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연표

근대› 흥선대원군 집권기

병인년의 충돌 —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천주교 탄압(병인박해)이 시작된 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불타고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했습니다. 서양과의 첫 무력 충돌이 한 해에 몰렸습니다.

기간
1866.1 ~ 1866.12.31 · 11개월
누가 다스렸나
임금 고종 · 실권 흥선대원군
담긴 것
사건 7 · 영상 55 · 영화·드라마 3

이 시기를 한 번에 보는 영상 10편

여러 사건을 이어서 다루는 영상입니다. 옆으로 넘겨 보세요.

해설·교양 · 해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조선이 이긴 전쟁이 맞을까

은근한 잡다한 지식 · 51.8만회 ·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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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두 양요를 조선의 승리로 볼 수 있는지 따져 보는 해설입니다.

1866.10 ~ 1871.7.3 · 문수산성 전투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해설

병인박해 & 병인양요 한번에 다보기

로빈의 역사 기록 · 8.7만회 ·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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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8%추천 ★★★★★

병인박해와 병인양요를 이어서 요약한 개인 채널 영상입니다.

1866.2 ~ 1866.11 · 병인박해 → 외규장각 도서 약탈

해설·교양 · 해설

제너럴셔먼호 사건 & 신미양요 한번에 다보기

로빈의 역사 기록 · 6.7만회 ·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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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8%추천 ★★★★★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를 이어서 요약한 영상입니다.

1866.8 ~ 1871.7.3 · 제너럴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강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 암군인가 개혁 군주인가, 고종은 어떤 왕이었을까

사피엔스 스튜디오 · 169.3만회 ·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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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75%추천 ★★★★★

고종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재위 기간을 훑는 강연입니다.

1864.1.21 ~ 1907.7.20 · 병인박해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해설

흥선대원군부터 한일 병합까지 근대 한국사 한번에(지도 애니메이션)

로빈의 역사 기록 · 97만회 · 1: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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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90%추천 ★★★★★

흥선대원군부터 병합까지 근대사를 90분에 훑는 통합 영상입니다.

1864.1.21 ~ 1910.8.29 · 병인박해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다큐

KBS 한국사전 — 흥선대원군, 왜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나

KBS 히스토리 · 95.5만회 · 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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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75%추천 ★★★★★

대원군과 고종의 대립을 축으로 집권부터 을미사변 무렵까지 다룹니다.

1864.1.21 ~ 1895.10.8 · 병인박해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강의

7일의 기적 5일차 1교시 — 흥선 대원군

최태성 1TV · 83.2만회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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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5%추천 ★★★★★

흥선대원군 집권기 기출 개념을 한 교시에 훑는 한능검 강의입니다.

1864.1.21 ~ 1873.12 · 병인박해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예능

벌거벗은 한국사 — 흥선대원군은 어떻게 고종을 왕으로 만들었을까

tvN D ENT · 74만회 · 2: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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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집권 과정과 정책을 길게 다룬 벌거벗은 한국사입니다.

1864.1.21 ~ 1873.12 · 병인박해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다큐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EBS 다큐 · 70.5만회 · 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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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외교 선택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 일부입니다.

1864.1.21 ~ 1907.7.20 · 병인박해 → 당백전 발행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 병인박해부터 척화비까지,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KBS 히스토리 · 4.6만회 ·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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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병인박해부터 척화비까지 쇄국 정책을 순서대로 정리한 짧은 다큐입니다.

1866.2 ~ 1871 · 병인박해 → 당백전 발행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드라마 3편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영화 · 2018· 공식 영상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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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40 ~ 1868.5

흥선대원군(이하응)과 세도 가문 장동 김씨가 왕이 날 명당을 두고 다투는 이야기. 남연군 묘 이장이 소재(창작 섞임)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명당 가이드 리뷰 by 발없는새

발없는새 · 4.7만회 ·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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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1982· 제목만

「풍운」

배경 1863 ~ 1898

KBS 대하드라마(51부작). 유주현의 소설 『대원군』이 원작으로, 흥선대원군(이순재)의 집권과 쇄국을 그렸습니다

드라마 · 2001· 공식 영상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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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66 ~ 1895.10.8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의 일생을 따라 대원군과의 갈등부터 을미사변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드라맛집] 내가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 몰아보기

KBS Drama Classic · 12.3만회 ·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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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연표 7건

AI 분석 — 영상마다 제목·설명문·채널을 붙은 사건과 대조해 일치도(그 사건을 얼마나 정면으로 다루나)와 추천도(일치도·출처·설명의 충실함·조회수)를 매겼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본 결과가 아니라 추정치입니다(2026-09-25 기준). 영상은 사실 기록(그때 찍은 기록·방송 뉴스), 해설·교양(다큐·강의·교양 예능), 창작(드라마·영화 — 허구가 섞임)으로 나눴습니다.

앞 시기에서 이어지는 일: 경복궁 중건 (~1868)

  1. 1866

    2월

    사회음력 1866년 1월 시작

    병인박해

    1866.2 ~ 1871 · 5년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이 처형됐습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프랑스의 힘으로 막으려던 교섭이 틀어진 뒤 탄압으로 돌아섰습니다.

    배경

    천주교는 18세기 말 조선에 들어와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같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교세를 넓혔습니다. 1860년대에는 프랑스 선교사 12명이 몰래 들어와 활동했고 신자 수는 2만 명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대원군 주변에도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있었고, 대원군은 처음에는 천주교에 크게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860년대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해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통상을 요구하자, 남종삼 등 천주교 신자들은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 영국·프랑스와 손잡고 러시아를 막자고 대원군에게 건의했습니다.

    전개

    1866년 2월 말 베르뇌 주교가 서울에서 붙잡혔고, 3월 7일(양력) 브르트니에르·볼리외·도리 신부와 함께 한강 새남터에서 처형됐습니다. 3월 30일에는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위앵 신부가 충청도 보령 갈매못에서 처형됐습니다. 조선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리델·페롱·칼레 세 신부만 살아남았습니다.

