 측량할 권리를 준 조항입니다. 정확한 해도는 군사 작전에도 쓰일 수 있었습니다.

    인물

    • 신헌1810~1884

      조선 측 접견 대관으로 강화도에서 일본과 협상하고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무관 출신이면서 실학자 정약용·김정희 등과 교류한 학자형 장수입니다. 병인양요 때 강화 방어를 맡았고,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도 조선 대표로 나섰습니다.

    • 박규수1807~1877

      조정에서 일본과의 수교를 주장해 개항 결정에 힘을 보탰습니다.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입니다. 1866년 평안도 관찰사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지만, 청에 다녀온 경험으로 문호 개방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 젊은이들에게 개화사상을 전해 개화파의 스승으로 불립니다.

    • 오경석1831~1879

      역관으로 협상 실무를 돕고 개항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청을 여러 차례 오가며 『해국도지』 같은 서양 소개 책을 들여온 중인 역관입니다. 친구인 의원 유홍기와 함께 초기 개화사상을 퍼뜨린 인물로 꼽힙니다.

    •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1840~1900

      일본 전권 대신으로 함대를 이끌고 와 조약을 받아 냈습니다.

      사쓰마 출신 메이지 정부의 핵심 인물로 홋카이도 개척을 이끌었고, 뒷날 일본 총리를 지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개항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불가피한 근대 편입으로 보는 쪽

    서양 열강이 동아시아를 개방시키던 흐름 속에서 문을 계속 닫아 두기는 어려웠고, 개항은 조선이 근대 국제 질서와 문물을 받아들이는 출발점이 됐다고 봅니다. 박규수 같은 조정 안의 개항론자들이 스스로 판단해 받아들였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준비 없는 강요된 개방으로 보는 쪽

    군함의 위협 속에서 국제법과 관세 제도에 대한 이해 없이 맺어져 영사 재판권·측량권·무관세 무역 같은 권리를 내주었고, 이후 일본의 경제·군사 침투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개방의 시점과 방식을 조선이 스스로 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개항을 반대한 위정척사론의 평가

    자주 수호의 의미를 강조하는 쪽

    최익현 등의 개항 반대는 일본의 침략 의도를 일찍 꿰뚫어 본 것이며, 뒷날 의병 운동으로 이어진 반외세 저항 정신의 출발점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보수적 한계를 강조하는 쪽

    성리학 질서를 지키는 데 초점이 있어 서양 기술과 제도를 배울 필요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변화에 대응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봅니다.

    더 알아두기

    불평등 조약이란
    조약을 맺은 두 나라가 서로 같은 권리를 갖지 않고 한쪽만 특권을 누리게 한 조약입니다. 강화도 조약에서 영사 재판권은 일본인에게만 적용됐고, 조선인이 일본에서 같은 권리를 누린다는 조항은 없었습니다.
    이름이 여럿인 까닭
    정식 이름은 조일 수호 조규이고, 맺은 곳을 따 강화도 조약, 병자년에 맺었다고 병자 수호 조약이라고도 부릅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불평등 조약치외 법권(영사 재판권)조공·책봉(사대)

    해설·교양 · 강의

    [심화별개념1]_ 29-1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29강 개항기(개항~갑신정변)|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최태성 1TV · 9.5만회 · 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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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조일 수호 조규 조항을 정면으로 설명하는 최태성 강의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

    최태성 1TV · 7.4만회 ·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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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강화도 조약 조항과 의미를 따로 떼어 설명하는 강의입니다.

    해설·교양 · 만화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 강화도 조약(역사만화 76화)

    공부왕찐천재 · 16.2만회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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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강화도 조약의 체결 과정과 불평등 조항을 설명하는 만화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한국인 열불나는 강화도조약|운요호 사건과 조일수호조규|한국사 근현대사| 한능검 벼락치기|한능검 단기합격|한능검 공부법|에듀윌 한국사|최한나 교수

    에듀윌 한국사능력검정 · 1.2만회 ·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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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요호 사건과 조일 수호 조규를 중심으로 한 강의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29 운요호사건과 강화도조약

    KBS 히스토리 · 2만회 ·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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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영상한국사로 운요호 사건에서 조약 체결까지 이어 봅니다.

    해설·교양 · 해설

    조선이 니들 동네 북이냐? 강화도 조약·임오군란 — 한국사 요약 8편

    아그래 역사 · 31.1만회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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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조약부터 임오군란까지를 개인 채널이 요약합니다.

