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사건
지리산 일대 공비 토벌 작전 중 국군 제11사단 일부 부대가 경남 거창 신원면 주민을 통비 혐의로 몰아 집단 학살했습니다. 희생자는 719명으로 확인됐습니다.
배경
1950년 가을 인천 상륙 작전 뒤 퇴로가 끊긴 북한군과 지역 좌익 세력 일부가 지리산 일대에 들어가 유격 활동을 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토벌하려고 국군 제11사단을 투입했습니다. 제11사단은 적이 이용할 수 있는 마을과 식량을 없애고 주민을 떼어 놓는 이른바 ‘견벽청야’ 방식의 작전을 폈습니다.
전개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제11사단 제9연대 제3대대가 주민들이 유격대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을 골짜기와 학교 등에 모아 총을 쏘아 죽였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노인과 여성, 어린이였습니다. 같은 부대는 며칠 전 산청·함양 일대에서도 주민을 학살했습니다.
1951년 3월 신원면 출신 신중목 국회 의원이 국회에서 사건을 폭로했습니다. 국회와 정부가 합동 조사단을 보냈지만, 4월 경남 지구 계엄 민사부장 김종원이 부하들을 공비로 꾸며 조사단에 총을 쏘게 해 조사를 막았습니다.
결과와 의미
사건이 알려지자 1951년 말 군법 회의에서 연대장 오익경, 대대장 한동석, 김종원 등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특별 사면 등으로 풀려났습니다.
4·19 혁명 뒤 1960년 5월 유족들이 학살 당시 면장이던 사람을 찾아가 살해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5·16 군사 정변 뒤에는 유족회 간부들이 구속되고 합동 묘비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1996년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 만들어져 희생자 719명의 명예가 회복됐고, 추모 공원이 세워졌습니다. 다만 국가 배상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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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신중목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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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함양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