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연표

근대› 갑오개혁기

동학 농민 운동과 전주 화약

고부 봉기로 시작한 농민군이 황토현·황룡촌에서 이기고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청·일 두 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전주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두었습니다.

기간
1894.2.15 ~ 7.22 · 5개월
누가 다스렸나
임금 고종
담긴 것
사건 7 · 영상 55 · 영화·드라마 6

이 시기를 한 번에 보는 영상 9편

여러 사건을 이어서 다루는 영상입니다. 옆으로 넘겨 보세요.

해설·교양 · 다큐

KBS 한국사전 — 내가 김옥균을 쏜 이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

KBS 히스토리 · 48.6만회 · 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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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0%추천 ★★★★★

김옥균을 쏜 홍종우의 삶을 추적한 KBS 한국사전입니다.

1884.12.4 ~ 1894.3

해설·교양 · 예능

벌거벗은 한국사 —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비극적 결말

사피엔스 스튜디오 · 16.3만회 · 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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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정변 실패 뒤 김옥균의 망명과 상하이 암살까지 다룹니다.

1884.12.6 ~ 1894.3

해설·교양 · 강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 암군인가 개혁 군주인가, 고종은 어떤 왕이었을까

사피엔스 스튜디오 · 169.3만회 ·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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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75%추천 ★★★★★

고종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재위 기간을 훑는 강연입니다.

1864.1.21 ~ 1907.7.20 · 고부 농민 봉기 → 청·일 군대 파병

해설·교양 · 다큐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 전쟁

KBS 히스토리 · 107만회 · 1: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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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 전쟁을 함께 다룬 긴 KBS 다큐입니다.

1894.2.15 ~ 1895.4.24 · 고부 농민 봉기 → 청·일 군대 파병

해설·교양 · 해설

흥선대원군부터 한일 병합까지 근대 한국사 한번에(지도 애니메이션)

로빈의 역사 기록 · 97만회 · 1: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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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90%추천 ★★★★★

흥선대원군부터 병합까지 근대사를 90분에 훑는 통합 영상입니다.

1864.1.21 ~ 1910.8.29 · 고부 농민 봉기 → 청·일 군대 파병

해설·교양 · 다큐

KBS 한국사전 — 흥선대원군, 왜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나

KBS 히스토리 · 95.5만회 · 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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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75%추천 ★★★★★

대원군과 고종의 대립을 축으로 집권부터 을미사변 무렵까지 다룹니다.

1864.1.21 ~ 1895.10.8 · 고부 농민 봉기 → 청·일 군대 파병

해설·교양 · 강의

7일의 기적 5일차 3교시 — 동학 농민 운동부터 갑오개혁까지

최태성 1TV · 72.7만회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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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동학 농민 운동부터 갑오개혁까지 기출 개념을 정리한 강의입니다.

1894.2.15 ~ 1895.7 · 고부 농민 봉기 → 청·일 군대 파병

해설·교양 · 다큐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EBS 다큐 · 70.5만회 · 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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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0%추천 ★★★★★

고종의 외교 선택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 일부입니다.

1864.1.21 ~ 1907.7.20 · 고부 농민 봉기 → 청·일 군대 파병

해설·교양 · 만화

녹두장군 전봉준! 1차 동학 농민 운동

지니스쿨 역사 · 57.3만회 ·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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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90%추천 ★★★★★

고부 봉기부터 1차 봉기까지를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합니다.

1894.2.15 ~ 1894.6 · 고부 농민 봉기 → 청·일 군대 파병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드라마 6편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드라마 · 1982· 제목만

「풍운」

배경 1863 ~ 1898

KBS 대하드라마(51부작). 유주현의 소설 『대원군』이 원작으로, 흥선대원군(이순재)의 집권과 쇄국을 그렸습니다

드라마 · 2001· 공식 영상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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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66 ~ 1895.10.8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의 일생을 따라 대원군과의 갈등부터 을미사변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드라맛집] 내가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 몰아보기

KBS Drama Classic · 12.3만회 ·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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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2018· 공식 영상

「미스터 션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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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71.6.1 ~ 1907.8

tvN.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이 미군 장교가 되어 돌아온 이야기. 의병 운동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최유진♥고애신 명장면 하이라이트

TVING 티빙 · 159.3만회 ·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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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09· 제목만

「불꽃처럼 나비처럼」

배경 1873 ~ 1895.10.8

명성황후와 호위 무사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엮은 영화

드라마 · 2010· 공식 영상

「제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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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85.4.10 ~ 1905

SBS.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에서 의사가 된 백정 출신 청년 이야기

드라마 · 2019· 공식 영상

「녹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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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94.2.15 ~ 1895.4.24

SBS. 동학 농민 운동을 이복형제의 엇갈린 삶으로 그린 드라마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몰아보기] 〈녹두꽃〉 1-2회 싸게싸게 몰아보기!! 《녹두꽃 / 스브스캐치》

SBS Catch · 24.7만회 ·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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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연표 7건

AI 분석 — 영상마다 제목·설명문·채널을 붙은 사건과 대조해 일치도(그 사건을 얼마나 정면으로 다루나)와 추천도(일치도·출처·설명의 충실함·조회수)를 매겼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본 결과가 아니라 추정치입니다(2026-09-25 기준). 영상은 사실 기록(그때 찍은 기록·방송 뉴스), 해설·교양(다큐·강의·교양 예능), 창작(드라마·영화 — 허구가 섞임)으로 나눴습니다.

앞 시기에서 이어지는 일: 위안스카이의 내정 간섭 (~1894.7)

  1. 1894

    2.15

    운동음력 1월 10일

    고부 농민 봉기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새로 쌓고 물세를 거두는 등 수탈하자, 전봉준이 이끈 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했습니다. 정부가 보낸 안핵사가 봉기 가담자를 동학교도로 몰아 탄압하면서 더 큰 봉기로 번졌습니다.

    배경

    1890년대 초 조선 농촌은 세금 부담과 관리들의 수탈, 곡물 유출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흔했고, 돈을 들여 부임한 수령은 그 이상을 거둬들이려 했습니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이미 있던 보(물을 막아 두는 둑) 아래에 만석보를 새로 쌓게 하고 물세를 거뒀습니다. 또 황무지를 개간하면 세금을 면해 주겠다고 해 놓고 세금을 걷고, 부친의 공덕비를 세운다며 돈을 걷는 등 여러 명목으로 재물을 빼앗았다고 전합니다. 농민들이 여러 차례 진정했지만 오히려 붙잡혀 벌을 받았습니다.

    전개

    1893년 말 전봉준 등은 봉기를 모의하며 참여자 이름을 둥글게 적은 사발통문을 돌렸다고 전합니다. 1894년 음력 1월 10일(양력 2월 15일) 새벽, 전봉준이 이끈 농민 1천여 명이 고부 관아를 점령했습니다. 조병갑은 달아났고, 농민들은 창고를 열어 빼앗긴 곡식을 나누고 만석보를 허물었습니다.