    교섭은 선교사들과의 만남이 늦어지면서 흐지부지됐고, 그사이 러시아의 위협도 누그러졌습니다. 한편 청나라에서 천주교를 탄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조정 안에서 천주교와 가까이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대원군은 1866년 음력 1월 대대적인 탄압으로 돌아섰습니다.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붙잡혀 처형됐고, 남종삼 등 조선인 신자도 잇따라 처형됐습니다. 탄압은 병인양요와 오페르트 도굴 사건을 거치며 더 거세졌고 1871년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처형된 신자는 흔히 8천여 명으로 전해지지만 정확한 수는 알 수 없고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 천주교 역사상 가장 큰 박해였습니다.

    살아남은 선교사 3명 가운데 리델 신부가 청나라로 탈출해 프랑스 극동 함대에 소식을 알렸고, 이것이 1866년 가을 병인양요로 이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64~1865년러시아인이 두만강 너머에서 통상을 요구하자, 남종삼 등이 프랑스와 손잡고 러시아를 막자고 대원군에게 건의했습니다.
    2. 1866년 1월(음력)교섭이 틀어지고 조정 안의 비판이 커지자 대원군이 천주교 탄압을 명했습니다.
    3. 1866년 2월 말베르뇌 주교가 서울에서 붙잡혔습니다.
    4. 1866년 3월 7일베르뇌 주교 등 프랑스 선교사 4명이 새남터에서 처형됐습니다. 며칠 뒤 남종삼 등 조선인 신자도 처형됐습니다.
    5. 1866년 3월 30일다블뤼 주교 등 선교사 3명이 보령 갈매못에서 처형됐습니다.
    6. 1866년 7월리델 신부가 배를 타고 청나라로 탈출해 톈진의 프랑스 함대에 박해 소식을 알렸습니다.
    7. 1866년 가을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양화진 잠두봉(절두산) 등에서 처형이 더 늘었습니다.
    8. 1868~1871년오페르트 도굴 사건과 신미양요를 거치며 탄압이 다시 거세졌습니다.

    인물

    • 남종삼1817~1866

      러시아 견제를 위해 프랑스와 손잡자고 건의했다가 처형됐습니다.

      승지 벼슬을 지낸 관리이자 천주교 신자입니다. 대원군과 선교사 사이를 이으려 했으나 교섭이 무산된 뒤 박해가 시작되자 붙잡혀 서울에서 처형됐습니다. 1984년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됐습니다.

    • 베르뇌 주교1814~1866

      조선 교구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처형됐습니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1856년 조선에 들어와 제4대 조선 교구장을 맡았습니다. 병인박해 초기에 붙잡혀 새남터에서 처형됐고, 역시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됐습니다.

    • 다블뤼 주교1818~1866

      베르뇌 주교 다음의 교구 책임자로, 붙잡혀 보령 갈매못에서 처형됐습니다.

      앙투안 다블뤼는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1845년 조선에 들어와 20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조선 천주교 순교자들의 기록을 모아 프랑스로 보냈고, 이 자료는 뒤에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의 바탕이 됐습니다.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됐습니다.

    더 알아두기

    절두산 순교 성지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한강 양화진까지 올라오자, 조정은 그 근처 잠두봉에서 신자들을 처형했습니다. 머리를 잘랐다는 뜻에서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지금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순교 성지로 남아 있습니다.
    박해의 흔적이 남은 곳
    서울의 새남터와 절두산, 충남 보령의 갈매못, 서산 해미읍성과 해미 순교 성지 등이 병인박해 때 신자들이 처형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미 순교 성지는 2020년 교황청 국제 성지로 지정됐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서학(천주교)

    해설·교양 · 다큐

    [한국 천주교회사] 병인박해 - 1부 희망의 꽃은 지고

    한국 가톨릭 디지털 역사관 · 3.9만회 · 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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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병인박해의 배경과 전개를 다룬 천주교 교회사 다큐 1부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병인박해 순교자 - 1부 희망의 꽃은 지고

    cpbcTV가톨릭콘텐츠의모든것 · 1.3만회 · 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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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톨릭 방송 다큐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근대4] 대원군 vs 천주교(Feat. 병인박해)

    황현필 한국사 · 27.1만회 ·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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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황현필 강의로 대원군과 천주교, 병인박해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해설·교양 · 만화

    옛날 병인년 즈음하여... | 러시아, 프랑스, 조선, 흥선대원군, 병인박해, 병인양요 | 핵심 in 한국사

    EBSi · 3.3만회 ·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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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EBSi 애니메이션으로 병인박해와 병인양요를 함께 짧게 풉니다.

    해설·교양 · 해설

    [병인년 박해 150주년] 병인박해는 어떻게 시작 되었나?

    cpbcTV가톨릭콘텐츠의모든것 · 1.2만회 ·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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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평화방송이 병인박해의 시작을 2분 남짓 요약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고1 한국사] 3단원 2차시│병인박해│병인양요│신미양요│

    워니비 · 8만회 ·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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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5%추천 ★★★★★

    병인박해와 두 양요를 한 번에 다루는 고교 강의입니다.

  2. 8월

    외교음력 7월

    제너럴셔먼호 사건

    1866.8 ~ 1866.9 · 1개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다 충돌했습니다.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지휘한 관민이 배를 불태웠고, 이 일이 5년 뒤 신미양요의 구실이 됐습니다.

