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연표

근대› 개항기

임오군란과 청의 개입

13개월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인들이 봉기했고, 청이 군대를 보내 진압하며 흥선대원군을 끌고 갔습니다. 제물포 조약과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으로 일본과 청의 영향력이 함께 커졌습니다.

기간
1882.7 ~ 1882.12.31 · 5개월
누가 다스렸나
임금 고종 · 청의 간섭 강화
담긴 것
사건 3 · 영상 27 · 영화·드라마 5

이 시기를 한 번에 보는 영상 6편

여러 사건을 이어서 다루는 영상입니다. 옆으로 넘겨 보세요.

해설·교양 · 해설

조선이 니들 동네 북이냐? 강화도 조약·임오군란 — 한국사 요약 8편

아그래 역사 · 31.1만회 · 4:30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강화도 조약부터 임오군란까지를 개인 채널이 요약합니다.

1876.2.27 ~ 1882.8.30 · 임오군란 → 제물포 조약

해설·교양 · 강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 암군인가 개혁 군주인가, 고종은 어떤 왕이었을까

사피엔스 스튜디오 · 169.3만회 · 11:07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고종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재위 기간을 훑는 강연입니다.

1864.1.21 ~ 1907.7.20 · 임오군란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해설·교양 · 해설

흥선대원군부터 한일 병합까지 근대 한국사 한번에(지도 애니메이션)

로빈의 역사 기록 · 97만회 · 1:27:59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흥선대원군부터 병합까지 근대사를 90분에 훑는 통합 영상입니다.

1864.1.21 ~ 1910.8.29 · 임오군란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해설·교양 · 다큐

KBS 한국사전 — 흥선대원군, 왜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나

KBS 히스토리 · 95.5만회 · 47:13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대원군과 고종의 대립을 축으로 집권부터 을미사변 무렵까지 다룹니다.

1864.1.21 ~ 1895.10.8 · 임오군란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해설·교양 · 강의

7일의 기적 5일차 2교시 — 개항부터 갑신정변까지

최태성 1TV · 79.7만회 · 16:40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개항부터 갑신정변까지의 기출 개념을 한 번에 정리한 강의입니다.

1875.9.20 ~ 1885.4.18 · 임오군란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해설·교양 · 다큐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EBS 다큐 · 70.5만회 · 42:05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고종의 외교 선택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 일부입니다.

1864.1.21 ~ 1907.7.20 · 임오군란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드라마 5편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드라마 · 1982· 제목만

「풍운」

배경 1863 ~ 1898

KBS 대하드라마(51부작). 유주현의 소설 『대원군』이 원작으로, 흥선대원군(이순재)의 집권과 쇄국을 그렸습니다

드라마 · 2001· 공식 영상

「명성황후」

유튜브 앱에서 보기

배경 1866 ~ 1895.10.8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의 일생을 따라 대원군과의 갈등부터 을미사변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드라맛집] 내가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 몰아보기

KBS Drama Classic · 12.3만회 · 14:58

유튜브 앱에서 보기

드라마 · 2018· 공식 영상

「미스터 션샤인」

유튜브 앱에서 보기

배경 1871.6.1 ~ 1907.8

tvN.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이 미군 장교가 되어 돌아온 이야기. 의병 운동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최유진♥고애신 명장면 하이라이트

TVING 티빙 · 159.3만회 · 6:29

유튜브 앱에서 보기

영화 · 2009· 제목만

「불꽃처럼 나비처럼」

배경 1873 ~ 1895.10.8

명성황후와 호위 무사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엮은 영화

드라마 · 2014· 공식 영상

「조선총잡이」

유튜브 앱에서 보기

배경 1880 ~ 1884.12.6

KBS. 개화기 총을 든 무사의 복수극. 갑신정변 무렵이 배경

사건 연표 3건

AI 분석 — 영상마다 제목·설명문·채널을 붙은 사건과 대조해 일치도(그 사건을 얼마나 정면으로 다루나)와 추천도(일치도·출처·설명의 충실함·조회수)를 매겼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본 결과가 아니라 추정치입니다(2026-09-25 기준). 영상은 사실 기록(그때 찍은 기록·방송 뉴스), 해설·교양(다큐·강의·교양 예능), 창작(드라마·영화 — 허구가 섞임)으로 나눴습니다.