    1876.2.27 ~ 1882.8.30 ·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 조일 수호 조규 부록·조일 무역 규칙

    해설·교양 · 예능

    명성황후 시해 일본인들, 무죄로 풀려난 이유? 강화도 조약 때문! | 설민석 한국사 강사 [어쩌다어른]

    O tvN · 4.9만회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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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어른에서 설민석이 강화도 조약의 영사 재판권을 짚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보기만 해도 10점 UP! 한국사 벼락치기 강화도조약과 개항 편|흥선대원군 실각, 운요호 사건, 조일수호조규|한능검|한국사 정리|한국사탐구생활|에듀윌 한국사능력검

    에듀윌 한국사능력검정 · 1.6만회 ·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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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조약과 개항을 정리하는 요약 강의입니다.

  3. 5월

    외교음력 4월

    1차 수신사 파견

    강화도 조약 직후 김기수를 수신사로 일본에 보냈습니다. 개항 뒤 처음으로 일본의 근대 시설을 둘러보고 『일동기유』를 남겼습니다.

    배경

    강화도 조약을 맺은 뒤 일본은 조선이 답례 사절을 보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조선은 조선 통신사 시절 이후 약 60여 년 만에 일본에 공식 사절을 보내기로 하고, 이름을 ‘믿음을 닦는 사절’이라는 뜻의 수신사로 정했습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조약이 어떤 권리와 의무를 낳는지, 일본이 메이지 유신 뒤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통신사가 1811년 쓰시마까지만 다녀온 뒤로 조선 관리가 일본 본토를 직접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사절은 일본의 실제 사정을 살필 첫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전개

    예조 참의 김기수가 이끈 사절단은 1876년 음력 4월 부산에서 일본 기선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도쿄에 약 20일 머물며 메이지 천황을 만나고, 철도·전신·군사 학교·공장 같은 근대 시설을 둘러봤습니다.

    일본은 사절단에게 서양식 제도를 적극 보여 주려 했지만, 김기수는 옛 통신사의 예법에 따라 행동하며 필요한 것 이상을 살피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절단은 70여 명 규모였습니다. 부산에서 일본이 내준 기선을 타고 요코하마에 닿은 뒤, 1872년 개통한 요코하마~도쿄 철도를 타고 도쿄에 들어갔습니다. 김기수는 기차와 증기선, 전신 같은 처음 보는 문물을 자세히 적었습니다.

    일본 쪽에서는 외무 관리들이 사절단을 맞아 군사 훈련, 학교, 공장 등을 적극 보여 주고 서양식 제도를 배우라고 권했습니다. 김기수는 이런 권유에 대체로 조심스럽게 응하며, 조약 이후의 교류 절차를 확인하는 데 무게를 두었습니다.

    결과와 의미

    김기수는 돌아와 보고서 『일동기유』와 『수신사일기』를 남겼습니다. 일본이 짧은 시간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곧바로 조정의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일본 시찰은 1880년 2차 수신사와 1881년 조사 시찰단 때부터였습니다.

    『일동기유』에는 일본 사람들의 생활과 제도, 서양식 군대의 모습이 담겨 있어 오늘날 개항 직후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자료로 쓰입니다. 다만 사절단의 보고는 개항 이후 일본을 경계하는 분위기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76년 2월 27일강화도 조약을 맺은 뒤 일본이 조선의 답례 사절을 요청했습니다.
    2. 1876년 음력 4월예조 참의 김기수를 수신사로 임명하고, 사절단이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3. 1876년 5월 무렵부산에서 일본 기선에 올라 요코하마에 닿았고, 기차를 타고 도쿄에 들어갔습니다.
    4. 도쿄 체류 약 20일메이지 천황을 만나고 관청·군사 시설·학교·공장 등을 둘러봤습니다.
    5. 1876년 여름귀국해 고종에게 보고하고, 뒤에 『일동기유』와 『수신사일기』를 정리했습니다.
    6. 1880년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가면서 일본 시찰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인물

    • 김기수

      1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고 『일동기유』를 남겼습니다.

      문과에 급제한 관리로, 개항 뒤 처음 일본에 간 조선 사절의 대표입니다. 그의 기록은 개항 직후 조선 관리가 일본의 변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알려 주는 자료로 쓰입니다.

    • 메이지 천황1852~1912

      도쿄에서 수신사 김기수 일행을 접견했습니다.

      일본의 제122대 천황으로 1867년 즉위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에 메이지 유신이 추진돼 일본은 근대 국가 체제를 갖추었고, 청일 전쟁·러일 전쟁과 한국 병합도 이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더 알아두기

    통신사와 수신사의 차이
    조선 통신사는 조선 후기에 쇼군이 바뀔 때 등 12차례 일본에 간 외교 사절로, 조선이 문화적으로 앞선다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수신사는 근대 조약 이후의 사절로, 일본의 새 문물을 살피는 역할이 점점 커졌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박종인의 땅의 역사] 212. 증기기관을 마귀 취급한 수신사 김기수(+모로코!)