    배경

    1866년 여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중국 톈진을 떠나 조선으로 왔습니다. 배에는 서양인 선주·선원과 중국인 등 아시아인 선원, 통역을 맡은 영국 출신 개신교 선교사 토머스 등이 타고 있었고 대포와 무기도 싣고 있었습니다. 조선과 교역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조선은 서양과의 통상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서양 상인들 사이에는 평양 일대에 옛 왕릉과 보물이 많고 조선과 교역하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선주인 미국인 프레스턴과 영국 상사가 배를 띄웠고, 승선 인원은 20여 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개

    배는 1866년 음력 7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 근처까지 올라왔습니다.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관리를 보내 돌아가라고 권하고 식량을 주기도 했으나, 선원들은 통상을 요구하며 머물렀습니다. 마침 큰비로 불었던 강물이 줄면서 배가 모래톱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선원들이 조선 관리(중군 이현익)를 붙잡아 가두고, 배에서 총과 대포를 쏴 주민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박규수는 관군과 주민을 이끌고 반격했고, 음력 7월 하순 땔나무를 실은 배에 불을 붙여 흘려보내는 화공으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습니다. 배에 탄 사람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선 관리들은 배에 식량과 땔감을 보내면서도, 나라 법에 따라 교역은 할 수 없으니 떠나라는 뜻을 거듭 전했습니다. 붙잡힌 중군 이현익은 평양 관민이 강가로 몰려든 가운데 구출됐습니다. 조정에 올라간 장계에는 배가 강가 주민의 곡식을 빼앗고 총을 쏴 사상자가 났다는 내용이 적혔습니다.

    결과와 의미

    미국은 배의 행방을 조사하려고 1867년과 1868년 군함을 보내 경위를 따졌습니다. 5년 뒤인 1871년 미국은 이 사건의 책임을 묻고 통상을 요구한다며 함대를 보냈고, 이것이 신미양요입니다.

    조선 조정은 서양 배를 물리친 일로 받아들였고, 이후 통상 거부 방침에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66년 8월 초제너럴셔먼호가 청나라 톈진을 떠나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2. 1866년 8월(음력 7월 초)배가 대동강 어귀에 들어와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3. 1866년 8월 하순평양 근처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했습니다. 박규수는 식량을 주고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4. 며칠 뒤선원들이 조선 관리 이현익을 붙잡아 가뒀고, 배에서 총과 대포를 쏴 주민이 다치거나 죽었습니다.
    5. 1866년 9월 초(음력 7월 하순)모래톱에 걸린 배에 불붙인 배를 흘려보내 불태웠습니다. 탄 사람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6. 1867년미국 군함 워추셋호가 황해도 앞바다에 와서 사건 경위를 물었습니다.
    7. 1868년미국 군함 셰넌도어호가 대동강 어귀에 와서 다시 조사했습니다.
    8. 1871년미국이 이 사건을 구실로 강화도에 함대를 보내 신미양요가 일어났습니다.

    인물

    • 박규수1807~1877

      평안도 관찰사로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는 일을 지휘했습니다.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입니다. 청나라를 오가며 서양 사정에 밝아졌고, 뒤에 우의정을 지내며 일본과의 수교를 주장한 개항론자가 됐습니다. 그의 사랑방에서 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 개화파 젊은이들이 배웠습니다. 셔먼호를 불태운 사람이 뒤에 개화의 스승이 된 셈입니다.

    •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1839~1866

      제너럴셔먼호의 통역으로 탔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영국 웨일스 출신 개신교 선교사입니다. 조선에 성경을 전하려고 배에 올랐고, 배가 불탄 뒤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첫 순교자로 기립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운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주권을 지킨 정당한 대응으로 보는 쪽

    허가 없이 내륙 깊이 들어와 관리를 붙잡고 주민에게 총을 쏜 무장 선박을 물리친 것은 정당한 방어였다고 봅니다. 조선이 먼저 식량을 주며 떠나라고 권했다는 점도 듭니다.

    과잉 대응과 외교적 대가를 지적하는 쪽

    배가 모래톱에 걸려 움직일 수 없었던 상황에서 탑승자 전원이 죽은 것은 지나쳤다고 봅니다. 서양 쪽에서는 이 사건이 조선을 적대적인 나라로 보이게 했고, 결국 신미양요라는 더 큰 충돌의 구실이 됐다고 지적합니다.

    더 알아두기

    ‘상선’이었지만 무장한 배
    제너럴셔먼호는 상선이었지만 대포를 싣고 있었고 실제로 발포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쪽 기록은 이 사건을 무단 침입한 배를 물리친 일로, 미국 쪽 기록은 조선이 상선과 선원을 공격한 일로 서로 다르게 적었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근대6]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백두혈통?

    황현필 한국사 · 27.3만회 ·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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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황현필 강의로 제너럴셔먼호 사건 자체를 다룹니다.

    해설·교양 · 해설

    하버드 역사학자들이 얘기하는 제너럴셔먼호 사건

    우물 밖의 개구리 · 12.9만회 ·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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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8%추천 ★★★★★

    미국 학자들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습니다.

    해설·교양 · 만화

    제너럴 셔먼호 기억나는 사람 클릭 | 신미양요, 박규수, 어재연 | 핵심 in 한국사

    EBSi · 4.3만회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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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를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서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다큐

    [2부 요약본] 제너럴 셔먼호 좌초, 5년 후 미국이 조선을 무력 침략하다!ㅣ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20분 순삭⏰] /YTN2

    YTN 밀덕스 · 3,248회 ·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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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셔먼호 사건부터 신미양요까지를 다룬 YTN 방송 요약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관광통역안내사] 설민석 - 제너럴셔먼호 소각 사건(feat. CG보소)

    설민석 Seol Min Seok · 2.8만회 ·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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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설민석이 CG와 함께 소각 사건을 1분 남짓 짧게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해설

    [근대사 삼국지] 제145부 : 불타는 대동강, 제너럴셔먼호 전소!(한국편)

    김영준 · 1,082회 ·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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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대동강에서 배가 불타기까지의 경과를 길게 풀어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조선에서 침몰당한 최초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의 진실!!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 ㅣ유해석 교수ㅣ총신대 선교대학원

    지식IN 미래를 세우다 · 1.1만회 · 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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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셔먼호 사건과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기독교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만화

    [초능력 비주얼씽킹 한국사] 2-2-17.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 무엇인가요?