  1. 1882

    7.23

    정치음력 6월 9일 ~ 7월 13일

    임오군란

    1882.7.23 ~ 8.26 · 35일

    13개월 밀린 급료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을 받은 구식 군인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도시 빈민이 합세해 일본 공사관과 궁궐을 습격했고,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권력을 잡았습니다.

    • 명성황후는 궁을 빠져나가 충주로 피신했습니다.
    • 청은 군대를 보내 군란을 진압하고 대원군을 톈진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후 청의 내정 간섭이 크게 늘었습니다.

    배경

    개항 뒤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 곡물값이 오르면서 서울 백성의 살림이 어려워졌습니다. 정부는 개화 정책에 돈을 쓰는 한편 재정난이 겹쳐, 구식 군대에 줄 급료를 13개월이나 주지 못했습니다.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과 비교되며 구식 군인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민씨 척족이 요직을 차지하고, 군인 급료를 맡은 선혜청 당상 민겸호 쪽 관리들의 부정이 알려지면서 불만은 정권에 대한 분노로 번졌습니다.

    전개

    1882년 7월 23일(음력 6월 9일) 무렵 한 달 치 급료로 나온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고 양도 모자라자, 군인들이 담당 관리와 충돌했습니다. 주동자가 잡혀가자 군인들은 무기를 들고 일어나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뜻을 전했습니다.

    봉기한 군인들에게 서울 왕십리·이태원 일대의 빈민들이 합세했습니다. 이들은 민겸호 등 고위 관리의 집을 부수고 별기군 교관 호리모토를 죽였으며,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습니다.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제물포로 달아나 영국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군중은 창덕궁에 들어가 민겸호와 김보현을 살해했습니다.

    명성황후는 궁녀로 변장해 궁을 빠져나가 충주 장호원 일대로 피신했습니다. 고종은 사태 수습을 흥선대원군에게 맡겼고, 대원군은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없애고 5군영을 되살렸으며,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왕비의 장례를 치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이 군함과 병력을 보내오자, 조선 조정의 요청과 청의 판단에 따라 청도 우창칭(오장경)이 이끄는 약 3천 명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음력 7월 13일(양력 8월 26일) 청군은 흥선대원군을 청군 진영으로 불러 붙잡아 톈진으로 압송했고, 곧이어 군란 가담자를 진압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흥선대원군의 재집권은 약 한 달 만에 끝났고, 민씨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원군은 청 바오딩에 3년 동안 유폐됐다가 1885년에 돌아왔습니다.

    청은 군대를 서울에 머물게 하고 마젠창(마건상)과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보냈으며,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맺어 조선을 속방으로 명시했습니다. 청의 내정 간섭이 본격화됐습니다.

    일본과는 제물포 조약을 맺어 배상금을 물고 일본군의 서울 주둔을 허용했습니다. 청과 일본 두 나라 군대가 서울에 함께 머물게 됐고, 조정 안에서는 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온건 개화파와 청의 간섭에 반대하는 급진 개화파가 갈라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1년별기군이 창설되고 5군영이 두 영으로 줄면서 구식 군인들의 처지가 나빠졌습니다.
    2. 1882년 7월(음력 6월 초)선혜청 도봉소에서 밀린 급료 가운데 한 달 치 쌀을 나눠 주었는데, 겨와 모래가 섞이고 양도 모자라 군인들이 관리와 충돌했습니다.
    3. 7월 23일(음력 6월 9일)주동자 체포에 분노한 군인들이 들고일어나 흥선대원군을 찾아갔고, 무기고를 열어 무장한 뒤 민겸호의 집과 일본 공사관을 습격했습니다.
    4. 7월 24일군중이 창덕궁에 들어가 민겸호·김보현을 살해했습니다. 이최응도 이 무렵 목숨을 잃었고, 명성황후는 궁을 빠져나갔습니다.
    5. 7월 말고종이 사태 수습을 흥선대원군에게 맡겼고, 대원군은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없앴습니다.
    6. 8월하나부사 공사가 군함과 병력을 이끌고 제물포로 돌아왔고, 청군도 조선에 상륙했습니다.
    7. 8월 26일(음력 7월 13일)청군이 흥선대원군을 붙잡아 톈진으로 압송했습니다.
    8. 8월 말청군이 왕십리·이태원 일대의 군인과 주민을 진압했고, 8월 30일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맺었습니다.
    9. 1882년 9월명성황후가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10. 1882년 10월 무렵청과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맺어 청의 간섭이 제도로 굳어졌습니다.

