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연표

현대› 직선제 이후(제6공화국)

박근혜 정부

첫 여성 대통령의 정부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국정 농단 사건으로 탄핵 소추돼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됐습니다.

기간
2013.2.25 ~ 2017.5.9 · 4년 2개월
누가 다스렸나
대통령 박근혜
담긴 것
사건 9 · 영상 36 · 영화·드라마 0

사건 연표 9건

AI 분석 — 영상마다 제목·설명문·채널을 붙은 사건과 대조해 일치도(그 사건을 얼마나 정면으로 다루나)와 추천도(일치도·출처·설명의 충실함·조회수)를 매겼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본 결과가 아니라 추정치입니다(2026-09-25 기준). 영상은 사실 기록(그때 찍은 기록·방송 뉴스), 해설·교양(다큐·강의·교양 예능), 창작(드라마·영화 — 허구가 섞임)으로 나눴습니다.

앞 시기에서 이어지는 일: 개성 공단 가동 (~2016.2.10)

  1. 2014

    4.16

    참사

    세월호 참사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수학여행 중이던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 무리한 증축과 과적, 초기 구조 실패가 드러나 여러 차례 조사가 이어졌습니다.

    배경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들여온 여객선으로, 들여온 뒤 객실을 늘리는 증축으로 무게 중심이 높아져 복원력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사고 당일에는 화물을 기준보다 훨씬 많이 싣고도 평형수를 줄였고,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후 조사와 재판에서 드러났습니다.

    전개

    2014년 4월 15일 밤 인천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무렵 전남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 근처에서 급하게 방향을 튼 뒤 크게 기울었습니다. 배에는 476명이 타고 있었고, 그 가운데 325명이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습니다.

    선내에서는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거듭 나왔고,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 퇴선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먼저 배를 빠져나왔습니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도 선내 진입과 퇴선 유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배는 오전 10시 30분 무렵 뱃머리만 남기고 가라앉았고, 172명만 구조됐습니다.

    희생자는 304명(사망 299명, 미수습 5명)이며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포함됐습니다. 이후 수색이 몇 달간 이어졌고, 배는 2017년 3월 인양돼 목포 신항으로 옮겨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이준석 선장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돼 2015년 무기 징역이 확정됐고, 선원들과 청해진해운 관계자들도 처벌받았습니다. 선주 일가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회장은 수배 중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해경 123정장은 업무상 과실 치사로 징역 3년이 확정됐으나, 해경 지휘부는 2023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정부는 2014년 해양 경찰청을 해체해 국민 안전처로 넘겼다가 2017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특별 조사 위원회(2015), 선체 조사 위원회(2017),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2018~2022)가 차례로 조사를 벌였습니다. 선체 조사 위원회는 2018년 침몰 원인에 대해 배 자체의 문제로 보는 결론과 외부 충격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결론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과 정부의 보고·지휘 문제는 2016~2017년 탄핵 논의 과정에서도 쟁점이 됐습니다. 참사 이후 4월 16일은 ‘국민 안전의 날’로 정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4년 4월 15일 밤 9시 무렵짙은 안개로 출항이 2시간 넘게 늦어진 세월호가 인천 연안 부두를 떠났습니다.
    2.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무렵전남 진도 앞 맹골수도 부근에서 배가 급하게 방향을 튼 뒤 크게 기울었습니다.
    3. 4월 16일 오전 8시 52분배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이 119에 처음으로 사고를 신고했습니다.
    4. 4월 16일 오전 9시 30분 무렵해경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선내 진입과 퇴선 유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5. 4월 16일 오전 9시 40분대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남겨 둔 채 해경 구조정으로 옮겨 탔습니다.
    6. 4월 16일 오전 10시 30분 무렵세월호가 뱃머리만 남기고 가라앉았습니다.
    7. 2014년 11월 11일정부가 선체 내부 수중 수색을 끝냈습니다.
    8. 2014년 11월 19일해양 경찰청이 해체되고 국민 안전처가 출범했습니다.
    9. 2015년 11월 12일대법원이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 징역을 확정했습니다.
    10. 2017년 3~4월세월호가 인양돼 목포 신항으로 옮겨진 뒤 육지에 올려졌습니다.

    인물

    • 이준석(세월호 선장)

      승객 퇴선 조치 없이 먼저 탈출했습니다.

      세월호의 대리 선장으로 이날 배를 지휘했습니다. 승객을 구하지 않고 먼저 배를 떠난 책임으로 재판을 받아 해상 참사 선장으로는 처음 살인죄가 인정됐습니다. 정치인 이준석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 박근혜1952~

      참사 당시 대통령으로, 정부 대응 책임을 두고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5월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고 해경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참사 당일 행적(이른바 ‘7시간’)을 둘러싼 의혹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진상 규명은 충분히 이뤄졌나

    진상 규명이 아직 부족하다고 보는 쪽

    세 차례 국가 조사 기구가 활동했지만 침몰 원인에 대해 하나의 결론을 내지 못했고, 구조 실패의 지휘 책임자 대부분이 처벌받지 않았다고 봅니다. 조사 과정에서 정부의 방해가 있었다는 점도 드러난 만큼, 국가의 책임을 끝까지 밝혀야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충분히 조사됐다고 보는 쪽

    과적·증축·고정 불량과 선원들의 퇴선 조치 미실시라는 핵심 원인은 재판으로 이미 밝혀졌다고 봅니다. 수백억 원이 드는 조사가 여러 번 되풀이됐지만 새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참사가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쓰이면서 사회적 피로와 갈등이 커졌다고 지적합니다.