    참쌤스쿨 · 2,998회 ·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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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그림 설명으로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오페르트 사건을 함께 다룹니다.

  3. 10월

    전쟁음력 9월

    문수산성 전투

    한성근이 이끄는 부대가 김포 문수산성에서 강화 해협을 건너온 프랑스군과 싸웠습니다.

    배경

    프랑스군이 강화부를 점령하자 조정은 강화 해협 건너편 김포 쪽을 지키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문수산성은 강화도를 마주 보는 김포 문수산에 숙종 때 쌓은 산성으로, 서울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요충지였습니다.

    1866년 10월 16일 강화부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조선 조정에 선교사 살해 책임자 처벌과 조약 체결을 요구하는 글을 보냈습니다. 조정은 이를 거부하고 순무영을 두어 한강 어귀의 양화진, 통진, 문수산성 등에 병력을 나눠 배치했습니다. 강화 해협만 건너면 김포를 지나 서울로 가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해협 건너편이 첫 방어선이었습니다.

    전개

    1866년 음력 9월, 양력으로는 10월 하순 한성근이 이끄는 부대가 문수산성에 들어가 지켰습니다. 강화 해협을 건너온 프랑스군이 산성으로 다가오자 조선군은 매복해 있다가 공격했습니다.

    프랑스군이 반격하자 조선군은 병력과 화력에서 밀려 물러났고,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의 성문과 민가 일부를 불태웠습니다. 양쪽 모두 사상자가 났습니다.

    조선군은 소규모 부대였고 무기도 화승총과 활이 중심이었던 반면, 프랑스군은 사거리가 긴 소총으로 무장해 있었습니다. 조선군이 물러난 뒤 프랑스군은 산성 안을 살피고 강화도로 돌아갔습니다.

    결과와 의미

    전투 자체는 조선군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났지만, 프랑스군은 한강 쪽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강화도로 돌아갔습니다. 조선군이 처음으로 프랑스군과 직접 맞서 싸운 전투로, 이후 정족산성 전투로 이어졌습니다.

    이 전투로 프랑스군은 조선군이 해협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고, 조선 조정은 정면 대결보다 매복과 기습이 효과적이라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약 2주 뒤 양헌수는 이 경험을 살려 정족산성에서 매복 작전을 펼쳤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66년 10월 16일프랑스군이 강화부를 점령했습니다.
    2. 10월 하순 초조정이 순무영을 설치하고 김포·통진 일대에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한성근 부대가 문수산성에 들어갔습니다.
    3. 1866년 10월 26일(음력 9월 18일)강화 해협을 건너온 프랑스군을 조선군이 문수산성에서 기습했습니다.
    4. 같은 날프랑스군의 반격에 조선군이 물러났고, 프랑스군은 성문과 민가 일부를 불태운 뒤 강화도로 돌아갔습니다.
    5. 1866년 11월 9일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습니다.

    인물

    • 한성근

      순무영 소속 무관으로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맞아 싸웠습니다.

      병인양요 당시 하급 무관으로, 문수산성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이 공으로 벼슬이 올랐고 이후 여러 지방관과 무관 직을 지냈습니다.

    • 로즈 제독1812~1883

      강화부를 점령한 뒤 김포 쪽으로 부대를 보냈습니다.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으로 병인양요 원정을 이끌었습니다. 문수산성 전투 뒤 서울 쪽으로 나아가지 않고 강화도를 거점으로 조정을 압박했습니다.

    더 알아두기

    지금의 문수산성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에 성벽 일부와 성문이 남아 있으며 사적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성에 오르면 강화 해협과 강화도가 한눈에 보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1부 요약본] 압도적인 전력 차이, 그럼에도 결사항전을 벌이다! ㅣ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20분 순삭⏰] /YTN2

    YTN 밀덕스 · 3,351회 ·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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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YTN 전쟁 다큐 요약본으로 문수산성 전투가 한 장면을 차지합니다.

    해설·교양 · 만화

    산성이가 알려주는 문수산성

    김포시 · 5,068회 ·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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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45% · 간접 관련추천 ★★★★★

    김포시가 문수산성을 소개하는 짧은 캐릭터 영상입니다.

  4. 10월

    전쟁음력 9~10월

    병인양요

    1866.10 ~ 1866.11 · 1개월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습니다. 한성근이 문수산성에서,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맞서자 프랑스군은 물러났습니다.

    • 프랑스군은 물러나면서 강화도 외규장각의 의궤 등 도서를 약탈했습니다.
    •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 297권은 2011년 145년 만에 5년 단위 갱신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습니다.

    배경

    1866년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처형되자, 탈출한 리델 신부가 청나라 톈진에 있던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알렸습니다. 프랑스 공사관은 선교사 처형의 책임을 묻겠다며 조선 원정을 결정했습니다. 프랑스는 이 기회에 조선의 문을 열려는 뜻도 있었습니다.

    베이징에 있던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는 청 총리아문에 조선 국왕을 폐위하겠다는 뜻까지 담긴 강경한 통보를 보냈습니다. 청은 조선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고, 프랑스는 청의 중재 없이 직접 군대를 보냈습니다.

    전개

    조정은 대원군의 지휘 아래 이경하를 순무영 대장으로, 이용희를 중군으로 삼아 한강 어귀와 강화 해협 건너편 김포·통진 일대에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강화부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선교사를 죽인 책임자를 처벌하고 조약을 맺을 전권대신을 보내라고 요구했으나, 조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로즈 제독은 1866년 음력 8월 군함 3척으로 한강을 거슬러 서울 양화진 근처까지 올라와 물길을 살피고 돌아갔습니다. 음력 9월에는 군함 7척과 병력 1천여 명을 이끌고 다시 와 강화도에 상륙해 강화부를 점령했습니다.

