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미국의 요청으로 공병·의료 부대(서희·제마)에 이어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보냈습니다.
배경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명시적 승인이 없는 전쟁이어서 세계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파병을 요청했고, 한국에도 요청이 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전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지지층에도 전쟁 반대 여론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에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겹쳐 있었습니다.
전개
2003년 4월 국회가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켰고, 건설 공병 부대인 서희 부대와 의료 부대인 제마 부대가 파견됐습니다. 미국이 추가로 전투병 파병을 요청하자 정부는 논란 끝에 재건 지원을 중심으로 한 부대를 보내기로 했고, 2004년 2월 국회 동의를 거쳐 자이툰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자이툰 부대는 2004년 가을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의 아르빌에 자리를 잡고 학교·병원 건설과 직업 교육 등 재건 지원 활동을 했습니다. 규모는 한때 3천 명을 넘어 미국·영국에 이어 큰 편이었습니다. 부대는 2008년 12월 임무를 마치고 철수했습니다.
서희·제마 부대는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 머물며 도로·시설 복구와 진료 활동을 했습니다. 자이툰 부대 본대는 2004년 8월 출국해 9월 아르빌에 도착했고, 이후 국회는 해마다 파병 연장 동의안을 처리하며 부대 규모를 차츰 줄였습니다.
결과와 의미
파병 기간 중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일하던 한국인 김선일 씨가 무장 단체에 납치돼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 파병 반대 여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자이툰 부대 장병의 전투 중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 살상 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 정부 조사에서도 정보가 잘못됐던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인물
노무현1946~2009
김선일1970~2004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이라크 파병은 옳은 선택이었나
- 한미 동맹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했다는 반대 여론도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