    정부는 조병갑을 파면하고 새 군수 박원명을 보냈습니다. 박원명이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하며 달래자 농민들은 음력 3월 초 대부분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사건 조사를 위해 온 안핵사 이용태가 봉기 참여자를 동학교도로 몰아 붙잡고 집을 불태우는 등 가혹하게 처리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이용태의 탄압은 농민들을 다시 들고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전봉준은 고부 밖의 동학 지도자들과 손을 잡았고, 한 달여 뒤 무장에서 더 큰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고부 봉기는 한 고을의 민란이었지만 동학 농민 운동의 시작점으로 평가됩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92년조병갑이 고부 군수로 부임했습니다.
    2. 1893년만석보를 새로 쌓게 한 뒤 물세로 700여 석을 거뒀다고 전합니다. 농민들이 여러 차례 진정했지만 오히려 벌을 받았습니다.
    3. 1893년 음력 11월전봉준 등이 봉기를 모의하며 사발통문을 작성했다고 전합니다.
    4. 1894년 2월 15일 (음력 1월 10일) 새벽농민 1천여 명이 말목 장터에 모였다가 고부 관아를 점령했습니다. 조병갑은 달아났습니다.
    5. 1894년 3월 초 (음력 1월 하순)농민군이 진을 백산으로 옮기고 만석보를 허물었습니다.
    6. 1894년 음력 2월~3월 초새 군수 박원명의 설득으로 농민 대부분이 흩어졌습니다.
    7. 1894년 음력 3월안핵사 이용태가 봉기 참여자를 동학교도로 몰아 붙잡고 집을 불태웠습니다.
    8. 1894년 4월 25일 (음력 3월 20일)전봉준·손화중 등이 무장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사료로 읽기

    “①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것, ②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③ 군수에게 아유(阿諛)하여 인민을 침어(侵漁)한 탐리(貪吏)를 격징(擊懲)할 것, ④ 전주영을 함락하고 경사(京師)로 직향(直向)할 것”
    — 고부 사발통문 결의 사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학운동’ 항목고부성을 쳐서 조병갑의 목을 베고, 무기고를 차지하고, 군수에게 아첨해 백성을 괴롭힌 관리를 벌하고, 전주 감영을 함락한 뒤 서울로 곧장 올라간다는 계획입니다.

    인물

    • 조병갑

      고부 군수로 만석보 물세 등 수탈을 벌여 봉기를 불렀습니다.

      고부 봉기 뒤 파면되어 유배되었지만 얼마 뒤 풀려나 다시 관직에 나섰습니다. 대한제국기에는 판사로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재판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용태1854~1922

      안핵사로 내려와 봉기 참여자를 동학교도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고부 사건 처리가 1차 봉기를 부른 원인이 되어 유배되었지만 이후 다시 관직에 올랐습니다. 1910년 국권 피탈 뒤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았습니다.

    • 전봉준1855~1895

      고부 농민들을 이끌고 관아를 점령했습니다.

      고부 일대에서 서당 훈장을 하며 살던 인물로, 체구가 작아 ‘녹두’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전창혁이 조병갑에게 항의하다 매를 맞고 죽었다고 전합니다. 동학 접주였으며, 이후 1·2차 봉기를 이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더 알아두기

    사발통문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사발을 엎어 놓고 그 둘레를 따라 참가자 이름을 둥글게 적은 통문입니다. 1968년 발견된 고부 사발통문에는 고부성을 점령하고 전주 감영을 함락한 뒤 서울로 향한다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 문서가 언제 작성되었는지를 두고는 연구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오늘날 남은 흔적
    전북 정읍 이평면에 만석보 터와 유지비가 있고, 고부 관아 터 일대가 사적지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동학

    해설·교양 · 예능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저수지 건설에 무임금 노동까지?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린 농민들의 분노 | #벌거벗은한국사 전봉준 편

    사피엔스 스튜디오 · 14.7만회 ·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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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8%추천 ★★★★★

    조병갑의 수탈과 고부 봉기를 다룬 방송 클립입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1회 — 전봉준이 선포하는 '민중 봉기의 시작'

    SBS 스브스 Drama · 2.2만회 ·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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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전봉준이 고부 봉기를 일으키는 장면입니다.

    1894.2.15 · 전봉준(최무성)이 농민을 모아 고부 봉기를 일으키는 1회 마지막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녹두꽃」 기획 영상 — 녹두장군 전봉준 그리고 사발통문

    SBS Catch · 5만회 ·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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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방송사가 만든 해설 영상으로 사발통문과 고부 봉기를 설명합니다.

    1894.2.15 · SBS가 방영에 맞춰 만든 해설 영상으로, 고부 봉기를 모의한 사발통문과 전봉준을 소개합니다.해설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예능

    [역사 속 그날들/풀버전]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동학농민운동ㅣKBS 150809 방송

    KBS 히스토리 · 5.2만회 · 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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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역사저널 그날 동학농민운동 편으로 봉기의 시작을 함께 다룹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1~2회 요약

    SBS · 2만회 ·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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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조병갑의 수탈과 고부 봉기까지를 묶은 공식 요약입니다.

    1894.2.15 ·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과 고부 봉기가 일어나기까지를 SBS가 13분으로 줄인 영상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3~4회 몰아보기

    SBS Catch · 14.3만회 ·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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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5%추천 ★★★★★

    고부 봉기 뒤 관아의 보복과 재봉기를 묶은 공식 요약입니다.

    1894.2.15 · 고부 봉기 뒤 관아의 보복과 농민군이 다시 일어서기까지를 SBS가 30분으로 줄인 영상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시리즈 [항일무장투쟁] 시작합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동학농민운동 통합ver.] 먼저 시청하세요

    황현필 한국사 · 44.9만회 · 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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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동학농민운동 전체 강의로 고부 봉기를 시작 부분에서 다룹니다.

    해설·교양 · 만화

    무능한 정부, 갑질하는 관리, 분노하는 백성 | 청일전쟁, 동학농민운동 | 핵심 in 한국사

    EBSi · 9.4만회 ·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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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EBSi 애니메이션으로 관리의 수탈과 동학농민운동을 짧게 정리합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2회 — '인내심은 여기까지' 최시형, 전봉준에게 분열 경고

    SBS 스브스 Drama · 7,025회 ·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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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봉기를 두고 최시형과 전봉준의 입장 차이를 그린 장면입니다.