    조정은 순무영을 설치해 맞섰습니다. 음력 9월 한성근 부대가 김포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과 싸웠고, 음력 10월 3일 양헌수가 이끈 포수 부대가 강화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습니다.

    정족산성에서 패하고 겨울이 다가오자 프랑스군은 약 한 달 만인 음력 10월(양력 11월) 강화도에서 물러났습니다. 떠나면서 강화 행궁과 외규장각에 불을 지르고 의궤 등 도서와 은괴를 가져갔습니다.

    결과와 의미

    조선은 프랑스군을 물리쳤다고 받아들였고, 흥선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더 굳혔습니다. 천주교 탄압도 더 심해졌습니다.

    프랑스군은 조정과 교섭도, 통상 약속도 얻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대신 외규장각 도서를 가져가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오랜 반환 문제를 남겼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66년 7월리델 신부가 톈진의 로즈 제독에게 병인박해를 알렸습니다.
    2. 1866년 9월 하순(음력 8월)로즈 제독이 군함 3척으로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서강 근처까지 올라와 물길을 조사하고 돌아갔습니다.
    3. 1866년 10월 16일군함 7척과 병력 1천여 명이 강화도에 상륙해 강화부를 점령했습니다.
    4. 1866년 10월 26일한성근 부대가 김포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과 싸웠습니다.
    5. 1866년 11월 9일(음력 10월 3일)양헌수의 포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습니다.
    6. 1866년 11월 중순프랑스군이 강화 행궁과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도서와 은괴를 싣고 철수했습니다.
    7. 1866년 말조정은 천주교 탄압을 강화하고 강화도와 한강 어귀의 방비를 늘렸습니다.

    인물

    • 로즈 제독1812~1883

      프랑스 극동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를 점령했습니다.

      피에르 귀스타브 로즈는 프랑스 해군 장교로, 당시 중국 주둔 극동 함대 사령관이었습니다. 원정은 본국 정부의 정식 승인 없이 현지 공사관과 함께 결정한 성격이 강했고, 프랑스 안에서도 성과 없는 원정이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 리델 신부1830~1884

      병인박해 때 탈출해 소식을 전하고 원정대의 길잡이로 동행했습니다.

      펠릭스 클레르 리델은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입니다. 박해를 피해 청으로 건너가 프랑스 함대에 알렸고, 원정 때 통역과 길 안내를 맡았습니다. 뒤에 조선 교구장이 되어 『한불자전』을 펴냈습니다.

    • 이경하1811~1891

      순무영 대장으로 프랑스군에 맞선 조선군 전체를 지휘했습니다.

      무관 출신으로 훈련대장·포도대장 등을 지냈습니다. 병인박해 때 포도대장으로 천주교 신자 체포를 맡았고, 1882년 임오군란 뒤에는 책임을 물어 귀양을 가기도 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병인양요는 조선의 승리였나

    조선의 방어 성공으로 보는 쪽

    근대식 군함과 무기를 갖춘 프랑스군이 교섭이나 배상도 얻지 못하고 물러난 것은 조선의 방어가 목적을 이뤘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특히 정족산성 전투에서 포수들이 거둔 승리가 철수를 이끌었다고 평가합니다.

    제한적인 충돌이었다고 보는 쪽

    프랑스군의 규모가 작고 원래 짧은 무력시위와 보복을 겨냥한 원정이었으며, 겨울과 보급 문제도 철수의 큰 이유였다고 봅니다. 또 이 경험으로 조선이 서양의 힘을 실제보다 낮게 보게 돼 통상 거부를 굳히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더 알아두기

    같은 때 주변에서는
    몇 해 앞서 일본의 조슈번은 시모노세키 해협을 지나는 서양 배에 포격했다가 1863~1864년 영국·프랑스·네덜란드·미국 연합 함대의 보복 공격을 받고 포대를 잃었습니다. 이 패배 뒤 조슈번은 서양을 몰아내자는 주장을 접고 서양 무기와 제도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서양과 부딪힌 경험이 조선과 일본에서 서로 다른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의궤

    해설·교양 · 강의

    [1강 무료보기] 승리한 전쟁이란: 병인양요ㅣ클래스e - 신효승의 《전쟁으로 본 한국사: 근대》

    EBSCulture (EBS 교양) · 6,252회 · 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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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EBS 클래스e 강연으로 병인양요를 전쟁사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근대5] 병인양요와 KTX

    황현필 한국사 · 33만회 ·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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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황현필 강의로 병인양요의 전개와 의미를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만화

    진격의 프랑스 함대, 병인양요 — 어린이 조선왕조실록

    지니스쿨 역사 · 117.4만회 ·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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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병인양요를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5분 사탐 한국 근현대사 — 병인양요

    EBS Learning · 5.5만회 ·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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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병인양요만 다루는 EBS 5분 강의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17 병인박해로 인한 병인양요 - 프랑스군의 강화도 외규장각 약탈

    KBS 히스토리 · 1.8만회 ·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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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병인박해를 빌미로 한 병인양요와 외규장각 약탈을 다룹니다.

    해설·교양 · 만화

    조선의 문을 열기 위한 서양의 침입 '병인양요·신미양요' (역사만화 75화) [공부왕찐천재]

    공부방찐천재 · 17.5만회 ·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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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한 편에 설명하는 만화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93회 무삭제 확장판] 조선, 서구 열강에 맞서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1부ㅣ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YTN2

    YTN 밀덕스 · 7.9만회 · 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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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YTN 전쟁 다큐 1부로 병인박해에서 병인양요까지 자세히 봅니다.

    해설·교양 · 해설

    프랑스가 조선에서 한달 만에 패퇴한 진짜 이유!! (프랑스 시점에서 보기)

    지식한잔 · 17.7만회 ·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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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프랑스 쪽 시점에서 한 달 만에 물러난 이유를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만화

    병인양요 2분 요약 노래

    유요 · 14.5만회 ·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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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병인양요 전개를 노래로 요약한 영상입니다.