    인물

    •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

      군인들의 추대로 다시 정권을 잡았다가 약 한 달 만에 청군에 납치됐습니다.

      고종의 아버지로 1863~1873년 섭정하며 서원 철폐·경복궁 중건·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습니다. 이후에도 민씨 세력과 권력을 다투며 여러 차례 정치 무대에 다시 섰습니다.

    • 명성황후 민씨1851~1895

      궁을 빠져나가 충주 일대로 피신했고, 청군을 끌어들여 사태를 수습하는 데 관여했습니다.

      고종의 왕비로 여흥 민씨입니다. 1873년 고종의 친정 이후 민씨 척족과 함께 정치에 깊이 관여했고, 청·러시아 등과의 외교로 일본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1895년 일본인들에게 시해됐습니다(을미사변).

    • 민겸호1838~1882

      군인 급료를 맡은 선혜청의 책임자로 군란 중 살해됐습니다.

      명성황후의 친척이자 흥선대원군 부인의 동생으로, 민씨 척족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

      공사관이 습격당하자 일본으로 피했다가 군대와 함께 돌아와 제물포 조약을 받아 냈습니다.

      초대 주조선 일본 공사입니다. 원산·인천 개항 교섭을 맡았고 뒤에 러시아 공사 등을 지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임오군란의 성격

    반외세·반정부 민중 운동으로 보는 쪽

    군인뿐 아니라 개항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도시 빈민이 합세해 일본 공사관과 민씨 정권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개항 이후 외세의 경제 침투와 지배층의 부패에 맞선 저항이었다고 봅니다.

    군인 처우 문제에서 시작된 정변으로 보는 쪽

    직접적인 원인은 밀린 급료와 부정이었고, 흥선대원군과 민씨 세력 사이의 권력 다툼이 겹쳐 커졌다고 봅니다. 뚜렷한 개혁 목표나 조직을 갖춘 운동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명성황후와 민씨 척족 정권의 평가

    외교적 노력을 강조하는 쪽

    열강 사이에서 청·러시아·미국 등을 끌어들여 일본의 침투를 막으려 했고, 개화 정책을 받아들여 추진했다는 점을 봅니다. 을미사변으로 희생된 것도 그만큼 일본에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척족 정치의 폐해를 강조하는 쪽

    친척들을 요직에 앉혀 권력을 독점하고 왕실 행사와 굿 등에 재정을 많이 써 나라 살림을 어렵게 했으며, 임오군란 진압에 청군을 끌어들여 외세 간섭을 키웠다고 봅니다.

    더 알아두기

    ‘임오’라는 이름
    1882년이 간지로 임오년이어서 임오군란이라고 부릅니다. 갑신정변(1884, 갑신년), 갑오개혁(1894, 갑오년)도 같은 방식으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임오군란

    최태성 1TV · 7.4만회 · 11:47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임오군란의 원인과 전개, 결과를 다루는 강의입니다.

    해설·교양 · 예능

    [#벌거벗은한국사] 13개월 만에 임금으로 받은 쌀에 모래가 잔뜩 섞여 있었다..! 임금 체납으로 단단히 분노한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

    디글 :Diggle · 2만회 · 15:26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벌거벗은 한국사가 급료 쌀에서 시작된 임오군란을 다룹니다.