    박종인의 땅의 역사 · 1.3만회 ·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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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수신사 김기수의 일본 견문을 자세히 다룬 박종인 기자의 해설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근현대사] 수신사 정리 (76~83) |한국사 암기법 | 공무원 단기 공부법|한능검

    단호박암기한국사V 한국사 암기법 · 1,470회 ·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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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차 수신사를 암기용으로 짧게 정리한 강의입니다.

  4. 8월

    조약

    조일 수호 조규 부록·조일 무역 규칙

    강화도 조약의 세부 규정입니다.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를 쓸 수 있게 하고, 양곡을 무제한 내보낼 수 있게 했으며, 수출입 상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았습니다.

    배경

    강화도 조약은 큰 원칙만 정하고 개항장 운영과 무역의 세부 사항은 뒤에 따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1876년 여름 일본 대표 미야모토 고이치가 서울에 와서 조선의 강수관 조인희와 협상했습니다.

    강화도 조약 제11관은 통상에 관한 규정을 따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무역이 나라 살림과 백성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경험이 거의 없었고, 서양 여러 나라가 관세와 통상 조건을 어떻게 정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협상에 나섰습니다.

    전개

    1876년 8월(음력 7월) 두 문서가 맺어졌습니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은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다닐 수 있는 범위를 부두에서 10리(약 4km) 안으로 정하고,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를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일본 외교관이 조선 내지를 여행할 수 있는 권리도 넣었습니다.

    조일 무역 규칙은 일본 정부 소속 선박에 항구세를 물리지 않고, 쌀과 잡곡을 수출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 협상 과정에서 주고받은 공문으로 수출입 상품에 당분간 관세를 매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은 11개 조관, 조일 무역 규칙은 11칙으로 이뤄졌습니다. 부록은 일본인이 조선 동전을 쓰고 가져갈 수 있게 해, 일본 화폐와 조선 화폐가 개항장에서 함께 돌게 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관세가 없으니 조선 정부는 무역에서 수입을 거두지 못했고, 값싼 영국산 면직물이 일본 상인을 거쳐 들어왔습니다. 쌀이 일본으로 대량 빠져나가 곡물값이 오르는 문제도 생겼습니다.

    조선은 뒤늦게 관세의 중요성을 알고 교섭을 벌여, 1883년 조일 통상 장정에서 관세를 매기고 곡물이 부족할 때 수출을 막을 수 있는 방곡령 조항을 넣었습니다.

    1878년 조선은 부산 두모진에 세관을 두고 일본 상인과 거래하는 조선 상인에게 세금을 거두려 했지만, 일본이 군함을 보내 항의하자 곧 거둬들였습니다. 조약에 없는 방식으로 세금을 걷기도 어려웠던 셈입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76년 2월 27일강화도 조약이 맺어지며 통상 세부 사항은 뒤에 따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2. 1876년 여름일본 대표 미야모토 고이치가 서울에 와서 강수관 조인희와 협상을 벌였습니다.
    3. 1876년 8월 24일(음력 7월 6일)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규칙에 서명했습니다. 같은 무렵 대표끼리 주고받은 공문으로 관세를 당분간 매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4. 1878년조선이 부산 두모진에 세관을 두고 세금을 거두려 했으나 일본의 항의로 곧 거둬들였습니다.
    5. 1882년 8월제물포 조약과 함께 맺은 조일 수호 조규 속약으로 개항장 통행 범위가 사방 50리로 넓어졌습니다.
    6. 1883년 7월 25일(음력 6월 22일)조일 통상 장정 42관이 맺어져 관세가 매겨지고, 곡물 수출을 막을 수 있는 방곡령 조항(제37관)이 들어갔습니다.

    사료로 읽기

    “이후 조선국 항구에 거주하는 일본 인민은 양미(糧米)와 잡곡을 수출, 수입할 수 있다.”
    — 조일 무역 규칙 제6칙(1876), 우리역사넷 번역쌀과 잡곡의 수출입을 막을 장치 없이 허용한 조항입니다. 개항 뒤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 곡물값이 오르는 원인이 됐습니다.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모든 선박은 항세(港稅)를 납부하지 않는다.”
    — 조일 무역 규칙 제7칙(1876) 가운데, 우리역사넷 번역상선에는 항세를 물렸지만, 일본 정부 소속 선박은 면제했습니다.