    더 알아두기

    오늘날의 흔적
    안산 화랑 유원지에 4·16 생명 안전 공원이 조성되고 있고,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 등에 추모 공간이 있습니다. 노란 리본은 희생자를 기억하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Full] 세월호, 101분의 기록_MBC 2017년 4월 18일 방송

    MBC PD수첩 · 94.1만회 · 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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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세월호 침몰 당일 101분을 재구성한 PD수첩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시사기획 창] 침묵의 세월

    KBS News · 107.8만회 · 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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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몰 원인을 다시 따져 본 KBS 시사기획 창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세월호에서의 마지막 기록들…'아이들이 보내온 편지'

    JTBC News · 54.7만회 ·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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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한 학생 휴대폰에 남은 침몰 당시 기록을 전한 JTBC 보도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뉴스타파 -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2014.7.24)

    뉴스타파 Newstapa · 56.8만회 · 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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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침몰 직후 72시간 구조 과정을 추적한 뉴스타파 탐사 보도입니다.

  2. 12.19

    정치

    통합 진보당 해산 결정

    헌법 재판소가 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합 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헌정 사상 첫 정당 해산 결정입니다.

    배경

    통합 진보당은 2011년 민주 노동당과 국민 참여당 일부 등이 합쳐 만든 정당으로, 2012년 총선에서 13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비례 대표 경선 부정 논란으로 당이 크게 갈라져 일부 세력이 탈당했습니다.

    2013년 8월 국가 정보원은 이석기 의원 등이 비밀 조직(RO) 모임에서 전쟁이 나면 통신·유류 시설 등을 공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며 내란 음모 혐의로 수사에 나섰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11월 통합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난다며 헌법 재판소에 해산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국회는 2013년 9월 4일 이석기 의원 체포 동의안을 찬성 258표로 가결했습니다. 정부는 11월 5일 국무 회의 의결을 거쳐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1년 넘게 변론을 열어 당의 강령과 주도 세력의 활동을 심리했습니다.

    전개

    헌법 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의 찬성으로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다수 의견은 당의 주도 세력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폭력으로 정권을 잡으려 했다고 봤습니다. 김이수 재판관은 일부 당원의 잘못을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헌재는 소속 국회 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도 함께 결정했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명문 규정이 없는 부분이라 이 결정 자체도 논란이 됐습니다.

    선고 직후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는 통합 진보당의 등록을 말소했습니다. 헌재 결정에 따라 같은 이름이나 비슷한 목적의 정당은 다시 만들 수 없게 됐고, 당의 재산은 국고로 귀속됐습니다. 의원직을 잃은 5명 가운데 지역구 의원 3명의 자리는 2015년 4월 보궐 선거로 채워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이 헌재 결정으로 해산됐습니다. 이석기 의원 사건은 2015년 1월 대법원에서 내란 선동은 유죄(징역 9년), 내란 음모는 무죄로 확정됐습니다. 해산 결정은 헌재가 ‘내란 음모’를 주요 근거로 삼았는데 대법원이 이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두 결정의 관계를 두고도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1년 12월민주 노동당과 국민 참여당 일부, 진보 신당 탈당파가 합쳐 통합 진보당을 만들었습니다.
    2. 2012년 4월제19대 총선에서 13석을 얻었습니다.
    3. 2012년 5월비례 대표 경선 부정 논란으로 당 중앙 위원회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일부 세력이 이후 탈당했습니다.
    4. 2013년 8월 28일국가 정보원이 내란 음모 혐의로 이석기 의원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했습니다.
    5. 2013년 9월 4일국회가 이석기 의원 체포 동의안을 가결했습니다.
    6. 2013년 11월 5일정부가 헌법 재판소에 통합 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7. 2014년 2월1심 법원이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선동을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12년을 선고했습니다.
    8. 2014년 8월2심 법원은 내란 음모를 무죄, 내란 선동을 유죄로 보고 징역 9년을 선고했습니다.
    9. 2014년 12월 19일헌법 재판소가 8 대 1로 해산과 소속 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습니다.
    10. 2015년 1월 22일대법원이 2심 판단을 유지해 이석기 의원의 형이 확정됐습니다.

    사료로 읽기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 대한민국 헌법 제8조 제4항정당 해산 심판의 근거 조항입니다. 1960년 헌법에 처음 들어갔고, 실제로 쓰인 것은 이 사건이 처음입니다.
    “1.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2.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이석기는 의원직을 상실한다.”
    — 헌법 재판소 결정 주문(2013헌다1, 2014년 12월 19일)

    인물

    • 이석기1962~

      내란 음모·선동 혐의로 기소돼 해산 심판의 주요 근거가 됐습니다.