    1894.2.15 · 동학 교주 최시형이 봉기를 멈추라며 전봉준과 맞서는 장면으로, 교단과 봉기 세력의 생각 차이를 보여 줍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2회 — '거시기는 죽었소' 전봉준, 몰매 맞는 백이강 구출

    SBS 스브스 Drama · 6,945회 ·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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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5%추천 ★★★★★

    고부 봉기 와중이지만 창작 인물의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1894.2.15 · 고부 봉기 와중에 이방의 아들 백이강이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다가 전봉준에게 구해지는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2. 4.25

    운동음력 3월 20일 무장 봉기

    동학 농민 운동 1차 봉기

    1894.4.25 ~ 1894.6 · 2개월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이 '보국안민·제폭구민'을 내걸고 봉기했습니다. 황토현과 황룡촌에서 관군을 이기고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 정부는 청에 군대를 요청했고, 일본도 톈진 조약을 근거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 외국 군대의 개입을 막으려 농민군과 정부는 전주 화약을 맺었고, 농민군은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두고 폐정 개혁을 진행했습니다.

    배경

    고부 봉기 뒤 안핵사 이용태의 탄압이 심해지자 전봉준은 무장의 동학 대접주 손화중, 태인의 김개남 등과 힘을 합쳤습니다. 이들은 동학의 조직(포·접)을 이용해 여러 고을의 농민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탐관오리의 수탈, 무거운 세금, 일본으로의 곡물 유출에 대한 농민의 불만이 봉기의 바탕이었습니다.

    전개

    1894년 음력 3월 20일(양력 4월 25일) 농민군은 무장에서 창의문을 발표하고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고부 백산에 수천 명이 모여 전봉준을 대장으로, 손화중·김개남을 총관령으로 하는 지휘 체계를 세우고 격문과 4대 강령을 내걸었습니다. ‘보국안민(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과 ‘제폭구민(포악한 자를 없애고 백성을 구한다)’이 대표 구호였습니다.

    농민군은 음력 4월 7일 황토현에서 전라 감영군을, 4월 23일 장성 황룡촌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의 선발대를 물리쳤습니다. 이어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라도의 중심인 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놀란 정부는 청에 군대를 요청했습니다.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내세워 인천에 대군을 보냈습니다. 외국 군대가 들어와 나라가 위험해지자 농민군과 정부는 음력 5월 초 화약을 맺었고,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결과와 의미

    농민군은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를 두고 탐관오리 처벌, 부당한 세금 폐지 같은 개혁을 스스로 진행했습니다. 정부도 교정청을 설치해 개혁을 논의했습니다. 한편 들어온 청·일 두 나라 군대는 물러나지 않았고, 이는 두 달 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청일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94년 4월 25일 (음력 3월 20일)농민군이 무장에서 포고문을 내고 일어났습니다.
    2. 1894년 4월 말 (음력 3월 하순)고부 백산에 모여 호남창의대장소를 세우고 전봉준을 대장으로 삼았습니다. 4대 강령과 격문을 발표했습니다.
    3. 1894년 5월 11일 (음력 4월 7일)정읍 황토현에서 전라 감영군을 물리쳤습니다.
    4. 1894년 5월 중순정읍·고창·무장을 지나 영광·함평까지 내려가며 세력을 넓혔습니다.
    5. 1894년 5월 27일 (음력 4월 23일)장성 황룡촌에서 경군 선발대를 물리쳤습니다.
    6. 1894년 5월 31일 (음력 4월 27일)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7. 1894년 6월 초정부가 청에 군대를 요청했고, 6월 8일 무렵부터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했습니다. 일본군도 인천으로 들어왔습니다.
    8. 1894년 6월 10~11일 무렵 (음력 5월 초)농민군이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사료로 읽기

    “人之於世最貴者, 以其倫也. 君臣父子人倫之大者.”
    — 무장 포고문(1894) — 『취어』 수록,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군신(君臣)과 부자(父子) 사이의 인륜은 그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다.
    “① 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손상하지 말 것, ②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할 것, ③ 일본오랑캐를 내쫓아 성도(聖道)를 밝힐 것, ④ 군사를 거느리고 입경하여 권귀(權貴)를 모두 죽일 것”
    — 백산 4대 강령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학운동’ 항목권귀는 권세 있고 지위 높은 자, 곧 백성을 괴롭히는 집권층을 가리킵니다. 유교 윤리(충효)를 앞세우면서 외세 배척과 집권층 타도를 함께 내걸었습니다.

    인물

    • 전봉준1855~1895

      총대장으로 1차 봉기를 이끌고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고부 봉기의 지도자로, 무장 봉기 때부터 농민군 전체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전주 화약 뒤 집강소 활동을 이끌었고, 2차 봉기 실패 뒤 붙잡혀 1895년 처형되었습니다.

    • 손화중1861~1895

      무장의 대접주로 봉기의 근거지와 가장 많은 병력을 댔습니다.

      전라도 서남부에서 가장 큰 동학 조직을 이끈 지도자였습니다. 전봉준과 함께 무장 봉기를 주도했고, 2차 봉기 때는 나주 쪽을 맡았습니다. 봉기 실패 뒤 붙잡혀 전봉준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 김개남1853~1895

      총관령으로 1차 봉기를 함께 이끌었습니다.

      태인 출신의 동학 지도자로, 농민군 가운데 가장 강경했던 인물로 꼽힙니다. 집강소 시기 남원을 근거지로 전라 좌도를 장악했습니다. 2차 봉기 때 청주에서 패한 뒤 붙잡혀 전주에서 처형되었습니다.

    • 홍계훈?~1895

      양호 초토사로 경군을 이끌고 농민군 진압에 나섰습니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업고 궁을 빠져나간 무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주 화약 협상에 관여했고, 1895년 을미사변 때 훈련대 연대장으로 궁궐을 지키다 전사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이 사건을 무엇이라 부를까 — 명칭 논쟁

    ‘동학 농민 혁명’을 쓰는 쪽

    신분제 폐지, 토지 균분 같은 사회 전체를 바꾸려는 요구와 반외세 투쟁이 함께 있었으므로 ‘혁명’이 맞다고 봅니다. 2004년 제정된 특별법과 국가기념일 명칭도 ‘동학농민혁명’입니다.

    ‘갑오 농민 전쟁’을 쓰는 쪽

    동학은 조직을 빌려준 외피이고 주체는 농민이었으며, 실제로 관군·일본군과 전쟁을 벌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종교 이름을 빼고 농민 항쟁의 성격을 드러내려는 명칭입니다.

    ‘동학 농민 운동’을 쓰는 쪽

    혁명이라 부르기에는 정권 교체 목표나 새 국가 구상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평가를 덜 담은 중립적 명칭을 씁니다. 학교 교과서에서 오래 써 온 이름입니다. 당시 정부와 기록은 ‘동학란’ ‘동비’라 불렀는데, 이는 봉기를 반란으로 본 지배층의 시각이 담긴 말이라 오늘날 학계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봉기의 성격 — 근대를 지향한 혁명인가, 전통적 민란의 연장인가

    반봉건·반외세 혁명으로 보는 쪽

    신분 차별 철폐, 탐관오리 처벌, 토지 문제 해결, 외세 배척을 한꺼번에 내건 것은 이전 민란과 다른 수준이라고 봅니다. 여러 고을이 연합하고 집강소로 농민 자치를 시행한 점도 근대 지향적 성격을 보여 준다고 평가합니다.

