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졌습니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으나, 5월 천주교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이 사건이 축소·조작됐다고 폭로했습니다.
배경
198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는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이 활발했고, 경찰과 정보기관은 운동권 학생들을 잡아들여 조사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던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간첩 사건과 시국 사건을 수사하던 곳으로, 고문이 벌어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전개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수배 중이던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대라며 박종철을 욕조 물에 머리를 밀어 넣는 물고문을 했고, 박종철은 그날 숨졌습니다.
다음 날 언론에 대학생이 경찰 조사 중 숨졌다는 짧은 기사가 나오자 1월 16일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쇼크사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시신을 처음 본 의사의 증언과 부검 결과가 나오면서 경찰은 1월 19일 물고문 사실을 인정하고 경찰관 두 명을 구속했습니다.
5월 18일 천주교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은 광주 민주화 운동 추모 미사에서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고 경찰 윗선이 이를 숨기려 사건을 축소·조작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정보는 교도소에 갇혀 있던 인사와 교도관들을 거쳐 사제단에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추가 가담자 세 명을 구속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고문과 은폐가 연달아 드러나자 정권에 대한 분노가 크게 커졌습니다. 야당과 재야, 종교계가 함께 만든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는 6월 10일을 ‘박종철 군 고문 살인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 날로 정했고, 이것이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1월에 이미 내무부 장관과 치안본부장이 물러났고, 조작 폭로 뒤인 5월 말에는 국무총리를 포함한 대규모 개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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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인물
박종철1965~1987
김승훈1939~2003
더 알아두기
- 남영동 대공분실의 오늘
- 영화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