      통합 진보당 비례 대표 국회 의원이었습니다. 내란 선동 유죄로 복역하다 2021년 가석방됐습니다.

    • 김이수1953~

      해산 결정에 홀로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헌법 재판관으로 일했고, 이후 헌법 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국회 임명 동의안이 부결됐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정당 해산 결정의 정당성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결정으로 보는 쪽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다(방어적 민주주의)고 봅니다. 주도 세력이 북한 체제를 추종하고 유사시 폭력 행위를 모의한 이상,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해산한 것은 정당했다고 평가합니다.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쪽

    일부 당원의 행위를 이유로 수만 명 당원의 정당 전체를 해산한 것은 지나쳤다고 봅니다. 정당의 운명은 선거에서 유권자가 판단해야 하며, 대법원이 내란 음모를 무죄로 판단했는데도 해산이 유지되고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의원직 상실까지 결정한 것은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탄핵과 헌법 재판소

    사실 기록 · 뉴스

    통진당 정당해산심판 결정 / YTN

    YTN · 28.7만회 · 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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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헌법 재판소의 해산 결정 선고 전 과정을 담은 YTN 중계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통합진보당 창당에서 해산까지... / YTN

    YTN · 5.3만회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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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통합진보당 창당부터 해산 결정까지 정리한 보도입니다.

    해설·교양 · 예능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과한 처사일까? 당연한 결과일까?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51 회

    play 채널A · 3.5만회 ·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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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해산 결정의 근거와 논란을 짧게 다룬 이만갑 장면입니다.

  3. 2015

    5.20

    참사

    메르스 유행

    2015.5.20 ~ 2015.12 · 7개월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이 병원을 중심으로 퍼져 186명이 감염되고 38명이 숨졌습니다.

    배경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은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으로, 낙타에서 사람에게 옮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는 발생 사례가 없어 의료 현장의 대비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메르스는 사람 사이에서는 주로 환자와 가까이 오래 접촉할 때 옮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중동에서도 병원 안 감염이 많았습니다. 첫 환자는 5월 4일 입국했는데 증상이 나타난 뒤 확진까지 병원 네 곳을 거쳤고, 의료진이 중동 방문 이력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개

    2015년 5월 20일 바레인 등 중동을 다녀온 60대 남성이 국내 첫 환자로 확진됐습니다. 그는 확진 전 여러 병원을 거쳤고, 경기 평택의 병원에서 같은 병동 환자·보호자에게 병이 옮았습니다. 이 가운데 한 환자가 서울의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으면서 그곳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났습니다.

    정부는 초기에 환자가 거쳐 간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다가 6월 7일에야 공개했습니다. 응급실 과밀,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의료 이용 습관, 가족·간병인이 병실에 머무는 문화가 확산을 키운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5월 말 서울의 대형 병원 응급실에 머문 한 환자로부터 80명 넘는 추가 감염자가 나왔습니다. 확진자가 늘자 전국 수천 개 학교가 휴업했고, 세계 보건 기구(WHO)는 6월 한국과 합동 평가단을 꾸려 병원 안 감염 관리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어 환자를 격리하고 증상에 맞춰 치료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와 의미

    확진자는 186명, 사망자는 38명이었고 격리된 사람은 1만 6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정부는 12월 23일 유행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감사원은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물어 관련 공무원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이후 감염병 예방법이 고쳐져 감염 환자가 거쳐 간 병원 공개가 의무화됐고, 역학 조사관과 음압 병실이 늘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2020년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5년 5월 4일바레인 등 중동을 다녀온 첫 환자가 입국했습니다.
    2. 2015년 5월 20일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됐습니다.
    3. 2015년 5월 말평택의 병원에서 감염된 환자가 서울의 대형 병원 응급실에 머물며 대규모 감염이 일어났습니다.
    4. 2015년 6월 7일정부가 확진자가 거쳐 간 병원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5. 2015년 6월WHO와 한국 정부의 합동 평가단이 병원 감염 관리와 초기 정보 공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6. 2015년 7월 28일정부가 사실상 유행이 끝났다고 발표했습니다.
    7. 2015년 12월 23일정부가 공식적으로 유행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8. 2016년 1월질병 관리 본부장이 차관급으로 올라가는 등 방역 조직이 개편됐습니다.

    인물

    • 문형표1956~

      보건 복지부 장관으로 초기 대응을 지휘했고, 유행이 수그러든 뒤 교체됐습니다.

      연금·재정을 연구한 경제학자 출신으로 2013년 보건 복지부 장관이 됐습니다. 메르스 대응 책임론 속에 2015년 8월 물러났고, 이후 국민연금 공단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더 알아두기

    음압 병실이란
    병실 안의 공기 압력을 바깥보다 낮게 유지해 병실 안 공기가 밖으로 새지 않게 만든 격리 병실입니다. 공기를 통해 퍼질 수 있는 감염병 환자를 치료할 때 씁니다.

