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민주 구국 선언
명동 성당 3·1절 미사에서 윤보선·김대중·함석헌 등이 긴급 조치 철폐와 박정희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배경
긴급 조치 9호로 유신 헌법에 대한 비판이 전면 금지되자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는 종교 행사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의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과 개신교 목회자들이 기도회를 열며 인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1975년 긴급 조치 9호 이후 신문·방송은 반정부 움직임을 보도할 수 없었습니다. 1974년 가톨릭 원주 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것을 계기로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이 만들어졌고, 개신교 쪽에서도 목요 기도회 같은 모임이 인권 문제를 다뤘습니다. 종교 행사는 정부가 막기 어려운 몇 안 되는 공개 모임이었습니다.
전개
1976년 3월 1일 서울 명동 성당에서 열린 3·1절 기념 미사에서 이우정 교수가 ‘민주 구국 선언’을 낭독했습니다. 선언은 긴급 조치 철폐, 구속된 민주 인사 석방, 언론·집회·출판의 자유 보장, 의회 정치 회복, 사법부 독립 등을 요구하며 민주주의 회복이 곧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밝혔습니다. 윤보선·김대중·함석헌·정일형·안병무 등 10명이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고, 초안은 문익환 목사가 썼습니다.
정부는 이를 ‘정부 전복 선동 사건’으로 발표했습니다. 선언 관련자 18명이 긴급 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됐고, 1977년 대법원에서 문익환·김대중·윤보선·함석헌 등이 징역 5년 등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선언문 초안은 1976년 2월 문익환 목사가 작성했고, 문동환·이문영·서남동 등과 뜻을 모아 서명자를 모았습니다. 서명자는 윤보선·함석헌·정일형·김대중·윤반웅·안병무·이문영·서남동·문동환·이우정의 10명이었습니다. 3월 1일 저녁 명동 성당의 3·1절 기념 미사는 신부들과 개신교 인사들이 함께한 신구교 합동 기도회로 열렸고, 미사 끝에 서울여대 이우정 교수가 선언문을 읽었습니다.
서울지방검찰청은 3월 10일 이 선언이 ‘일부 재야인사들이 정부 전복을 선동한 사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문익환 등 11명을 구속하고 9명을 불구속 입건했으며, 선언과 관계된 신부 김승훈·함세웅 등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해외 언론과 인권 단체가 재판을 지켜봤습니다.
결과와 의미
전직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 원로 종교인이 한데 모여 유신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흩어져 있던 재야 세력이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건은 국제 사회에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역할도 했습니다.
관련자들은 뒤에 재심을 청구했고, 2013년 법원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은 ‘명동 사건’이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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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기
“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1919년 3월 1일 전 세계에 울려 퍼지던 이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그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있는 것은 구국선열들의 피를 땅에 묻어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인물
문익환1918~1994
윤보선1897~1990
함석헌1901~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