    해설·교양 · 예능

    프랑스인에게 물어보는 병인양요 (큰별쌤 궁금) l #어서와한국은처음이지 l EP.148

    MBC every1 · 3.1만회 ·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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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프랑스 출신 출연자가 병인양요를 이야기하는 예능 클립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한프국제부부] 프랑스 아내, 프랑스 침략의 역사 '병인양요' 현장에 가다

    김치와 바게뜨 / Kimchi & Baguette · 35.3만회 ·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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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0%추천 ★★★★★

    강화도 병인양요 현장을 찾아가는 여행 영상입니다.

  5. 11월

    전쟁음력 10월 3일

    정족산성 전투

    양헌수가 이끄는 포수 부대가 강화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패배 뒤 프랑스 함대는 강화도에서 물러났습니다.

    배경

    문수산성 전투 뒤에도 프랑스군은 강화부에 머물며 조정을 압박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프랑스군의 화력에 정면으로 맞서기 어렵다고 보고, 강화도 남쪽의 정족산성에 병력을 몰래 들여보내 뒤를 치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양헌수는 강화도 남쪽 해안이 프랑스 함대의 감시가 덜한 틈을 노렸습니다. 병사들은 호랑이 사냥으로 단련된 산골 포수들이 중심이었는데, 이들은 화승총을 다루는 솜씨가 좋고 산길 매복에 익숙했습니다.

    전개

    순무 천총 양헌수는 호랑이 사냥꾼 출신 포수 등 500여 명을 이끌고 밤에 강화 해협을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갔습니다. 정족산성 안에는 전등사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었습니다.

    1866년 11월 9일(음력 10월 3일) 프랑스군 160여 명이 산성을 공격하려 다가오자, 성안에 숨어 있던 포수들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제히 사격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여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강화부로 물러났습니다.

    포수들은 11월 7일 밤 김포 쪽 덕포에서 배를 타고 손돌목 부근의 좁은 해협을 몰래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갔습니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이 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부대를 보냈습니다. 사상자 규모는 조선과 프랑스 기록에 차이가 있습니다.

    결과와 의미

    이 패배 뒤 프랑스군은 며칠 만에 강화도에서 철수했습니다. 정족산성 전투는 병인양요에서 조선이 거둔 가장 뚜렷한 승리로 기록됩니다. 조선군 피해는 전사자 1명 등 가벼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승리 소식은 조정의 사기를 크게 높였고, 양헌수와 함께 싸운 포수들은 상을 받았습니다. 조정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각 지방에서 포수를 모아 군사력을 보강했고, 5년 뒤 신미양요 때 강화도를 지킨 병력에도 포수가 많았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66년 10월 26일문수산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물러났습니다.
    2. 1866년 11월 7일 밤(음력 10월 1일)양헌수가 포수 500여 명을 이끌고 김포에서 해협을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갔습니다.
    3. 1866년 11월 9일(음력 10월 3일) 오전프랑스군 160여 명이 산성의 문으로 다가오자 성안의 포수들이 일제히 사격했습니다.
    4. 같은 날 오후프랑스군이 부상자를 데리고 강화부로 물러났습니다.
    5. 1866년 11월 중순프랑스군이 강화 행궁과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강화도에서 철수했습니다.

    인물

    • 양헌수1816~1888

      포수 부대를 이끌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습니다.

      무과에 급제한 무관으로, 제주 목사 등을 지냈습니다. 정족산성 승리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여러 군사·행정 요직을 거쳤습니다.

    • 올리비에 대령

      프랑스군 공격 부대를 이끌고 정족산성을 공격하다 물러났습니다.

      로즈 제독 휘하 원정대의 지휘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조선군이 산성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고 병력 160여 명으로 공격에 나섰다가 매복에 걸려 퇴각했습니다.

    더 알아두기

    전등사의 양헌수 승전비
    정족산성 안 전등사 입구에 양헌수의 승리를 기리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정족산성(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족산 사고의 실록
    정족산성 안에는 전쟁에 대비해 『조선왕조실록』을 나눠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었습니다. 전투가 성 밖에서 끝나 실록은 무사했고, 정족산 사고본 실록은 오늘날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전해집니다.

    해설·교양 · 해설

    [임용한의 전쟁사] 한국사 최고의 전술과 전투 베스트 10(8)-병인양요와 정족산성 전투

    인문채널휴 · 3.7만회 ·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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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양헌수의 정족산성 전투 전술을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다큐

    [한 점의 유물, 한 시대의 증언 2화] “기록으로 남은 전투” 정족산성에서 프랑스를 막아낸 조선_양헌수 장군

    전쟁기념사업회 · 874회 ·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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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전쟁기념사업회가 유물로 정족산성 전투를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19 조선 최정예부대 ‘산포수’, 병인양요를 승리로 이끌다

    KBS 히스토리 · 3,517회 ·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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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양헌수가 산포수로 정족산성에서 이긴 과정을 짧게 봅니다.

    해설·교양 · 해설

    [근대사 삼국지] 제159부 : 조선 VS 프랑스 정족산성 공방전!(한국편)

    김영준 · 1,039회 ·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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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정족산성 공방전 한 가지만 자세히 풀어 설명합니다.

  6. 11월

    사회

    외규장각 도서 약탈

    프랑스군이 물러나며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된 의궤 등 도서와 은괴를 가져가고 건물을 불태웠습니다. 의궤 297권은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습니다.

    배경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강화도 행궁 안에 세운 왕실 도서관입니다. 서울 창덕궁 규장각의 분관으로, 난리가 났을 때 중요한 기록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강화도에 두었습니다. 특히 왕실 행사의 준비와 진행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한 의궤가 많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전개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부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약 한 달 동안 머물다 1866년 11월 철수하면서 외규장각 건물을 불태웠습니다. 그 전에 도서 340여 책과 은괴 19상자 등을 골라 배에 실어 갔습니다. 나머지 6천여 권의 책은 건물과 함께 불탄 것으로 봅니다.