    해설·교양 · 다큐

    메르스로 돌아보는 코로나19

    MBC PD수첩 · 3.9만회 · 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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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2015년 메르스 확산을 다룬 PD수첩 방송분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추적60분 RE:] 자가격리 172일 당했던 메르스 마지막 환자가 남긴 전염병 종식의 뒷 이야기 | KBS 160323 방송

    KBS 추적60분 · 9.4만회 · 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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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마지막 환자의 투병과 유행 종식 과정을 추적한 추적60분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메르스 첫 10대 환자 발생...확진 87명·사망 6명 / YTN

    YTN · 2.5만회 ·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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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5%추천 ★★★★★

    메르스 확산 중 한 시점의 확진 현황 보도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감염병 전문가가 말하는 메르스(MERS)

    보건복지부TV · 2,385회 ·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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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감염병 전문가가 메르스의 특성과 예방을 설명하는 영상입니다.

  4. 12.28

    외교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한일 외교 장관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하고 일본이 10억 엔을 내 화해·치유 재단을 세웠습니다.

    • 피해자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았다는 비판이 커졌고, 재단은 2019년 해산됐습니다.

    배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0년대부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일본은 1993년 고노 담화로 군의 관여를 인정했지만,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는 입장을 지켰습니다.

    2011년 헌법 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풀려는 외교적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정상 회담의 전제로 내걸었고, 두 나라는 2014년부터 국장급 협의를 이어 갔습니다.

    전개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서울에서 공동 기자 회견을 열어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히고 아베 신조 총리 명의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으며,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을 내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두 나라는 이 합의로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하고 국제 사회에서 서로 비난을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서울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과와 의미

    2016년 7월 화해·치유 재단이 출범해 생존 피해자와 유족에게 지원금을 지급했고, 당시 생존 피해자 다수가 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와 지원 단체는 합의를 거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 검증 태스크포스는 2017년 12월 합의 과정에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있었고 피해자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되 이 합의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10억 엔만큼을 정부 예산으로 따로 마련했습니다. 재단은 2018년 11월 해산 방침이 발표돼 2019년 해산됐습니다. 헌법 재판소는 2019년 이 합의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라고 판단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991년 8월 14일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실명 공개 증언했습니다.
    2. 1993년 8월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를 인정하는 고노 관방 장관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3. 2011년 8월헌법 재판소가 정부의 외교적 노력 부족을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4. 2011년 12월 14일1,000번째 수요 시위에 맞춰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5. 2015년 12월 28일한일 외교 장관이 서울에서 공동 기자 회견을 열어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6. 2016년 7월화해·치유 재단이 출범했습니다.
    7. 2017년 12월 27일외교부 검증 태스크포스가 합의 과정의 비공개 내용과 피해자 의견 수렴 부족을 발표했습니다.
    8. 2018년 11월정부가 화해·치유 재단 해산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9. 2019년 12월헌법 재판소가 합의에 대한 헌법 소원을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라는 이유로 각하했습니다.

    사료로 읽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 한일 외교 장관 공동 기자 회견 한국 측 발표(2015년 12월 28일, 외교부)‘최종적 및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합의 이후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문장은 일본이 약속한 조치를 이행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인물

    • 윤병세1953~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내내 외교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 기시다 후미오1957~

      일본 외무상으로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아베 내각에서 오래 외무상을 지냈고, 2021~2024년 일본 총리를 지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2015년 합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현실적인 외교 성과로 보는 쪽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총리 명의로 사죄하며 정부 예산을 직접 내놓은 것은 이전보다 나아간 내용이라고 봅니다.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이라 살아 있을 때 조치가 필요했고 실제로 생존 피해자 다수가 지원금을 받았으며, 합의를 뒤집으면서 한일 관계와 국가 간 약속의 신뢰가 흔들렸다고 지적합니다.

    피해자 중심 원칙에 어긋났다고 보는 쪽

    피해 당사자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정부끼리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고 봅니다. 일본의 법적 책임이 분명하지 않고 10억 엔의 성격도 배상이 아니며, 소녀상 문제와 국제 사회 비난 자제까지 약속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막았다고 비판합니다.

    사실 기록 · 뉴스

    [현장영상] 위안부 합의 TF 활동 결과 발표 / YTN

    YTN · 5,901회 ·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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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합의 과정을 검토한 외교부 TF의 결과 발표 현장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 24년의 '싸움' / YTN

    YTN · 2,892회 ·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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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합의 전까지 24년간 두 나라의 협의 과정을 정리한 보도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우선"...한일 '위안부' 합의 3주년 / YTN

    YTN · 3,147회 ·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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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0%추천 ★★★★★

    합의 3주년 반응을 전하는 짧은 보도라 합의 자체는 일부입니다.

  5. 2016

    7.8

    외교

    사드(THAAD) 배치 결정

    한미가 주한 미군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국은 한국 관광·문화 콘텐츠 제한 등으로 반발했습니다.

    배경

    북한이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하고 2월 장거리 로켓을 쏘자, 한미는 주한 미군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는 협의를 공식 시작했습니다. 사드는 적의 탄도 미사일이 떨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높은 고도로 요격하는 무기입니다.