    인물

    •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

      일본 대표로 서울에 와서 부록과 무역 규칙을 협상했습니다.

      메이지 정부 외무성의 관리로 조선 문제를 맡았습니다. 강화도 조약의 세부 규정을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하는 데 관여했습니다.

    • 조인희

      조선 측 강수관으로 협상에 나서 부록과 무역 규칙에 서명했습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입니다. 협상 과정에서 관세를 당분간 매기지 않는다는 공문을 주고받은 일로, 뒷날 관세 주권을 놓친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더 알아두기

    관세란
    나라 밖에서 들어오거나 나가는 물건에 매기는 세금입니다. 정부 수입이 되고, 값싼 외국 상품이 한꺼번에 밀려와 국내 생산자가 무너지지 않도록 막는 역할도 합니다. 관세를 매길 권리를 잃는 것은 경제 주권의 큰 부분을 잃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무관세는 조약 본문이 아니었다
    무관세 무역은 조일 무역 규칙 조항에 직접 적힌 것이 아니라 협상 대표끼리 주고받은 공문에 담겼습니다. 당시 조선 대표가 관세의 의미를 잘 몰랐다는 점이 흔히 지적됩니다.

    해설·교양 · 강의

    [심화별개념4]_ 29-1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29강 개항기(개항~갑신정변)|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PT

    최태성 1TV · 3.7만회 ·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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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성 강사가 조일 수호 조규와 후속 규정을 함께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근현대사] [조약2] 강화도조약, 부록, 무역규칙 |한국사 암기법 | 공무원 단기 공부법|한능검

    단호박암기한국사V 한국사 암기법 · 1,454회 ·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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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조약과 부록, 무역 규칙의 조항을 암기용으로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예능

    '평등'이라는 글자 뒤에 숨겨둔 검은 속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체결한 「조일수호조규」 | 벌거벗은한국사

    tvN Joy · 1,656회 ·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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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일 수호 조규의 불평등 조항을 다룬 교양 예능으로 부속 규정은 일부입니다.

이 시기의 핵심 개념 3개

사건 설명에 나오는 말을 풀었습니다. 사건 밑의 개념 이름을 누르면 여기로 옵니다.

불평등 조약

한쪽 나라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담은 조약입니다.

대표적인 조항은 치외 법권(영사 재판권), 최혜국 대우, 관세 자주권 부정입니다. 서양 열강이 19세기 아시아 나라들과 맺은 조약에 흔했고, 일본도 1850년대 미국과 이런 조약을 맺었다가 뒤에 고쳤습니다.

조선이 맺은 강화도 조약(1876),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해설

각국과의 불평등 조약 체결 l 근대 한국사 6부

로빈의 역사 기록 / Robin's Historical · 5.2만회 ·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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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일본의 ′무력시위′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 = ′강화도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

교양 Voyage · 4.8만회 ·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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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일본의 근대화 3 - 불평등 조약과 "존왕양이"파의 등장 (천황 vs 막부!) [동글동글 세계사]

(구) 동글동글 세계사 · 8.3만회 ·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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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외 법권(영사 재판권)

외국인이 머무는 나라의 법이 아니라 자기 나라 법으로 재판받는 권리입니다.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죄를 지어도 조선 관리가 재판할 수 없고 일본 영사가 재판했습니다. 조선의 사법 주권을 해치는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입니다.

조공·책봉(사대)

중국 황제가 주변국 왕을 책봉하고 주변국이 조공을 바치던 동아시아의 전통적 외교 질서입니다.

형식상의 위계 관계였지만, 조선은 내정과 외교를 스스로 결정해 왔습니다. 임오군란 뒤 청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속방'이라는 말을 넣고 내정에 직접 간섭하며 이 관계를 실질적인 지배로 바꾸려 했습니다.

청일 전쟁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이 관계가 끝났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해 황제국임을 밝혔습니다.

예능

우리가 몰랐던 조공-책봉 관계의 실상|'삼국시대에도 착한 외교는 없었다' - 안정준 교수|차이나는 클라스|JTBC 220206 방송

교양 Voyage · 1.4만회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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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조공-책봉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낳은 동아시아 역사 왜곡! 차이나는 클라스(jtbclecture) 228회 | JTBC 220206 방

교양 Voyage · 1.2만회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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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고구려가 조공을 바쳤다고?!

간다효 · 27.3만회 ·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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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교과서와 공적 기관 서술을 기준으로 적었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양쪽 견해를 함께 적었습니다. 1895년 이전 날짜는 양력이며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적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조회수는 2026-09-24 기준입니다. 영화·드라마는 공식 예고편이고,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