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 취임과 여소야대 국회
직선제로 뽑힌 첫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4월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을 얻지 못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습니다.
배경
노태우는 1987년 12월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돼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새 헌법에 따른 첫 정부로, 흔히 제6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내세웠습니다.
취임식은 처음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렸습니다. 제5공화국의 비리를 밝히고 광주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 이른바 ‘5공 청산’ 요구가 새 정부의 첫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전개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바뀐 뒤 처음 열렸습니다. 전체 299석 가운데 민주 정의당은 125석을 얻어 과반에 못 미쳤고, 평화 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 공화당 35석을 얻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여소야대’ 국회가 됐습니다. 김대중의 평민당이 제1야당이 됐습니다.
선거 제도는 1973년부터 이어진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을 뽑는 제도’에서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바뀌었습니다. 민정당은 지역구 87석과 전국구 38석을 얻었습니다. 평민당은 호남을, 통일민주당은 부산·경남을, 공화당은 충청을 기반으로 삼아 지역별로 표가 크게 나뉘었습니다.
1988년 7월 국회는 노태우 대통령이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정기승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을 부결했고, 대통령은 이일규를 새로 지명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야당이 힘을 모으자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힘이 크게 커졌습니다. 16년 만에 국정 감사가 부활했고, 제5공화국 비리와 5·18 진상을 다루는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일도 처음으로 있었습니다.
여당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기도 어려워졌고, 이 상황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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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노태우1932~2021
김대중1924~2009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여소야대 국회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