    중국은 사드에 딸린 고성능 레이더가 자국 영토를 들여다볼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한국은 안보 필요와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전개

    2016년 7월 8일 한미는 주한 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공식 결정했다고 발표했고, 7월 13일 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의 공군 방공 포대를 발표했습니다. 성주 주민들이 전자파 우려 등을 들어 크게 반발하자 정부는 9월 같은 성주군 안 롯데 골프장으로 부지를 바꿨습니다.

    2017년 3월 장비가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해 4월 26일 성주 기지에 발사대 등이 반입됐고, 9월 발사대가 추가 배치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시민 단체와 경찰의 충돌이 되풀이됐습니다.

    결과와 의미

    중국은 공식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 단체 관광을 막고 한국 드라마·공연 등의 방송·공연을 제한했으며(이른바 한한령),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중국 매장이 영업 정지를 당하다 철수했습니다. 관광·유통·콘텐츠 산업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2017년 10월 한중은 관계 개선에 합의했고, 이때 한국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 방어 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른바 ‘3불’)을 밝힌 것이 이후 논쟁이 됐습니다. 성주 기지는 오랫동안 임시 배치 상태였다가 2023년 환경 영향 평가가 끝나 정식 운용 기반을 갖췄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6년 1월 6일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2. 2016년 2월 7일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같은 날 한미가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3. 2016년 7월 8일한미가 주한 미군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4. 2016년 7월 13일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 성산리의 공군 방공 포대가 발표됐습니다.
    5. 2016년 9월 30일배치 부지가 같은 성주군 초전면의 롯데 골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6. 2017년 2월 말롯데가 골프장 부지를 국방부 땅과 맞바꾸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7. 2017년 3월사드 장비가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중국에서 한국 단체 관광 상품 판매가 막혔습니다.
    8. 2017년 4월 26일성주 기지에 발사대 등 핵심 장비가 반입됐습니다.
    9. 2017년 9월 7일발사대 4기가 추가로 배치됐습니다.
    10. 2017년 10월 31일한중이 관계 개선 협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인물

    • 한민구1953~

      국방부 장관으로 배치 결정과 부지 선정 과정을 이끌었습니다.

      육군 참모 총장과 합동 참모 의장을 지낸 육군 출신입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맡아 사드 배치 협의와 발표를 담당했습니다.

    • 박근혜1952~

      대통령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했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개성 공단 가동 중단과 사드 배치 등 대북 강경 조치를 잇달아 결정했습니다. 성주 기지에 발사대가 들어간 것은 그가 파면된 뒤 권한 대행 체제에서였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사드 배치 결정

    안보상 불가피했다고 보는 쪽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실제로 커지는 상황에서 주한 미군과 국민을 지킬 방어 수단을 갖추는 것은 주권적 결정이라고 봅니다. 중국의 보복은 부당한 압박이며, 이에 밀려 물러서면 안보 문제에서 계속 주변국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실효성과 비용을 따져야 했다고 보는 쪽

    사드 한 포대로는 수도권 방어에 한계가 있고, 결정 과정이 주민 설명과 외교적 조율 없이 급하게 이뤄졌다고 봅니다. 그 결과 중국과의 관계와 경제에 큰 손실을 입었고,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의 외교 선택지가 좁아졌다고 지적합니다.

    해설·교양 · 해설

    밤샘토론 51회 - 사드 배치, 한국 안보에 약일까 독일까?

    JTBC News · 5만회 · 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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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배치 찬반 양쪽이 나와 효과와 부작용을 토론한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사드 체계 일부 도착...사드 배치 시작 / YTN (Yes! Top News)

    YTN · 9,738회 · 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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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사드 장비 도착과 배치 시작을 전문가와 해설한 보도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사드(THAAD)논란의 3대 쟁점 / YTN

    YTN · 15.2만회 ·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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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2014년 사드 배치 논란의 쟁점을 짚은 보도로 결정 이전입니다.

    해설·교양 · 예능

    누구를 위하여 사드를 배치하나? 한·미 양국의 국익에 일치? 썰전 236회

    JTBC Entertainment · 12만회 ·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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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70%추천 ★★★★★

    시사 예능 속 토론 장면으로 관점이 강하게 들어간 해설입니다.

  6. 10.24

    운동

    국정 농단 사건과 촛불 집회

    2016.10.24 ~ 2017.3 · 5개월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보도 뒤 서울 광화문 등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20차례 넘게 이어졌습니다.

    배경

    2016년 가을, 박근혜 대통령과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 온 민간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 대기업 돈을 모아 세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관여했고, 딸이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보도됐습니다.

    10월 24일 JTBC가 최서원이 쓰던 태블릿 PC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연설문 작성 때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하며 사과했습니다.

    전개

    10월 29일 서울 청계 광장에서 첫 주말 촛불 집회가 열렸고, 이후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 일대와 전국에서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11월 12일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모였고, 12월 3일 6차 집회에는 전국 232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경찰 추산은 이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검찰 특별 수사 본부는 11월 최서원 등을 기소하며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었고, 12월 박영수 특별 검사팀이 출범했습니다. 국회는 12월 9일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 탄핵에 반대하는 쪽도 태극기를 든 ‘태극기 집회’를 크게 열어 광장에서 두 흐름이 맞섰습니다.