    해설·교양 · 만화

    차별에 반발한 구식 군인들의 난, 임오군란(역사만화 77화)

    공부왕찐천재 · 15만회 · 2:38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구식 군인의 차별과 임오군란을 설명하는 만화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49 임오군란과 흥선대원군의 재등장

    KBS 히스토리 · 3.9만회 · 5:04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KBS 영상한국사로 임오군란과 대원군의 재집권을 봅니다.

    창작 · 드라마

    명성황후 — 청나라로 끌려가는 흥선대원군

    KBS Drama Classic · 9.8만회 · 11:47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임오군란 뒤 청군이 대원군을 붙잡아 가는 장면입니다.

    1882.7.23 ~ 8.26 · 임오군란 뒤 청나라 군대가 흥선대원군을 붙잡아 청으로 데려가는 장면 모음입니다.드라마 「명성황후」(2001)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해설·교양 · 다큐

    조선 최고의 권력자, 청에 납치되다 (KBS_1998.07.07.방송)

    KBS 히스토리 · 1.7만회 · 42:13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임오군란 뒤 대원군이 청에 끌려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봅니다.

    해설·교양 · 강의

    임오군란은 왜 일어났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4회

    법률방송 · 4.9만회 · 50:06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함재봉 교수가 임오군란이 일어난 배경을 설명하는 강연입니다.

    창작 · 드라마

    명성황후 — 흥선대원군 다시 권좌에 오르다(임오군란)

    KBS Drama Classic · 12만회 · 11:51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임오군란 뒤 대원군 재집권을 그린 드라마 장면 모음입니다.

    1882.7.23 ~ 8.26드라마 「명성황후」(2001) — 극에는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창작 · 드라마

    [史극장] [명성황후 모음.Zip] 임오군란 발생!! 과연 중전의 운명은...?! | KBS 방송

    KBS Drama Classic · 14.3만회 · 12:08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드라마 명성황후의 임오군란 장면이라 창작이 섞여 있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고1 한국사] 3단원 5차시│위정척사파│임오군란│

    워니비 · 7.5만회 · 9:45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5%추천 ★★★★★

    위정척사파와 함께 임오군란을 가르치는 수업입니다.

    해설·교양 · 해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역사의 강 · 9.8만회 · 10:27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함께 다룹니다.

  2. 8.30

    조약음력 7월 17일

    제물포 조약

    임오군란 때 공사관이 습격당한 일로 일본과 맺은 조약입니다. 조선은 배상금을 물고, 공사관 경비를 명목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머무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배경

    임오군란 때 공사관을 습격당하고 교관 호리모토와 일본인 여럿이 죽자, 일본은 하나부사 공사에게 군함과 병력을 딸려 조선으로 돌려보내 책임을 물었습니다. 청군이 군란을 진압한 직후 협상이 열렸습니다.

    하나부사는 1882년 8월 군함과 병력을 거느리고 제물포에 도착해 서울로 들어가 고종을 만나고 요구 조건을 내놓았습니다. 조선 조정이 즉답을 피하자 그는 서울을 떠나 제물포로 돌아가 압박했습니다. 그 사이 청군이 흥선대원군을 압송하고 군란을 진압하면서, 조선 정부는 청의 조언 속에 일본과의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전개

    1882년 8월 30일(음력 7월 17일) 제물포에서 조선의 전권 대신 이유원, 부관 김홍집과 일본의 하나부사가 조약을 맺었습니다. 군란 주동자 처벌, 피해자 유족에 대한 위로금, 일본 정부에 배상금 50만 원을 5년에 걸쳐 지급,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 허용, 사과 사절 파견 등이 담겼습니다.

    같은 날 조일 수호 조규 속약도 맺어,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다닐 수 있는 범위를 사방 50리로 넓히고 2년 뒤 100리로 늘리기로 했으며, 일본 외교관의 내지 여행을 허용했습니다.