    가져간 책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옮겨졌고 오랫동안 잊혀 있었습니다. 1975년 이 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의궤를 찾아내 세상에 알렸습니다.

    프랑스군이 가져간 의궤는 대부분 임금이 보도록 만든 어람용이었습니다. 이 책들은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들어갔지만 오랫동안 중국 책으로 분류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결과와 의미

    한국 정부는 1991년 반환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하며 의궤 1권을 돌려줬지만 나머지는 오래 협상이 이어졌습니다. 2011년 의궤 297권이 145년 만에 돌아왔고,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다만 프랑스 법상 국가 소장품은 양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 형식이 됐습니다. 이 방식을 두고 국내에서는 실질적 반환이라는 의견과 온전한 반환이 아니라는 의견이 함께 나왔습니다.

    2010년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때 한국과 프랑스 정상이 반환에 합의했고, 의궤 297권은 2011년 4월부터 5월까지 네 차례에 나눠 돌아왔습니다. 그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 전시로 처음 공개됐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782년정조가 강화 행궁 안에 외규장각을 세웠습니다.
    2. 1866년 10~11월강화부를 점령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 340여 책과 은괴를 챙겼습니다.
    3. 1866년 11월 중순철수하며 외규장각 건물을 불태웠습니다. 남은 6천여 권이 함께 불탄 것으로 봅니다.
    4. 1975년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에서 의궤를 찾아냈습니다.
    5. 1991년한국 정부가 프랑스에 반환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6. 1993년 9월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하며 『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을 돌려줬습니다.
    7. 2010년 11월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한·프 정상이 5년 단위 갱신 대여 방식의 반환에 합의했습니다.
    8. 2011년 4~5월의궤 297권이 네 차례에 나눠 145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인물

    • 박병선1923~2011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반환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가 역사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했습니다. 1972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는 『직지심체요절』의 가치를 알렸고, 1975년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냈습니다. 의궤가 돌아온 201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1993년 방한하며 외규장각 의궤 1권을 돌려주고 반환 논의의 문을 열었습니다.

      1981~1995년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고속철도 사업 협력과 맞물려 방한할 때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한 권을 가져와 돌려줬습니다.

    더 알아두기

    의궤란
    ‘의식의 본보기가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왕실 혼례·장례·잔치·궁궐 공사 같은 큰 행사를 준비하고 치른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행렬을 그린 반차도에는 참가자의 옷차림과 순서까지 자세히 나옵니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습니다.
    어람용 의궤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상당수는 임금이 직접 보도록 따로 만든 어람용입니다. 좋은 종이와 비단 표지를 써서 보관용보다 훨씬 공들여 만들었고, 국내에 한 부만 있던 유일본도 들어 있어 가치가 큽니다.
    외규장각의 오늘
    불탄 외규장각 건물은 2003년 강화 고려궁지 안에 복원됐습니다. 돌아온 의궤의 디지털 원문은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의궤

    해설·교양 · 다큐

    "약탈하지 말란 법 없었잖아?" 뻔뻔한 약탈자와 '외규장각 의궤' | KBS 20110317 방송

    KBS 다큐 · 6만회 · 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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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규장각 의궤 약탈과 귀환을 다룬 KBS 역사스페셜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KBS 역사스페셜 –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도서 / KBS 2011.3.17 방송

    KBS 히스토리 · 7.4만회 · 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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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과정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해설·교양 · 예능

    [선공개] 병인양요 때 약탈당했던 '의궤'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차이나는 클라스(jtbclecture) 225회

    교양 Voyage · 8,508회 ·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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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는 클라스가 약탈된 의궤와 돌아온 과정을 다룹니다.

    해설·교양 · 다큐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윤인구 아나운서와 함께하는 전시 투어

    국립중앙박물관 · 6.9만회 · 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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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궤의 가치를 박물관 전시로 설명하고 약탈 과정은 짧습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오늘은] 외규장각 의궤 국내 반환 마무리 (2011.5.27.) / KBS 2022.05.27.

    KBS News · 2,547회 ·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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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뉴스로 약탈된 의궤의 반환 마무리를 짧게 전합니다.

  7. 12월

    경제음력 1866년 11월

    당백전 발행

    1866.12 ~ 1867 · 1년

    경복궁 중건과 군비 마련을 위해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를 매긴 당백전을 찍었습니다. 실제 가치는 그에 한참 못 미쳐 물가가 크게 뛰었고, 반년 남짓 만에 발행을 멈췄습니다.

    배경

    경복궁 중건 비용은 원납전만으로 모자랐고, 1866년 병인양요 뒤에는 해안 방비를 늘리는 데 드는 군사비도 급해졌습니다. 조정은 세금을 더 걷기 어려운 상황에서 돈을 새로 찍어 재정을 메우기로 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기본 화폐는 숙종 때인 1678년부터 널리 쓰인 상평통보 한 닢, 곧 1문이었습니다. 화폐의 가치는 대체로 동전에 든 구리의 가치와 비슷하게 유지됐기 때문에, 액면만 크게 매긴 돈을 찍으면 곧바로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일부 대신은 이런 걱정을 내놓았지만 급한 재정 사정이 앞섰습니다.

    전개

    1866년 음력 11월 당시 쓰던 상평통보 한 닢의 100배 가치를 매긴 당백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백전에 들어간 구리의 양은 상평통보의 대여섯 배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액면과 실제 가치의 차이만큼 나라가 이익을 얻는 구조였습니다.

    당백전이 대량으로 풀리자 사람들은 이 돈을 믿지 않았고 상품 가격이 빠르게 올랐습니다. 쌀값이 몇 배로 뛰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정은 1867년 음력 4월 무렵 발행을 멈췄습니다.