    결과와 의미

    주최 측 집계로 2017년 봄까지 스물세 차례, 연인원 1,600만 명 넘게 참여했으며 대규모 인원이 모였는데도 대체로 평화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촛불 집회에 참여한 한국 시민들은 2017년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최서원은 직권 남용·뇌물 등 혐의로 2020년 징역 18년이 확정됐습니다. 태블릿 PC를 두고 조작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관련 재판에서 법원은 최서원이 사용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6년 7월청와대가 미르 재단 설립과 모금에 관여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왔습니다.
    2. 2016년 9월 20일K스포츠 재단 설립에 최서원이 관여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의혹의 중심 인물이 드러났습니다.
    3. 2016년 10월 24일JTBC가 최서원의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에서 청와대 문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4. 2016년 10월 25일박근혜 대통령이 첫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5. 2016년 10월 29일서울 청계 광장에서 첫 주말 촛불 집회가 열렸습니다.
    6. 2016년 10월 31일해외에 머물던 최서원이 귀국해 검찰에 출석했고, 11월 3일 구속됐습니다.
    7. 2016년 12월 3일전국에서 주최 측 추산 232만 명이 모인 최대 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8. 2016년 12월 9일국회가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
    9. 2017년 3월 10일헌법 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습니다.
    10. 2017년 4월 29일주최 측이 정한 마지막 23차 촛불 집회가 열렸습니다.

    인물

    • 최서원(최순실)1956~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섰습니다.

      1970년대 박근혜와 인연을 맺은 최태민의 딸입니다. 공식 직함 없이 청와대 문서를 받아 보고 인사와 재단 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재판으로 인정됐습니다.

    • 박영수1952~

      국정 농단 사건 특별 검사로 삼성 뇌물 사건 등을 수사했습니다.

      대검찰청 중앙 수사부장과 서울 고등 검찰청장을 지낸 검사 출신 변호사입니다. 특검 수사 결과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재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한 금품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촛불 집회의 의미

    시민이 이끈 민주주의의 성과로 보는 쪽

    수백만 시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권력 남용을 바로잡으라고 요구했고, 그 요구가 국회의 탄핵 소추와 헌재 결정이라는 헌법 절차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폭력 없이 대통령을 바꾼 과정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보여 줬다고 평가합니다.

    광장 여론의 압력을 경계하는 쪽

    언론 보도와 거리의 열기가 수사·재판 결과보다 먼저 결론을 정해 버렸다고 봅니다. 탄핵에 반대한 시민도 많았는데 광장의 한쪽 목소리만 ‘국민의 뜻’으로 여겨졌고, 이후 정치가 광장 동원 경쟁으로 흐르는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기록 · 뉴스

    [VIDEOMUG] '운집부터 촛불 파도타기까지' 100만 촛불집회 영상 총정리 / SBS

    SBS 뉴스 · 14.3만회 ·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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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11월 12일 3차 집회 현장을 정리한 SBS 영상입니다.

    사실 기록 · 기록

    [현장 다큐] “근혜 퇴진, 순실 구속!”…내 생애 첫 촛불

    한겨레TV · 3.1만회 ·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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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첫 촛불 집회 날 참가자들을 따라간 현장 영상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2002년부터 2024년까지, 촛불집회는 어떻게 변해왔나? | 그알로 보는 '촛불집회'

    그것이 알고싶다 · 6.5만회 ·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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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2002년부터 촛불 집회의 변화를 훑으며 2016년을 함께 다룹니다.

    사실 기록 · 뉴스

    [YTN 실시간뉴스] '최순실 국정개입 규탄' 서울 도심서 촛불집회 / YTN (Yes! Top News)

    YTN · 3,054회 ·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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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국정 개입 파문 중 하루치 촛불 집회 소식을 전한 짧은 보도입니다.

  7. 12.9

    정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와 파면

    2016.12.9 ~ 2017.3.10 · 3개월

    국회가 234표로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고, 헌법 재판소가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습니다.

    배경

    국정 농단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검찰은 2016년 11월 최서원 등을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범행에 공모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은 헌법상 내란·외환죄가 아니면 재직 중 기소되지 않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 길은 국회의 탄핵 소추뿐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세 차례 대국민 담화를 냈고, 세 번째 담화에서는 임기 단축을 포함한 거취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밝혔습니다.

    전개

    야 3당과 무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탄핵 소추안은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가결됐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서도 수십 명이 찬성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을 맡았습니다.

    헌법 재판소는 석 달 동안 변론을 열었습니다. 2017년 1월 박한철 소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 재판관 8명이 심리를 이어 갔고, 이정미 재판관이 소장 권한 대행을 맡았습니다. 12월 21일 출범한 박영수 특별 검사팀은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 등을 수사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습니다.