    전통적·근왕적 성격을 강조하는 쪽

    농민군은 국왕에 대한 충성을 여러 차례 밝혔고, 왕조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으며 명분도 유교 윤리에 기댄 경우가 많았다고 봅니다. 전봉준도 재판에서 임금 곁의 간신을 없애려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래서 근대 혁명보다는 조선 후기 민란이 커진 것, 또는 척왜를 앞세운 의병에 가까운 성격으로 보기도 합니다.

    더 알아두기

    남접과 북접
    동학 조직 안에서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남접, 최시형이 이끈 충청도 중심의 교단 지도부를 북접이라 부릅니다. 1차 봉기는 주로 남접이 일으켰고, 교단 지도부는 무력 봉기에 신중했습니다. 두 세력은 2차 봉기 때 연합했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동학

    창작 · 드라마

    녹두꽃 5회 — 백산 봉기 현장에서 동학군이 된 백이강

    SBS 스브스 Drama · 1만회 ·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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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백산에 농민군이 모여 1차 봉기를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1894.4.25 ~ 1894.6 · 백산에 농민군이 모여 1차 봉기가 시작되는 현장을 그린 5회 마지막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예능

    [#벌거벗은한국사] (70분) 현재 난방비 폭탄이 있듯 과거에도 있었던 세금 폭탄💣 효도 안 했다고 세금을 걷어가기까지;;

    디글 :Diggle · 16만회 · 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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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벌거벗은 한국사 전봉준 편으로 수탈과 봉기 과정을 다룹니다.

    해설·교양 · 강의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침략 | 나라를 뒤흔든 동학농민운동 [설민석의 한국통사 EP.50] | 매주 월요일 공개

    설민석 Seol Min Seok · 3.5만회 ·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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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설민석 한국통사 동학농민운동 편으로 1차 봉기 흐름을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해설

    제 1차 동학 농민 운동 l 근대 한국사 13부

    로빈의 역사 기록 / Robin's Historical Records · 6.8만회 ·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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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제1차 동학 농민 운동만 따로 떼어 짧게 정리한 영상입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 동학 농민 운동 전투 장면 모아 보기

    SBS 옛날 드라마 - 빽드 · 2.8만회 ·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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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여러 회의 동학 농민군 전투 장면을 모은 영상입니다.

    1894.4.25 ~ 1894.6 · SBS가 드라마 속 동학 농민군의 전투 장면을 24분으로 모은 영상입니다(1차 봉기부터 우금치까지).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심화별개념3]_ 30강 개항기(동학농민운동~대한 제국)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최태성 1TV · 63.9만회 · 1: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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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0%추천 ★★★★★

    동학 농민 운동부터 대한제국까지 넓게 다루는 강의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심화별개념8] _30강 개항기(동학 농민 운동~대한 제국)|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자막 속성 통강

    최태성 1TV · 28.6만회 · 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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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0%추천 ★★★★★

    동학 농민 운동부터 대한제국까지 요약하는 강의입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5회 — '살인자는 안 돼' 전봉준, 의병 되겠다는 백이강 거절

    SBS 스브스 Drama · 6,849회 ·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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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5%추천 ★★★★★

    1차 봉기 준비 무렵이지만 창작 인물과의 대화가 중심입니다.

    1894.4.25 ~ 1894.6 · 1차 봉기를 준비하는 전봉준이 농민군에 들어오려는 백이강을 받아 주지 않는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3. 5.11

    전쟁음력 4월 7일

    황토현 전투

    농민군이 정읍 황토현에서 전라 감영군을 크게 이겼습니다. 1차 봉기의 첫 큰 승리입니다.

    배경

    백산에 모인 농민군이 세력을 키우자 전라 감사 김문현은 감영의 군사와 보부상 등을 모아 진압에 나섰습니다. 서울에서도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이 출발했습니다.

    무장에서 일어난 농민군은 고부를 다시 차지하고 백산에서 대오를 갖춘 뒤 태인·금구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전라 감영은 영관 이경호가 이끄는 감영군에 각 고을의 향군과 보부상을 더해 1천 수백 명 규모의 진압군을 꾸렸습니다. 보부상은 조정의 보호를 받던 상인 조직으로, 이 시기 관의 편에서 진압에 동원되곤 했습니다. 급히 모은 병력이라 군기가 흐트러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전개

    농민군은 싸움을 피하는 듯 물러나며 감영군을 정읍 황토현 부근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음력 4월 7일(양력 5월 11일) 새벽, 밤새 추격해 와 지친 감영군 진영을 농민군이 기습했습니다. 감영군은 크게 무너졌고 지휘관을 포함해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싸움에서 감영군을 이끌던 이경호가 농민군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었습니다. 흩어진 감영군과 보부상은 전주 쪽으로 달아났고, 농민군은 무기와 군량을 거둬들였습니다.

    결과와 의미

    1차 봉기의 첫 큰 승리였습니다. 이 승리로 농민군의 사기가 크게 올랐고 참여하는 농민도 늘었습니다. 농민군은 이어 정읍·고창·무장·영광 등 전라도 서남부 고을을 차례로 지나며 세력을 넓혔습니다.

    홍계훈의 경군은 이 무렵 전주에 도착해 있었지만, 병력이 부족하다며 조정에 증원을 요청하고 곧바로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황토현 승리 소식이 퍼지면서 여러 고을의 농민과 동학교도가 농민군에 합류했고, 농민군은 지나는 고을마다 관아의 무기를 거두고 옥에 갇힌 사람을 풀어 주었습니다. 감영군이 무너지고 경군도 선뜻 나서지 못하자, 조정 안에서는 청에 군대를 빌리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94년 4월 25일 (음력 3월 20일)농민군이 무장에서 봉기했습니다.
    2. 1894년 4월 말 (음력 3월 하순)백산에 모여 지휘 체계를 세웠습니다.
    3. 1894년 5월 초 (음력 4월 초)전라 감영군과 보부상이 진압에 나섰고, 홍계훈의 경군은 인천에서 배로 군산을 거쳐 전주로 향했습니다.
    4. 1894년 5월 10일 밤 (음력 4월 6일)농민군이 물러나는 척하며 감영군을 황토현 부근으로 끌어들였습니다.
    5. 1894년 5월 11일 (음력 4월 7일) 새벽농민군이 감영군 진영을 기습해 크게 이겼습니다. 영관 이경호가 전사했습니다.
    6. 1894년 5월 중순농민군이 정읍·고창·무장을 거쳐 영광·함평으로 내려갔습니다.

    인물

    • 전봉준1855~1895

      농민군 대장으로 감영군을 황토현으로 끌어들여 기습했습니다.

      고부 봉기를 이끈 동학 접주로, 백산에서 농민군 대장이 되었습니다. 황토현 승리 뒤 전주성 점령까지 1차 봉기를 지휘했습니다.

