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권 회복단
대구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로, 뒤에 대한 광복회 결성과 3·1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배경
1910년대 경상도에서는 계몽 운동을 하던 유생·지주·상인들이 무단 통치의 감시를 피해 비밀 결사를 만들었습니다.
회원 상당수는 병합 전 대구에서 달성 친목회 같은 계몽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상도의 혁신 유림과 중소 지주, 곡물상을 하던 상인이 많았고, 이들은 드러내 놓고 할 수 없게 된 국권 회복 운동을 비밀 조직으로 이어 가려 했습니다.
전개
1915년 1월 대구 앞산의 한 암자에서 윤상태·서상일 등이 시를 짓는 모임을 가장해 모여 조선 국권 회복단을 결성했습니다. 단군을 받드는 의식을 치르고,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일부 회원은 그해 7월 결성된 대한 광복회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대구 지역 만세 시위에 참여했고, 유림 대표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보낸 파리 장서 운동도 도왔습니다.
결성일은 1915년 음력 1월 15일로 전해집니다. 뒤에 정비된 임원을 보면 통령 윤상태, 외교부장 서상일, 교통부장 이시영·박영모, 기밀부장 홍주일 등이 있었고, 마산에도 지부를 두었습니다. 회원들이 운영하던 곡물상과 상점을 연락 거점과 자금 창구로 썼습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대구 시위를 돕고, 경남 창원의 진동·진북·진전 세 면 주민이 벌인 삼진 의거(4월 3일)에도 회원 변상태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 시위에서 여러 명이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해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을 호소한 파리 장서를 전달하는 일도 도왔고, 상하이 임시 정부에 보낼 자금을 모았습니다.
결과와 의미
1919년 조직이 드러나 회원들이 붙잡히면서 활동이 끝났습니다. 경상도 지역 비밀 결사가 대한 광복회와 3·1 운동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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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윤상태
서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