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일본 천황이 라디오로 항복을 발표하면서 35년의 식민 지배가 끝났습니다. 연합국의 승리와 함께 국내외에서 이어진 독립운동이 광복의 바탕이 됐습니다.
배경
1945년 8월 일본은 원자 폭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더 버틸 수 없게 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8월 14일 포츠담 선언 수락을 연합국에 통보했습니다.
한반도 안의 한국인 대부분은 전쟁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신문과 라디오는 총독부의 통제를 받아 일본군의 승리 소식만 전했고, 단파 라디오로 해외 방송을 듣는 것은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8월 15일 방송은 많은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일로 다가왔습니다. 조선 총독부는 소련군이 서울까지 내려올 수 있다고 보고, 항복 발표 전부터 일본인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한국인 지도자와 교섭을 서둘렀습니다.
전개
8월 15일 정오 일왕 히로히토가 녹음한 항복 방송이 라디오로 나갔습니다. 조선에서도 방송이 나갔지만 말이 어렵고 음질이 나빠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소식이 퍼지면서 16일부터 서울과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고, 서대문 형무소 등에서 정치범들이 풀려났습니다.
총독부는 치안 유지를 위해 여운형과 교섭했고, 여운형은 15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꾸렸습니다.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교통 사정과 연합국의 허가 문제로 몇 달에 걸쳐 돌아왔습니다.
8월 16일 여운형은 서울 계동의 휘문 중학교 운동장에서 많은 사람 앞에 연설하며 질서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같은 날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난 정치범들이 시민들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소련군이 서울로 온다는 소문이 돌아 서울역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기도 했습니다. 한편 총독부와 일본군은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무장과 행정권을 유지했고, 조선 총독의 공식 항복은 9월 9일에야 이뤄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1910년부터 35년 동안 이어진 일본의 식민 지배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광복은 곧바로 독립 국가 수립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한반도는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나눠 점령했고, 1948년 남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8월 15일이 광복절로 정해졌습니다. 이날은 1945년의 광복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함께 기념하는 날입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사료로 읽기
“堪ヘ難キヲ堪ヘ忍ヒ難キヲ忍ヒ”
인물
여운형1886~1947
히로히토1901~1989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광복은 누구의 힘으로 이뤄졌나
‘건국’의 기준을 언제로 볼 것인가
더 알아두기
- ‘광복’이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