    • 김문현

      전라 감사로 감영군과 보부상을 모아 진압에 나섰습니다.

      농민군이 일어났을 때 전라도를 책임진 관찰사였습니다. 황토현에서 감영군이 무너지고 이어 전주성까지 잃자, 그 책임으로 파면되어 유배되었습니다.

    더 알아두기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2019년 정부는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날인 5월 11일을 국가기념일인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기념일을 정할 때 고부 봉기일·무장 봉기일·백산 집결일 등 여러 날짜가 후보로 올라 지역마다 의견이 달랐습니다. 정읍 황토현에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관과 전적지가 있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동학농민혁명, 황토현 전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 4,992회 ·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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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만든 황토현 전투 영상입니다.

    해설·교양 ·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 - 리턴즈] 황토현에 숨은 비밀?! 동학 농민군 전투의 승자는? 20200531

    MBCentertainment · 1만회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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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황토현 전적지에서 전투의 승패를 짚어 보는 선을 넘는 녀석들 클립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근대18] 동학1 - 남도퍼레이드(황토현&황룡촌 전투)

    황현필 한국사 · 19.7만회 ·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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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황현필 강사가 황토현과 황룡촌 전투의 전개를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해설

    [기획영상] 「녹두꽃」 황토현 전적지 《녹두꽃 / 스브스캐치》

    SBS Catch · 1.6만회 ·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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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드라마 녹두꽃 홍보용으로 황토현 전적지를 소개합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6회 —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약자' 전봉준의 말

    SBS 스브스 Drama · 5,544회 ·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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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5%추천 ★★★★★

    황토현 전투 회차지만 전투보다 인물 대사가 중심입니다.

    1894.5.11 · 황토현 전투가 그려진 6회에서 전봉준이 백이강에게 봉기의 뜻을 말하는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6회 — 전쟁터 한복판에서 만난 백이강과 송자인

    SBS 스브스 Drama · 7,532회 ·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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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45% · 간접 관련추천 ★★★★★

    황토현 전투 회차의 창작 인물 장면입니다.

    1894.5.11 · 황토현 전투가 벌어진 6회의 마지막 장면으로, 전투 한가운데서 두 주인공이 엇갈립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4. 5.27

    전쟁음력 4월 23일

    황룡촌 전투

    장성 황룡촌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을 물리쳤습니다. 농민군은 곧바로 전주로 향했습니다.

    배경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 약 800명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군산으로 내려와 전주에 들어갔습니다. 신식 무기를 가진 부대였지만 도망병이 생기는 등 사기가 높지 않았습니다. 농민군은 전주를 피해 전라도 서남부로 내려가며 세력을 키웠고, 홍계훈은 병력 일부를 보내 이를 뒤쫓게 했습니다.

    경군은 장위영 병사를 중심으로 꾸려졌고, 독일제 야포(크루프포)와 여러 개의 총신이 돌아가며 쏘는 회선포 같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홍계훈은 전주에 머물며 조정에 증원을 요청하는 한편, 대관 이학승 등이 이끄는 선발대 수백 명을 보내 농민군의 뒤를 쫓게 했습니다.

    전개

    음력 4월 23일(양력 5월 27일) 장성 황룡촌에서 농민군과 경군 선발대가 맞붙었습니다. 농민군은 대나무로 엮은 둥근 장태를 굴려 총알을 막으며 다가가 경군을 물리쳤고, 경군 지휘관 이학승이 전사했습니다.

    농민군은 영광·함평을 거쳐 장성으로 올라와 황룡강 가 월평 일대에서 쉬던 중 경군의 포격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농민군은 뒤쪽 산 위로 올라가 진을 가다듬은 뒤 장태를 앞세우고 내려오며 반격했습니다. 수가 적었던 경군은 버티지 못하고 흩어졌고, 농민군은 경군의 크루프포와 회선포를 빼앗았습니다.

    결과와 의미

    서울에서 내려온 정부군을 이긴 이 전투로 농민군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농민군은 경군 본대가 전주를 비운 틈을 타 곧바로 북쪽으로 올라가 나흘 뒤 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전사한 이학승은 뒤에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추증받았고, 장성에는 그를 기리는 비가 세워졌습니다. 조정은 황룡촌 패전 소식에 이어 전주가 위태롭다는 보고를 받으며 청에 원병을 청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 무렵 조정은 이원회를 양호 순변사로 임명해 증원군을 내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94년 5월 초홍계훈의 경군이 군산에 상륙해 전주로 들어갔습니다.
    2. 1894년 5월 11일 (음력 4월 7일)황토현에서 감영군이 농민군에 패했습니다.
    3. 1894년 5월 중순농민군이 영광·함평으로 내려갔고, 홍계훈은 선발대를 보내 뒤를 쫓게 했습니다.
    4. 1894년 5월 27일 (음력 4월 23일)장성 황룡촌에서 농민군이 장태를 앞세워 경군 선발대를 물리쳤습니다. 대관 이학승이 전사했습니다.
    5. 1894년 5월 말농민군이 정읍·원평을 거쳐 빠르게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6. 1894년 5월 31일 (음력 4월 27일)농민군이 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인물

    • 이학승

      경군 선발대를 이끈 대관으로 황룡촌에서 전사했습니다.

      장위영 소속 무관으로, 홍계훈의 명을 받고 농민군을 뒤쫓다가 황룡촌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정은 그의 죽음을 기려 벼슬을 추증했습니다.

    • 홍계훈?~1895

      양호 초토사로 경군을 이끌고 선발대를 황룡촌 쪽으로 보냈습니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피신시킨 무관입니다. 황룡촌 패전 뒤 전주성을 되찾기 위해 완산에 진을 쳤고, 1895년 을미사변 때 궁궐을 지키다 전사했습니다.

    더 알아두기

    장태
    원래 닭을 기르는 데 쓰던 대나무 바구니를 크게 만든 것으로, 안에 짚을 넣어 굴리면 방패 구실을 했습니다. 신식 총포가 부족했던 농민군이 쓴 방어 도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성 황룡 전적지에 기념탑이 있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동학농민혁명, 장성 황룡전투, 장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 1.6만회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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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황룡촌 전투와 장태를 짧게 소개합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8회 — 총 앞에 물러서지 않은 동학군, 경군을 몰아내다

    SBS 스브스 Drama · 11.6만회 ·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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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농민군이 경군을 물리치는 황룡촌 전투 장면입니다.

    1894.5.27 · 서울에서 내려온 경군(중앙군)을 동학 농민군이 물리친 황룡촌 전투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동학농민군은 어떻게 경군을 상대로 승리했나 [더1894]

    썰1894 · 290회 ·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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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농민군이 경군을 이긴 과정을 짧게 정리한 동학 전문 채널 영상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전남 장성] 장성 황룡 전적 [동학로드(東學路道 - Donghak Road)]

    동학역사문화연구소 · 205회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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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장성 황룡 전적지와 장태 무기를 소개한 연구소 영상입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8회 — '보국안민' 전봉준, 해산 명령을 거부하다

    SBS 스브스 Drama · 2.2만회 ·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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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5%추천 ★★★★★

    황룡촌 전투 뒤 전봉준이 해산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입니다.