    2017년 3월 10일 헌재는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헌재는 대통령이 최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권한을 남용해 기업에 재단 출연을 요구했으며 공무상 비밀 문서를 유출한 것이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세월호 참사 대응 문제(생명권 보호 의무)는 탄핵 사유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3월 31일 구속됐습니다. 국정 농단과 국가 정보원 특수 활동비 사건으로 징역 20년, 공천 개입 사건으로 징역 2년이 각각 확정돼 모두 징역 22년이 됐습니다. 2021년 12월 31일 문재인 정부의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대통령 궐위에 따라 60일 안에 치러야 하는 대통령 선거가 2017년 5월 9일로 정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6년 11월 20일검찰이 최서원 등을 기소하며 공소장에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었습니다.
    2. 2016년 11월 29일박근혜 대통령이 세 번째 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포함한 거취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밝혔습니다.
    3. 2016년 12월 9일국회가 찬성 234표로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고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습니다.
    4. 2017년 1월 31일박한철 헌재 소장이 임기를 마쳐 재판관 8명 체제가 됐습니다.
    5. 2017년 2월 17일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6.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파면을 선고했습니다.
    7. 2017년 3월 31일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습니다.
    8. 2018년 4월1심 법원이 국정 농단 사건에서 징역 24년을 선고했습니다.
    9. 2021년 1월국정 농단 사건과 국가 정보원 특수 활동비 사건을 합친 재판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됐습니다.
    10. 2021년 12월 31일특별 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사료로 읽기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헌법 재판소 결정 주문(2016헌나1, 2017년 3월 10일)이정미 소장 권한 대행이 결정 이유를 읽은 뒤 이 주문을 선고했습니다.

    인물

    • 박근혜1952~

      국정 농단 사건으로 탄핵 소추돼 파면됐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숨진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습니다. 1998년 국회 의원이 돼 한나라당 대표로 당을 이끌었고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습니다. 2012년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됐습니다.

    • 이정미1962~

      헌재 소장 권한 대행으로 파면 결정을 선고했습니다.

      판사 출신 헌법 재판관입니다. 선고 당일 출근길에 머리에 헤어롤을 단 채 나선 모습이 알려져 화제가 됐고, 선고 사흘 뒤 임기를 마쳤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탄핵과 파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헌법 수호를 위한 결정으로 보는 쪽

    공직을 맡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의 권한을 빌려 국정에 개입하고 기업에 돈을 내게 한 것은 헌법이 정한 대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정면으로 어긴 일이라고 봅니다. 국회와 헌재가 헌법 절차에 따라 판단했고, 재판관 전원이 같은 결론을 냈다는 점을 듭니다.

    절차와 사실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

    대통령 본인이 사익을 챙긴 증거가 뚜렷하지 않은데 형사 재판 결론이 나기도 전에 파면이 결정됐다고 봅니다. 언론 보도와 광장 여론의 압력 속에서 탄핵이 서둘러 진행됐고, 재판관 한 명이 빈 8인 체제에서 결정이 내려진 점도 문제로 삼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탄핵과 헌법 재판소

    해설·교양 · 다큐

    대통령 박근혜 탄핵, 171일의 기록

    한겨레TV · 90.7만회 ·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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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의혹 보도부터 파면 선고까지 171일을 정리한 한겨레 영상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영상]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찬성 234표·반대 56표

    JTBC News · 21만회 ·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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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 개표 결과 발표 장면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대통령 탄핵 결정] 3월 11일 특집 JTBC 뉴스룸 풀영상

    JTBC News · 15만회 · 1: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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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 파면 결정 다음 날 JTBC 뉴스룸 특집 전체 영상입니다.

    사실 기록 · 기록

    박근혜 헌정 사상 첫 파면, 탄핵 인용 그 순간

    한국경제신문 · 41.2만회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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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순간을 담은 영상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탄핵안 표결 D-Day] 다시 보는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 '비하인드' 스토리! | KBS 스페셜 - 탄핵 | KBS 20161208 방송

    KBS 다큐 · 1.9만회 · 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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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결 직전 일주일의 정치권과 민심을 담은 KBS 스페셜입니다.

  8. 2017

    1.24

    정치

    바른정당 창당과 자유한국당 개명

    2017.1.24 ~ 2.13 · 2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국면에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탈당해 1월 24일 바른정당을 창당했습니다. 남은 새누리당은 2월 13일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습니다.

    배경

    2016년 말 국정 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 안에서는 탄핵에 찬성하는 비박근혜계(비박계)와 반대하는 친박근혜계(친박계)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했습니다.

    전개

    비박계 의원 29명은 2016년 12월 27일 새누리당을 집단 탈당했고, 2017년 1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창당 대회를 열어 바른정당을 공식 창당했습니다. 의원을 잃은 새누리당은 2월 13일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습니다.

    결과와 의미

    보수 진영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진 채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두 당 후보 모두 문재인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바른정당은 이후 국민의당 일부와 합쳐 바른미래당이 됐다가, 남은 세력은 2020년 자유한국당 등과 다시 합쳐 미래통합당으로 재결합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6년 12월 9일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
    2. 2016년 12월 27일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집단 탈당했습니다.
    3. 2017년 1월 24일바른정당이 공식 창당됐습니다.
    4. 2017년 2월 13일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습니다.
    5. 2017년 3월 10일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습니다.
    6. 2017년 5월 9일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한국당·바른정당 후보 모두 낙선했습니다.