    조약은 모두 6개 조관이었습니다. 제1관은 20일 안에 군란 주동자를 잡아 엄히 처벌하게 했고, 제2관은 희생된 일본 관리를 예우해 장례를 치르게 했습니다. 제3관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5만 원을 주게 했고, 제4관은 일본이 입은 손해와 공사를 호위한 군대의 비용으로 50만 원을 매년 10만 원씩 5년 동안 갚게 했습니다. 제5관은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을 두게 하고 병영 설치와 수리를 조선이 맡게 했으며, 제6관은 조선이 특사를 보내 국서로 사과하게 했습니다.

    속약은 1년 뒤 서울 근처 양화진을 시장으로 열기로 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일본군이 공사관 경비를 이유로 서울에 머물 수 있게 되면서, 청군과 일본군이 함께 서울에 주둔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는 2년 뒤 갑신정변 때 일본군이 개입하는 배경이 됐습니다.

    사과 사절로 박영효가 수신사가 돼 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에 갔습니다. 이 여정에서 태극기가 쓰였고, 일본의 발전을 지켜본 젊은 개화파가 일본의 도움을 받아 개혁하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50만 원은 당시 조선의 재정에 큰 부담이었고, 이 돈을 마련하는 문제는 뒤에 당오전 발행과 차관 도입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2년 7월 23일임오군란으로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했고, 하나부사 공사는 제물포를 거쳐 일본으로 피했습니다.
    2. 1882년 8월하나부사가 군함과 병력을 이끌고 제물포로 돌아와 서울에서 고종에게 요구 조건을 내놓았습니다.
    3. 8월 26일청군이 흥선대원군을 붙잡아 톈진으로 보냈습니다.
    4. 8월 30일(음력 7월 17일)제물포에서 이유원·김홍집과 하나부사가 제물포 조약과 조일 수호 조규 속약에 서명했습니다.
    5. 1882년 음력 8월박영효가 사과 사절(수신사)로 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6. 1884년 12월공사관 경비를 명목으로 머물던 일본군이 갑신정변 때 궁궐 호위에 나섰습니다.

    사료로 읽기

    “일본 공사관에 군사 약간을 두어 경비를 서게 한다.”
    — 제물포 조약 제5관(1882), 우리역사넷 번역원문은 ‘日本公使館備兵員若干備警事’입니다. 이 조항으로 일본군이 서울에 머물 근거가 생겼습니다.

    인물

    • 이유원1814~1888

      조선 측 전권 대신으로 제물포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영의정을 지낸 원로 대신입니다. 1870년대 후반 청의 리훙장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양 여러 나라와 수교하라는 권고를 받았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

      일본 공사로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조약을 받아 냈습니다.

      초대 주조선 일본 공사로 원산·인천 개항 교섭을 맡았습니다. 뒤에 러시아 공사 등을 지냈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임오군란2)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군인의 최후 | 제물포조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핵심 in 한국사

    EBSi · 1.9만회 · 5:22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임오군란의 결과로 제물포 조약과 무역 장정을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임오군란의 전개과정과 결과#제물포조약#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7분 순삭ver.)

    역사길잡이최재원샘 · 2.5만회 · 7:41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임오군란 전개 뒤 제물포 조약을 함께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보기만 해도 10점 UP! 한국사 벼락치기|각국과의 조약체결 2|제물포조약, 조일통상조약, 한성조약, 유럽과의 수호통상조약|한능검|한국사 정리|한국사탐구생활|에듀

    에듀윌 한국사능력검정 · 5,998회 · 4:15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제물포 조약을 포함해 여러 조약을 묶어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예능

    청나라 & 일본 사이에 낀 조선! 김옥균의 분노를 유발한 조약 내용♨ #벌거벗은한국사 EP.41 | tvN STORY 230201 방송

    tvN STORY 티비엔 스토리 · 1,089회 · 8:14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벌거벗은 한국사가 임오군란 뒤 청·일과 맺은 조약들을 짚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 임오군란 ] 2편, 흥선대원군 납치, 제물포조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취침한국사 · 1,308회 · 14:37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5%추천 ★★★★★

    임오군란 뒤 대원군 납치와 제물포 조약을 차례로 설명합니다.