    당백전은 군영인 금위영에서 주조했습니다. 액면과 실제 가치의 차이가 크다 보니 몰래 당백전을 찍는 일도 생겨 돈이 더 흔해졌고, 상인들은 당백전을 받기를 꺼리거나 물건값을 올려 불렀습니다.

    결과와 의미

    반년 남짓 발행됐지만 물가가 크게 오르고 화폐 제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발행을 멈춘 뒤에는 청전을 들여와 쓰게 해 물가 불안이 이어졌습니다. 당백전은 원납전과 함께 대원군 재정 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며, 1873년 최익현의 상소에서도 비판받았습니다.

    당백전의 실패는 뒤에도 교훈으로 거론됐지만, 개항 뒤 재정이 급해지자 조정은 당오전·백동화처럼 액면을 부풀린 돈을 다시 찍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66년 3월(음력)경복궁 공사장 화재로 공사비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2. 1866년 10~11월병인양요를 겪은 뒤 해안 방비를 위한 군사비가 급해졌습니다.
    3. 1866년 11월(음력)상평통보 100배 가치의 당백전 주조를 시작했습니다.
    4. 1867년 봄당백전이 넘쳐 나면서 쌀값을 비롯한 물가가 몇 배로 뛰었습니다.
    5. 1867년 4월(음력) 무렵당백전 주조를 멈췄습니다.
    6. 1867년재정 부족을 메우려 값싼 청나라 동전(청전)을 들여와 쓰게 했습니다.
    7. 1873년 11월(음력)최익현이 상소에서 당백전 등의 폐단을 비판했습니다.

    인물

    •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

      경복궁 중건과 군비 마련을 위해 당백전 발행을 결정했습니다.

      고종의 아버지로 1864~1873년 실권을 쥐었습니다. 당백전으로 당장 재원은 마련했지만 물가 상승으로 민심을 크게 잃었습니다.

    • 최익현1833~1906

      1873년 상소에서 당백전 등 대원군의 재정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이항로의 제자인 유학자로, 계유상소로 대원군 하야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개항 반대와 의병 활동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더 알아두기

    당백전이란
    ‘백 닢에 해당하는 돈(當百錢)’이라는 뜻입니다. 실제 가치보다 액면이 크게 매겨진 돈을 흔히 악화라고 부르는데, 당백전은 조선에서 악화가 물가를 끌어올린 대표적인 예로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땡전’의 어원이라는 이야기
    돈이 한 푼도 없다는 뜻의 ‘땡전 한 푼 없다’가 당백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는 민간 어원설이고 학계에서 확정된 설명은 아닙니다.

    해설·교양 · 강의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명성황후 |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역풍 [설민석의 한국통사 EP.47] | 매주 월요일 공개

    설민석 Seol Min Seok · 1.4만회 ·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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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설민석이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발행의 부작용을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해설

    [근대사 삼국지] 제181부 : 흥선대원군의 흑역사, 당백전 넌 뭐냐?(한국편)

    김영준 · 1,105회 ·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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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당백전 발행 배경과 물가 문제를 한 편으로 다룬 개인 해설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당백전에 대한 또 다른 시각 (바다루)

    방구석 역사발표회 및 바다루 · 333회 ·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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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당백전을 다른 각도에서 평가한 개인 발표 영상으로 조회수가 적습니다.

    해설·교양 · 만화

    [화폐경제학] 조선시대 당백전이 만든 인플레이션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 · 2,205회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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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당백전이 부른 물가 상승을 경제학 관점에서 짧게 그린 만화입니다.

이 시기의 핵심 개념 2개

사건 설명에 나오는 말을 풀었습니다. 사건 밑의 개념 이름을 누르면 여기로 옵니다.

의궤

왕실의 혼례·장례·잔치·건축 같은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한 책입니다.

행사 준비 과정과 비용, 참여한 사람, 행렬 모습까지 그림으로 남겨 뒤에 같은 행사를 치를 때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이 됐습니다.

강화도 외규장각에는 왕이 보는 고급본(어람용) 의궤가 보관돼 있었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가져갔다가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큐

[우리는 우리를 아는가] 조선왕조의궤

국가유산채널(K-Heritage Channel) · 48.8만회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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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KBS파노라마 - 의궤 8일간의 축제 1부 사중지공

KBS 히스토리 · 5만회 · 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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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200초로 즐기는 한국의 유네스코 등재유산] 세계의 문화유산이 된 순간의 기록, 조선왕조의궤

문화포털 · 5만회 ·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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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천주교)

조선 후기 청을 통해 들어온 서양 학문과 천주교를 함께 이르는 말입니다.

17세기 청에 간 사신들이 서양 학문 서적을 들여오면서 처음에는 학문으로 연구됐고, 18세기 후반 일부 남인 학자들이 신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사를 거부하고 신분 차별을 부정하는 교리가 유교 질서와 충돌해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습니다(신유박해 1801, 기해박해 1839, 병인박해 1866).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 이후 사실상 선교가 허용됐습니다.

다큐

KBS 한국사전 – 닫힌 시대의 젊은 열정, 한국 천주교 창설 주역 이벽 / KBS 2007.12.22 방송

KBS 히스토리 · 39.5만회 · 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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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신을 믿는 자에겐 죽음뿐이었다.. 정약용 3형제가 동시에 천주교에 빠진 이유 | KBS 20120126 방송

KBS 다큐 · 54.4만회 · 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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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조선이 수만 명의 천주교인을 박해한 진짜 이유 | 성기헌 바오로 신부 [더 릴리전]

삼프로TV 3PROTV · 28.1만회 · 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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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교과서와 공적 기관 서술을 기준으로 적었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양쪽 견해를 함께 적었습니다. 1895년 이전 날짜는 양력이며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적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조회수는 2026-09-24 기준입니다. 영화·드라마는 공식 예고편이고,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