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농민 봉기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새로 쌓고 물세를 거두는 등 수탈하자, 전봉준이 이끈 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했습니다. 정부가 보낸 안핵사가 봉기 가담자를 동학교도로 몰아 탄압하면서 더 큰 봉기로 번졌습니다.
배경
1890년대 초 조선 농촌은 세금 부담과 관리들의 수탈, 곡물 유출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흔했고, 돈을 들여 부임한 수령은 그 이상을 거둬들이려 했습니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이미 있던 보(물을 막아 두는 둑) 아래에 만석보를 새로 쌓게 하고 물세를 거뒀습니다. 또 황무지를 개간하면 세금을 면해 주겠다고 해 놓고 세금을 걷고, 부친의 공덕비를 세운다며 돈을 걷는 등 여러 명목으로 재물을 빼앗았다고 전합니다. 농민들이 여러 차례 진정했지만 오히려 붙잡혀 벌을 받았습니다.
전개
1893년 말 전봉준 등은 봉기를 모의하며 참여자 이름을 둥글게 적은 사발통문을 돌렸다고 전합니다. 1894년 음력 1월 10일(양력 2월 15일) 새벽, 전봉준이 이끈 농민 1천여 명이 고부 관아를 점령했습니다. 조병갑은 달아났고, 농민들은 창고를 열어 빼앗긴 곡식을 나누고 만석보를 허물었습니다.
정부는 조병갑을 파면하고 새 군수 박원명을 보냈습니다. 박원명이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하며 달래자 농민들은 음력 3월 초 대부분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사건 조사를 위해 온 안핵사 이용태가 봉기 참여자를 동학교도로 몰아 붙잡고 집을 불태우는 등 가혹하게 처리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이용태의 탄압은 농민들을 다시 들고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전봉준은 고부 밖의 동학 지도자들과 손을 잡았고, 한 달여 뒤 무장에서 더 큰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고부 봉기는 한 고을의 민란이었지만 동학 농민 운동의 시작점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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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기
“①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것, ②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③ 군수에게 아유(阿諛)하여 인민을 침어(侵漁)한 탐리(貪吏)를 격징(擊懲)할 것, ④ 전주영을 함락하고 경사(京師)로 직향(直向)할 것”
인물
조병갑
이용태1854~1922
전봉준1855~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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