    1894.5.27 · 황룡촌 전투 뒤 전봉준이 해산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신을 베는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8회 — 백이강, 경군 앞에서 목놓아 외치는 '시천주'

    SBS 스브스 Drama · 3.3만회 ·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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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황룡촌 전투 속 창작 인물의 장면입니다.

    1894.5.27 · 경군의 포격 속에서 백이강이 동학 주문을 외치며 농민군을 이끄는 황룡촌 전투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8회 — 전투를 도운 거지 떼의 희생

    SBS 스브스 Drama · 2.1만회 ·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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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0%추천 ★★★★★

    전투를 도운 무리의 희생을 그린 창작 장면입니다.

    1894.5.27 · 황룡촌 전투에서 떠돌이 무리가 목숨을 걸고 농민군을 돕는 장면입니다(창작 인물).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5. 5.31

    전쟁음력 4월 27일

    전주성 점령

    농민군이 전라도의 중심 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놀란 정부는 청에 군대를 요청했습니다.

    배경

    전주는 전라 감영이 있는 전라도의 행정 중심지이자 조선 왕실(전주 이씨)의 본향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과 시조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가 있어 상징적인 의미가 컸습니다.

    농민군이 전라도 서남부로 내려가 있는 동안 홍계훈의 경군은 농민군을 쫓아 남쪽 영광 방면까지 내려갔습니다. 농민군은 황룡촌에서 이긴 뒤 경군을 앞질러 곧장 북쪽으로 올라왔습니다. 전주를 지키던 감영군은 황토현 패전으로 크게 줄어 있었습니다.

    전개

    황룡촌 전투 뒤 농민군은 곧장 북상해 음력 4월 27일(양력 5월 31일) 큰 저항 없이 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감사 김문현은 달아났습니다. 뒤늦게 돌아온 홍계훈의 경군은 전주성 밖 완산에 진을 치고 성을 향해 포를 쐈고, 농민군은 여러 차례 성 밖으로 나가 싸웠지만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전봉준도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합니다.

    농민군은 장날 장꾼 사이에 섞여 서문 쪽으로 들어갔다고 전합니다. 급히 돌아온 홍계훈은 전주성 남쪽 완산 칠봉에 진을 쳤습니다. 경군의 포탄이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 부근에 떨어지자, 농민군은 경군이 왕실의 사당을 해친다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음력 5월 초까지 성 밖에서 크고 작은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전라도의 중심이 농민군 손에 들어가자 조정은 크게 놀랐습니다. 고종과 민씨 정권은 청에 군대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이는 청·일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성 안의 농민군도 경군에 포위되어 오래 버티기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전주성을 잃은 책임으로 감사 김문현은 파면되어 유배되었고, 후임으로 김학진이 임명되었습니다. 조정은 양력 6월 초 청에 정식으로 원병을 요청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94년 5월 27일 (음력 4월 23일)황룡촌에서 경군 선발대를 물리친 농민군이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2. 1894년 5월 31일 (음력 4월 27일)농민군이 전주성에 들어갔고, 감사 김문현은 달아났습니다.
    3. 1894년 6월 1일 무렵 (음력 4월 28일)홍계훈의 경군이 돌아와 완산에 진을 치고 성을 향해 포를 쐈습니다.
    4. 1894년 6월 초조정이 청에 원병을 요청했습니다. 성 밖 싸움에서 농민군의 손실이 커졌고 전봉준도 다쳤다고 전합니다.
    5. 1894년 6월 8일 무렵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기 시작했고, 일본군도 인천에 들어왔습니다.
    6. 1894년 6월 10~11일 무렵 (음력 5월 초)농민군이 폐정 개혁 요구를 조건으로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인물

    • 홍계훈?~1895

      경군을 이끌고 완산에 진을 친 뒤 전주성을 포위·공격했습니다.

      양호 초토사로 농민군 진압을 맡은 무관입니다. 전주성을 포위한 뒤 농민군의 요구를 조정에 올리기로 하고 철수를 받아들였습니다.

    • 김문현

      전라 감사로 전주성을 지키지 못하고 달아났습니다.

      황토현에서 감영군이 패한 데 이어 전주성까지 잃어 파면되고 유배되었습니다.

    해설·교양 ·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 - 리턴즈] 승승장구 동학농민혁명!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 농민군~! 20200531

    MBCentertainment · 3.8만회 ·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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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군의 전주성 입성을 다룬 선을 넘는 녀석들 클립입니다.

    해설·교양 · 예능

    '전주성 점령'은 조선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 차이나는 클라스(jtbclecture) 146회

    교양 Voyage · 8,565회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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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성 점령을 다룬 차이나는 클라스 클립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조선 최고의 정예부대 vs. 동학 농민군, 목숨을 건 수성전 [썰1894 11회 FULL]

    썰1894 · 1,807회 · 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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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성 점령부터 수성전과 화약까지 한 회로 다룬 동학 채널 영상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전주성을 점령한 전봉준, 왜 싸움 대신 전주화약을 선택했을까?

    진짜 이런 역사 · 2,031회 · 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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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성을 점령한 뒤 화약을 택한 이유를 길게 설명합니다.

  6. 6월

    정치

    전주 화약과 집강소

    1894.6 ~ 1894.10 · 4개월

    외국 군대가 들어오자 농민군과 정부가 화해하고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두고 농민 스스로 폐정 개혁을 진행했습니다.

    배경

    전주성 안의 농민군은 경군에 포위되어 있었고, 성 밖 싸움에서 손실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청·일 군대가 들어와 나라가 외국 군대의 싸움터가 될 위험이 커졌습니다. 정부도 외국 군대가 머물 명분을 없애려면 사태를 빨리 끝내야 했습니다.

    청군이 아산에 내리고 일본군이 인천과 서울로 들어오자, 정부는 외국 군대에 철수를 요구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농민군과의 타협을 서둘렀습니다. 농민군 쪽에서도 모내기 철이 다가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전개

    농민군은 폐정 개혁을 요구하는 조항을 홍계훈에게 내고, 이를 임금에게 올려 시행해 달라는 조건으로 음력 5월 초(양력 6월 10~11일 무렵)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를 전주 화약이라 부릅니다.

    농민군은 각자 고을로 돌아가 여러 곳에 집강소를 세우고 탐관오리와 횡포를 부린 양반·부호를 벌하고, 부당한 세금을 없애는 등 개혁을 펼쳤습니다. 음력 7월에는 새로 부임한 전라 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이 만나 관과 농민군이 함께 치안을 맡기로 합의하면서 집강소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전주 감영에는 이를 총괄하는 대도소가 설치되었습니다.