  3. 10월

    조약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임오군란 뒤 청과 맺은 무역 규정으로, 조선이 청의 속방이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청 상인이 서울과 내륙에서 장사할 수 있게 되면서 조선 상인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배경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흥선대원군까지 데려간 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높였습니다. 청은 전통적인 조공 관계를 근대 조약의 형식으로 굳혀, 다른 나라들이 조선에서 청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게 하려 했습니다.

    청은 1880년대 들어 류큐가 일본에 병합되고(1879) 베트남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갈등을 겪는 등 주변의 조공국을 잇달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조선만큼은 놓치지 않으려는 청의 위기감이 이 장정에 담겼습니다.

    전개

    1882년 음력 8월(양력 10월 무렵) 맺은 이 장정은 앞머리에 ‘조선은 오래전부터 청의 속방’이라고 적고, 이 장정이 청이 속방을 우대하려고 정한 것이라서 다른 나라는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청 상인은 서울 양화진과 한성에 상점을 열 수 있게 됐고, 허가증을 받으면 내륙에 들어가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됐습니다. 청 상인에 대한 재판권은 청이 갖고, 청 상무위원이 조선에 머물게 됐습니다.

    장정은 톈진에서 조선 측 조영하·김홍집·어윤중과 청 측 관리들이 협상해 맺었습니다. 제1조는 청이 상무위원을 조선 개항장에 두고 조선도 톈진에 관리를 보내게 했고, 제2조는 청 상인이 관련된 사건을 청의 상무위원이 청 법률로 재판하게 했습니다. 아편과 무기 거래는 금지했고, 홍삼을 수출할 때는 값의 15%를 세금으로 매겼습니다.

    결과와 의미

    개항장 밖 내륙까지 외국 상인이 들어올 길이 처음 열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최혜국 대우 조항을 근거로 같은 권리를 요구했고, 1883년 영국·독일과 맺은 조약 등을 통해 이 특권이 여러 나라로 퍼졌습니다.

    청 상인이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으면서 서울의 시전 상인들이 큰 타격을 받았고, 이후 청과 일본 상인이 조선 시장을 놓고 경쟁하게 됐습니다. 시전 상인들은 외국 상인을 서울 밖으로 옮겨 달라며 가게 문을 닫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1883년 청의 상무위원 천수탕(진수당)이 서울에 부임해 청 상인을 관리했고, 1884년 인천에 청 조계가 생겼습니다. 서울 시전 상인들은 1890년 무렵 외국 상인의 서울 철수를 요구하며 가게 문을 닫는 철시 투쟁을 벌였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2년 8월청군이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흥선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했습니다.
    2. 1882년 가을조영하·김홍집·어윤중 등이 톈진에 가서 청과 무역 규정을 협상했습니다.
    3. 1882년 10월 무렵(음력 8월)톈진에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서명했습니다.
    4. 1883년청의 상무위원 천수탕이 서울에 부임했습니다.
    5. 1883년 11월영국·독일과 새 조약을 맺으며 서울 개시와 내지 통상 권리가 다른 나라로도 퍼졌습니다.
    6. 1884년인천에 청 조계가 설치됐습니다.
    7. 1890년 무렵서울 시전 상인들이 외국 상인의 철수를 요구하며 철시했습니다.
    8. 1894~1895년청일 전쟁에서 청이 지면서 이 장정도 효력을 잃었습니다.

