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일본 천황이 라디오로 항복을 발표하면서 35년의 식민 지배가 끝났습니다. 연합국의 승리와 함께 국내외에서 이어진 독립운동이 광복의 바탕이 됐습니다.
현대›광복과 미군정기
1945.8.15
현대
광복과 함께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미군,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왔습니다. 신탁 통치를 둘러싼 대립과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끝에 남한만의 총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여러 사건을 이어서 다루는 영상입니다. 옆으로 넘겨 보세요.
전쟁과 여성 1부 — 일본군 성노예, 전쟁의 도구였다
7일의 기적 6일차 3교시 —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와 저항
어쩌다 어른 —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탄광
영상한국사 — 한국광복군 창설과 국내 진공 작전 계획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봉오동 전투」
「밀정」
「대호」
「덕혜옹주」
「암살」
「귀향」
「여명의 눈동자」
「군함도」
앞 시기에서 이어지는 일: 중일 전쟁 (~1945.8.15), 황국 신민화 정책 (~1945.8), 강제 동원(노무·병력·일본군 '위안부') (~1945.8), 국내 진공 작전 준비 (~1945.8)
1945
8.15
일본 천황이 라디오로 항복을 발표하면서 35년의 식민 지배가 끝났습니다. 연합국의 승리와 함께 국내외에서 이어진 독립운동이 광복의 바탕이 됐습니다.
8.15
여운형과 안재홍이 조선 총독부로부터 치안 유지를 넘겨받아 건국 준비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전국에 지부를 두고 치안대를 조직했습니다.
9.8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38도선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들어왔습니다. 미군은 9월 8일 인천에 상륙해 이튿날 총독부의 항복을 받고 군정을 시작했습니다.
10.16
이승만이 10월 16일 미국에서 귀국했고, 김구 등 임시 정부 요인들은 11월 23일 '개인 자격'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군정이 임시 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16
미국·영국·소련 외무 장관이 한반도에 임시 민주 정부를 세우고, 이를 돕는 미소 공동 위원회를 열며, 최대 5년 동안 4개국 신탁 통치를 협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2.28
김구·이승만 등 우익은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좌익도 처음엔 반대했다가 1946년 1월 초 '결정을 총체적으로 지지한다'로 돌아서면서 좌우 대립이 크게 격해졌습니다.
1946
3.20
임시 정부 수립을 논의할 대상 단체를 두고 대립했습니다. 소련은 신탁 통치에 반대한 단체를 빼자고 했고,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들어 반대해 결렬됐습니다.
6.3
이승만이 전북 정읍에서 '남쪽만이라도 임시 정부나 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론이 공개적으로 나온 계기입니다.
7.25
여운형(중도 좌파)과 김규식(중도 우파)이 좌우 합작 위원회를 만들어 통일 정부 수립을 추진했습니다. 1946년 10월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했습니다.
10.1
식량난과 미군정의 미곡 수집 정책에 대한 불만 속에 대구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습니다. 경북 일대로 번지며 경찰과 민간인 모두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1947
5.21
같은 문제로 다시 대립하다 결렬됐습니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으로 넘겼습니다.
7.19
좌우 합작을 이끌던 여운형이 서울 혜화동에서 극우 청년에게 저격당해 숨졌습니다.
11.14
유엔 총회가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감시 아래 인구 비례에 따른 남북한 총선거를 결의했습니다. 소련이 위원단의 북한 방문을 거부하자, 유엔 소총회는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만 선거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1948
4.3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단독 선거 반대 등을 내걸고 경찰서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무력 충돌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한라산 금족 지역이 풀린 1954년 9월까지 이어졌습니다.
4.19
남한만의 선거를 막고 통일 정부를 세우려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 지도자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외국군 철수 등을 담은 공동 성명을 냈지만 실제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5.10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적 보통 선거로 제헌 국회의원을 뽑았습니다. 만 21세 이상 모든 국민이 투표권을 가졌습니다.
7.17
대한민국 국호와 민주 공화국 체제를 정한 헌법이 공포됐습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뽑도록 했고, 7월 20일 국회가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