    농민군이 낸 요구는 탐관오리와 횡포한 부호 처벌, 각종 잡세 폐지, 세곡 운송을 맡은 전운소 폐지 등 세금·관리 비리 문제가 중심이었다고 전합니다. 홍계훈은 요구를 조정에 올리겠다고 약속하고 농민군의 귀향을 보장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집강소 시기는 농민이 지방 행정에 직접 참여한 드문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역마다 운영이 달랐고, 일부에서는 보복과 약탈이 벌어져 양반층의 반발도 컸습니다. 이 시기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에 맞서 농민군이 음력 9월 다시 일어나면서 끝났습니다.

    집강소 시기 농민군 지도자들 사이에도 노선 차이가 있었습니다. 전봉준은 전라 감사 김학진과 협력하는 쪽을 택했지만, 김개남은 남원에 대군을 모아 독자적으로 움직였고, 손화중은 광주·나주 일대에서 활동했습니다. 나주 목사 민종렬처럼 끝까지 집강소 설치를 거부하고 성을 지킨 고을도 있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94년 6월 8일 무렵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했고, 일본군도 인천에 들어왔습니다.
    2. 1894년 6월 10~11일 무렵 (음력 5월 초)농민군이 폐정 개혁 요구를 내고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3. 1894년 6월 하순고향으로 돌아간 농민군이 여러 고을에 집강소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4. 1894년 7월 13일 (음력 6월 11일)정부가 교정청을 설치해 스스로 개혁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5. 1894년 7월 23일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습니다.
    6. 1894년 8월 무렵 (음력 7월)전봉준과 전라 감사 김학진이 전주에서 만나 관과 농민군이 함께 치안을 맡기로 합의했습니다.
    7. 1894년 10월 (음력 9월)농민군이 일본군을 몰아내겠다며 다시 일어나 집강소 시기가 끝났습니다.

    사료로 읽기

    “종 문서는 불태워 버릴 것 … 백정의 머리에 패랭이를 벗기고 갓을 씌울 것 … 토지는 평균분작(平均分作)으로 할 것”
    — 폐정 개혁 12개조 — 오지영 『동학사』(초고본, 1926),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12개조 가운데 신분 차별과 토지 문제에 관한 조항입니다. 이 목록이 당시 요구를 그대로 옮긴 것인지는 아래 쟁점에서 보듯 의견이 나뉩니다.

    인물

    • 김학진

      전라 감사로 전봉준과 합의해 집강소를 공인했습니다.

      전주 화약 뒤 전라 감사로 부임해 무력 대신 협상으로 전라도를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농민군에 지나치게 타협적이었다는 이유로 뒤에 조정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 오지영1868~1950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고 뒷날 『동학사』를 써서 폐정 개혁안 12조를 전했습니다.

      전라도 출신 동학교도로 농민 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이후 천도교에서 활동했으며, 1940년 『동학사』를 펴내 봉기의 경과를 기록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폐정 개혁안 12조는 믿을 만한가

    실제 요구를 반영했다고 보는 쪽

    노비 문서 소각, 천인 차별 개선, 과부 재혼 허용, 토지 평균 분작 등 12조는 당시 농민군 요구의 핵심을 담았다고 봅니다. 참여자가 직접 남긴 기록이고, 다른 사료에 보이는 요구와도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교과서도 오랫동안 이를 대표 요구로 소개했습니다.

    후대에 다듬어진 내용이라고 보는 쪽

    12조는 사건 뒤 40여 년이 지나 1940년에 나온 『동학사』에만 보이고, 당시 문서에서 그대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전봉준 판결 선고서 등 당대 자료에 전하는 요구 조목들은 세금·관리 비리 같은 구체적 문제가 중심이어서, ‘토지 평균 분작’ 같은 조항은 뒷날의 생각이 섞였을 수 있다고 봅니다.

    ‘화약’이 정식으로 맺어졌나

    협약이 있었다고 보는 쪽

    농민군이 개혁 요구를 내고 홍계훈이 이를 조정에 올리기로 약속한 뒤 철수했으므로, 양측의 합의로서 화약이 성립했다고 봅니다.

    정식 협약은 아니었다고 보는 쪽

    양측이 서명한 문서가 없고, 농민군은 불리한 상황에서 철수한 것이며 정부는 이를 귀순으로 처리했다는 점을 들어 ‘화약’은 뒷날 붙은 이름에 가깝다고 봅니다.

    더 알아두기

    집강소란
    집강(執綱)은 원래 마을 일을 맡아보던 향촌의 직책 이름입니다. 농민군은 이 이름을 빌려 고을마다 사무소를 두고 집강을 세워 치안과 개혁을 맡게 했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동학농민혁명, 집강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 2,479회 ·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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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집강소 운영을 정면으로 설명합니다.

    창작 · 드라마

    녹두꽃 12회 — 화약 성사, 동학군의 환호와 눈물

    SBS 스브스 Drama · 8,656회 ·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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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화약이 맺어지는 장면입니다.

    1894.6 ~ 1894.10 · 전봉준이 전라 감사와 화약을 맺고 농민군이 기뻐하는 전주 화약 장면입니다.드라마 「녹두꽃」(2019)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예능

    오늘날의 지방자치제도였던 집강소='민주주의'의 시초?!|'조선의 민란, 실패한 혁명인가?' 김준혁 교수|차이나는 클라스|JTBC 200226 방송

    교양 Voyage · 3,463회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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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집강소의 의미를 교수가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KBS전주] 집강소와 전주코뮌 - 녹두꽃에 피어난 촛불 핵심정리 |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도올 김용옥 선생 특별강연

    KBS전주 · 1,037회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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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김용옥이 집강소의 의미를 설명한 강연 발췌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팩 한국사 371회] 동학농민혁명은 어떻게 청일전쟁을 불러 일으켰나? feat 전주화약 갑오개혁 군국기무처

    팩스토리facstory · 1.8만회 ·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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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운동에서 청일전쟁까지 이어 보며 전주 화약을 한 부분으로 다룹니다.

    사실 기록 · 뉴스

    10년 논쟁 동학혁명기념일 '전주화약일' 가닥 [전북]

    연합뉴스TV · 196회 ·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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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화약일을 동학 기념일로 정하는 논의를 전한 보도입니다.

  7. 6.8

    외교

    청·일 군대 파병

    1894.6.8 ~ 1894.6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근거로 인천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일본군의 규모는 청군보다 훨씬 컸습니다.

    배경

    1885년 갑신정변 뒤 청과 일본은 톈진 조약을 맺어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함께 물러나고, 앞으로 조선에 군대를 보낼 때는 서로 미리 알리기로 했습니다. 이 조항은 한쪽이 군대를 보내면 다른 쪽도 보낼 근거가 되었습니다.