    사료로 읽기

    “조선은 오랫동안 제후국으로서 전례(典禮)에 관한 정해진 제도가 있다는 것은 다시 의논할 여지가 없다. … 이번에 제정한 수륙무역장정은 중국이 속방을 우대하는 뜻이며, 각국과 똑같이 같은 이득을 보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전문(1882), 우리역사넷 번역조선이 청의 속방임을 문서에 적고, 다른 나라는 이 혜택을 요구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대목입니다.
    “조선 상인이 베이징[北京]에서 규정에 따라 교역하고, 중국 상인이 조선의 양화진(楊花鎭)과 서울에 들어가 영업소를 개설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종 화물을 내지로 운반하여 상점을 차리고 파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제4조(1882) 가운데, 우리역사넷 번역청 상인이 양화진과 서울에 가게를 열 수 있게 한 조항입니다. 허가증을 받으면 내륙에서 토산물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인물

    • 마건충(馬建忠)1845~1900

      청 관리로 조선 문제에 깊이 관여해 무역 장정이 맺어지는 흐름을 이끌었습니다.

      프랑스에 유학한 청의 외교 실무자입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입회했고,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을 청군 진영으로 불러 압송하는 일을 주도했습니다.

    • 어윤중1848~1896

      조선 측 협상단으로 톈진에서 장정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재정에 밝은 온건 개화파 관료입니다.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을 다녀왔고, 갑오개혁 때 탁지부 대신을 지냈습니다.

    더 알아두기

    ‘조약’이 아니라 ‘장정’인 까닭
    청은 조선을 대등한 나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 사이의 약속인 ‘조약’ 대신 규정이라는 뜻의 ‘장정’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부터 두 나라가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담은 것입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조공·책봉(사대)

    해설·교양 · 해설

    [박종인의 땅의 역사] 41. 원래 너희는 중국 속국이잖아!

    박종인의 땅의 역사 · 4만회 · 21:25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속방 문구가 들어간 장정의 내용을 짚지만 관점이 강하게 들어갑니다.

    해설·교양 · 해설

    [도전 통상왕 3회] 통상 역사 3편 - 우리 주변에 외국 브랜드가 보이게 된 시작점?

    통상라운지 · 2만회 · 16:01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통상 역사 프로그램이 이 장정이 불러온 변화를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보기만 해도 10점 UP! 한국사 벼락치기|각국과의 조약체결|조·미 수호 통상 조약,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한능검|한국사 정리|한국사탐구생활|에듀윌 한국사

    에듀윌 한국사능력검정 · 1.3만회 · 4:05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조미 조약과 조청 무역 장정을 함께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조약비교) 강화도조약vs조미수호통상조약vs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번외-1883년개화정책) (*도식/찐암기법 포함)

    원유철한국사TV · 6,073회 · 15:53

    유튜브 앱에서 보기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강화도 조약·조미 조약과 이 장정을 나란히 비교하는 강의입니다.

이 시기의 핵심 개념 1개

사건 설명에 나오는 말을 풀었습니다. 사건 밑의 개념 이름을 누르면 여기로 옵니다.

조공·책봉(사대)

중국 황제가 주변국 왕을 책봉하고 주변국이 조공을 바치던 동아시아의 전통적 외교 질서입니다.

형식상의 위계 관계였지만, 조선은 내정과 외교를 스스로 결정해 왔습니다. 임오군란 뒤 청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속방'이라는 말을 넣고 내정에 직접 간섭하며 이 관계를 실질적인 지배로 바꾸려 했습니다.

청일 전쟁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이 관계가 끝났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해 황제국임을 밝혔습니다.

예능

우리가 몰랐던 조공-책봉 관계의 실상|'삼국시대에도 착한 외교는 없었다' - 안정준 교수|차이나는 클라스|JTBC 220206 방송

교양 Voyage · 1.4만회 · 11:19

유튜브 앱에서 보기

예능

'조공-책봉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낳은 동아시아 역사 왜곡! 차이나는 클라스(jtbclecture) 228회 | JTBC 220206 방

교양 Voyage · 1.2만회 · 11:08

유튜브 앱에서 보기

해설

고구려가 조공을 바쳤다고?!

간다효 · 27.3만회 · 13:30

유튜브 앱에서 보기

사실은 교과서와 공적 기관 서술을 기준으로 적었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양쪽 견해를 함께 적었습니다. 1895년 이전 날짜는 양력이며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적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조회수는 2026-09-24 기준입니다. 영화·드라마는 공식 예고편이고,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