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참기지화 정책
중일 전쟁을 앞두고 총독부가 조선을 대륙 침략에 필요한 물자와 군수 산업의 기지로 삼은 정책입니다. 농공 병진을 내걸고 북부 지방에 중화학 공업을 집중적으로 키웠습니다.
- 1938년 이후에는 중공업·기계 공업 등 군수 공업이 강조됐고, 태평양 전쟁 뒤에는 항공기 생산을 중심으로 경금속·철강·석탄 공업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 북부 지방 댐 공사와 탄광·광산에 노동력을 대려고 근로보국대·학생근로동원과 함께 징용이 병행됐습니다.
배경
1931년 만주 사변으로 일본이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자, 총독부는 조선을 군수 물자를 대는 후방 기지로 삼는 구상을 키워 갔습니다.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은 농업 중심이던 조선 경제에 공업을 더하는 농공 병진 정책을 내걸었습니다.
전개
1936년 부임한 미나미 지로 총독 시기부터 이 구상은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본격화됐습니다. 북부 지방에는 수력 발전소와 제련소·화학 공장이 잇따라 들어섰고,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중공업·기계 공업 등 군수 공업이 더 강조됐습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터진 뒤에는 항공기 생산을 중심 산업으로 삼고 경금속·철강·석탄 공업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노동력을 대려고 근로보국대와 학생 근로 동원에 이어 징용까지 동원됐습니다.
결과와 의미
조선의 공업 생산에서 중화학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 시기에 크게 늘었지만, 이는 전쟁 수행을 위한 것이었고 생산물과 이익 대부분은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기에 놓인 공업 기반은 광복 뒤 분단과 맞물려 남북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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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미나미 지로1874~1955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병참기지화 정책과 식민지 공업화 평가
- 식민지 시기에 놓인 근대적 중화학 공업 기반이 광복 뒤 산업 구조에 영향을 남겼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 그 공업 시설은 전쟁 수행을 위한 것이었고 이익은 일본 자본에 돌아갔으며 노동력은 강제로 동원됐다는 점에서, 수탈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