    전주성이 함락되자 조정에서는 청군을 부르자는 의견과, 그러면 일본군도 들어와 더 위험해진다는 반대 의견이 맞섰습니다. 결국 정부는 서울에 머물던 청의 위안스카이에게 파병을 요청했습니다.

    청은 임오군란 뒤 조선에 군대를 머물게 하고 내정에 간섭했지만, 톈진 조약에 따라 1885년 일본군과 함께 군대를 철수했습니다. 그 뒤 10년 가까이 조선에는 두 나라 군대가 없었습니다.

    전개

    청군 약 2,800명이 1894년 6월 8일 무렵부터 아산만에 상륙했습니다. 청이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에 파병을 알리자, 일본은 이미 준비해 둔 대로 공사관과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인천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일본군은 곧 서울로 들어왔고, 뒤이어 도착한 혼성 여단까지 합쳐 청군보다 훨씬 많은 규모가 되었습니다.

    리훙장은 조약대로 일본에 파병을 알렸는데, 통보문에 조선을 ‘보호 속방’이라 적어 일본의 반발을 샀습니다. 일본은 이미 6월 2일 내각 회의에서 파병을 결정했고, 6월 5일에는 전쟁 지휘부인 대본영을 세웠습니다. 휴가로 본국에 가 있던 오토리 공사는 해군 육전대를 이끌고 6월 10일 서울에 들어왔고, 오시마 요시마사가 이끄는 혼성 여단이 뒤이어 인천에 상륙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농민군과 정부가 화약을 맺자 조선은 두 나라 군대에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청은 함께 물러나자고 했지만 일본은 청에 조선 내정을 함께 개혁하자고 제안했고, 청이 거절하자 단독으로 개혁을 요구하며 군대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 대치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청일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은 6월 16일 청에 두 나라가 함께 조선 내정을 개혁하자고 제안했고, 청은 반란이 이미 가라앉았으니 함께 물러나자며 거절했습니다. 일본은 7월 들어 조선 정부에 직접 내정 개혁안을 내밀며 압박을 높였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5년 4월 18일청과 일본이 톈진 조약을 맺어 조선에서 군대를 함께 철수하고, 파병 때 서로 알리기로 했습니다.
    2. 1894년 5월 31일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3. 1894년 6월 2일일본 내각이 조선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4. 1894년 6월 초조선 정부가 위안스카이를 통해 청에 원병을 요청했습니다.
    5. 1894년 6월 5일일본이 대본영을 설치했습니다.
    6. 1894년 6월 8일 무렵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기 시작했습니다.
    7. 1894년 6월 10일오토리 공사가 해군 육전대와 함께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같은 무렵 전주에서는 농민군이 철수했습니다.
    8. 1894년 6월 16일일본이 청에 조선 내정 공동 개혁을 제안했고, 청은 거절했습니다.
    9. 1894년 7월 초오토리 공사가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사료로 읽기

    “將來朝鮮國, 若有變亂重大事件, 中日兩國, 或一國要派兵, 應先互行文知照”
    — 톈진 조약 제3조(1885) —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장래 조선국에 변란이나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 중국과 일본 양국이나 혹은 어떤 한 나라가 파병이 필요할 때는 우선 상대국에 공문을 보내 통지해야 합니다.

    인물

    • 위안스카이1859~1916

      청의 조선 주재 관리로 파병 요청을 받아 본국에 전했습니다.

      임오군란 때 청군을 따라 조선에 와서 갑신정변을 진압했고, 이후 약 10년 동안 조선의 내정과 외교에 깊이 간섭했습니다. 청일 전쟁 직전 귀국했고, 뒷날 중화민국 대총통이 되어 황제 즉위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 민영준(민영휘)1852~1935

      민씨 정권의 실력자로 청군 파병 요청을 추진했습니다.

      명성황후의 친척으로 병조 판서·선혜청 당상 등 요직을 맡았습니다. 갑오개혁 때 탐학의 책임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났고, 국권 피탈 뒤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았습니다. 휘문 학교를 세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청군 파병을 누가 원했나

    조선 조정이 먼저 요청했다고 보는 쪽

    고종과 민영준 등 민씨 정권이 농민군을 자력으로 진압하지 못하자 스스로 청군을 불렀다고 봅니다. 조정 안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는데도 정권 유지를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고 평가합니다.

    청의 유도가 컸다고 보는 쪽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굳히려던 위안스카이가 파병 요청을 하도록 조선 정부를 부추겼다는 기록과 정황을 강조합니다. 형식은 조선의 요청이었지만 실제로는 청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일본의 파병 의도

    처음부터 전쟁을 준비했다고 보는 쪽

    일본은 청의 파병 소식을 듣기 전부터 파병을 결정하고 대본영을 세웠으며, 거류민 보호에 필요한 수준을 크게 넘는 병력을 보냈습니다. 이를 근거로 청과의 전쟁과 조선 장악을 미리 계획했다고 봅니다.

    상황에 따라 대응했다고 보는 쪽

    일본 정부 안에서도 전쟁을 서두르자는 쪽과 신중하자는 쪽이 있었고, 청과의 협상이 결렬되는 과정에서 전쟁으로 기울었다고 봅니다. 다만 이 견해도 일본이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몰아내려 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청일은 왜 조선에 파병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9회

    법률방송 · 3.7만회 · 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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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청과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보낸 경위를 함재봉이 정면으로 강연합니다.

이 시기의 핵심 개념 1개

사건 설명에 나오는 말을 풀었습니다. 사건 밑의 개념 이름을 누르면 여기로 옵니다.

동학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민족 종교로, 뒤에 천도교가 됐습니다.

서양의 종교·학문인 서학(천주교)에 맞선다는 뜻에서 '동학'이라 했습니다. 유교·불교·도교와 민간 신앙을 아우르고,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이라며 모든 사람의 평등을 강조했습니다.

세상을 새롭게 바꾼다는 '후천개벽'을 내세워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 사이에 빠르게 퍼졌습니다. 정부는 이를 위험하게 여겨 1864년 최제우를 처형했지만, 2대 교주 최시형이 조직을 넓혔고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바탕이 됐습니다. 1905년 3대 교주 손병희가 이름을 천도교로 바꿨습니다.

해설

[종교] 동학농민운동의 뿌리, 동학이란 무엇인가? : 도올 김용옥의 역주, 동경대전-최제우 1부

일당백 : 일생동안 읽어야 할 백권의 책 · 15.4만회 · 1: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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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역사만화 72화) [공부왕찐천재]

공부방찐천재 · 4.9만회 ·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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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동학의 창시와 교조 신원 운동 한번에 다보기 l 근대 한국사 12부

로빈의 역사 기록 / Robin's Historical · 3.2만회 ·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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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교과서와 공적 기관 서술을 기준으로 적었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양쪽 견해를 함께 적었습니다. 1895년 이전 날짜는 양력이며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적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조회수는 2026-09-24 기준입니다. 영화·드라마는 공식 예고편이고,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