    인물

    • 유승민1958~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하고 2017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으로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정부와 갈등을 빚은 뒤 비박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탄핵과 헌법 재판소

  9. 5.9

    정치

    제19대 대통령 선거

    파면에 따라 치러진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돼 다음 날 바로 취임했습니다.

    배경

    원래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2017년 12월에 치를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헌법에 따라 60일 안에 선거를 치르게 돼 5월 9일로 앞당겨졌습니다. 탄핵을 거치며 옛 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뉜 상태였습니다.

    탄핵 과정에서 옛 새누리당 의원 일부가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고, 남은 당은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보수 정당이 둘로 나뉜 데다 대통령 파면 직후 치르는 선거라 여당 쪽 후보가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정권 교체를 내세운 더불어민주당과 중도층을 겨냥한 국민의당이 지지율 선두를 다퉜습니다.

    전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이 나섰습니다. 선거 초반에는 안철수 후보가 문 후보를 바짝 쫓기도 했으나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사전 투표가 시행돼 26%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투표율은 77.2%였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41.08%를 얻어 홍준표(24.03%), 안철수(21.41%)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1·2위 표 차는 약 557만 표로 직선제 이후 가장 컸습니다.

    각 당은 3~4월 짧은 기간에 경선을 치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 시장 등을 이겼습니다. 후보 등록 뒤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후보들이 원고 없이 서서 토론하는 방식이 처음 도입됐습니다. 사전 투표는 5월 4~5일 열려 전체 선거인의 26.06%가 참여했습니다.

    유승민 후보는 6.76%, 심상정 후보는 6.17%를 얻었습니다.

    결과와 의미

    궐위에 따른 선거라 당선인 신분이나 인수 위원회 기간 없이,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가 당선을 확정한 5월 10일 아침부터 곧바로 임기가 시작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그날 낮 국회에서 간소하게 취임 선서를 했습니다. 인수 위원회 없이 출범한 경험은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때 다시 되풀이됐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2017년 3월 10일헌법 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해 60일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하게 됐습니다.
    2. 2017년 3월 15일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이 대선 날짜를 5월 9일로 정해 발표했습니다.
    3. 2017년 4월 초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국민의당이 안철수를 대선 후보로 확정했습니다.
    4. 2017년 4월 15~16일후보 등록이 진행됐습니다.
    5. 2017년 5월 4~5일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사전 투표가 열렸습니다.
    6. 2017년 5월 9일투표가 치러져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7. 2017년 5월 10일 아침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가 당선을 확정하며 곧바로 임기가 시작됐고, 낮에 국회에서 취임 선서가 열렸습니다.

    인물

    • 문재인1953~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경남 거제에서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생 운동으로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부산에서 노무현과 함께 인권 변호사로 일했고, 노무현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졌다가 두 번째 도전에서 당선됐습니다.

    • 홍준표1954~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서 2위를 했습니다.

      검사 출신으로 여러 차례 국회 의원을 지냈고 한나라당 대표와 경남도지사를 지냈습니다. 이후 대구 시장을 지냈습니다.

    • 안철수1962~

      국민의당 후보로 나서 3위를 했습니다.

      의사 출신으로 컴퓨터 백신 회사 안철수연구소를 세운 기업인입니다. 2012년 대선에 나섰다가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했고, 2022년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했습니다.

    해설·교양 · 해설

    10년 만의 정권 교체! 촛불민심이 선택한 19대 대통령ㅣ19대 대선 요약 #탑골정치

    KBS 선거방송 · 3.4만회 ·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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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19대 대선 과정과 결과를 3분으로 정리한 KBS 영상입니다.

    사실 기록 · 기록

    [풀버전] 대한민국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

    광주MBC · 2.5만회 · 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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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 대선 다음 날 취임식 전체를 담은 영상이라 선거 결과의 마무리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출구조사 공개 순간..깜짝 놀란 정확성|SBS 선거방송

    SBS 뉴스 · 19.6만회 ·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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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3사 출구 조사 결과가 공개되는 순간의 SBS 방송입니다.

    사실 기록 · 뉴스

    [엠빅비디오]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 하이라이트 영상

    MBCNEWS · 7.8만회 ·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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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 하이라이트라 선거 자체는 없습니다.

이 시기의 핵심 개념 1개

사건 설명에 나오는 말을 풀었습니다. 사건 밑의 개념 이름을 누르면 여기로 옵니다.

탄핵과 헌법 재판소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가 헌법·법률을 어기면 국회가 소추하고 헌법 재판소가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대통령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되고, 헌법 재판소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하면 파면됩니다. 소추되면 결정 때까지 권한이 멈춥니다.

헌법 재판소는 1987년 헌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노무현(2004, 기각), 박근혜(2017, 파면), 윤석열(2025, 파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있었습니다.

해설

22분짜리 탄핵 판결문, 딱 핵심만 5분 정리해 봄 / 스브스뉴스

스브스뉴스 SUBUSUNEWS · 229.3만회 ·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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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교과서와 공적 기관 서술을 기준으로 적었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양쪽 견해를 함께 적었습니다. 1895년 이전 날짜는 양력이며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적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조회수는 2026-09-24 기준입니다. 영화·드라마는 공식 예고편이고,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