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수학여행 중이던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 무리한 증축과 과적, 초기 구조 실패가 드러나 여러 차례 조사가 이어졌습니다.
배경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들여온 여객선으로, 들여온 뒤 객실을 늘리는 증축으로 무게 중심이 높아져 복원력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사고 당일에는 화물을 기준보다 훨씬 많이 싣고도 평형수를 줄였고,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후 조사와 재판에서 드러났습니다.
전개
2014년 4월 15일 밤 인천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무렵 전남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 근처에서 급하게 방향을 튼 뒤 크게 기울었습니다. 배에는 476명이 타고 있었고, 그 가운데 325명이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습니다.
선내에서는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거듭 나왔고,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 퇴선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먼저 배를 빠져나왔습니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도 선내 진입과 퇴선 유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배는 오전 10시 30분 무렵 뱃머리만 남기고 가라앉았고, 172명만 구조됐습니다.
희생자는 304명(사망 299명, 미수습 5명)이며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포함됐습니다. 이후 수색이 몇 달간 이어졌고, 배는 2017년 3월 인양돼 목포 신항으로 옮겨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이준석 선장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돼 2015년 무기 징역이 확정됐고, 선원들과 청해진해운 관계자들도 처벌받았습니다. 선주 일가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회장은 수배 중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해경 123정장은 업무상 과실 치사로 징역 3년이 확정됐으나, 해경 지휘부는 2023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정부는 2014년 해양 경찰청을 해체해 국민 안전처로 넘겼다가 2017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특별 조사 위원회(2015), 선체 조사 위원회(2017),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2018~2022)가 차례로 조사를 벌였습니다. 선체 조사 위원회는 2018년 침몰 원인에 대해 배 자체의 문제로 보는 결론과 외부 충격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결론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과 정부의 보고·지휘 문제는 2016~2017년 탄핵 논의 과정에서도 쟁점이 됐습니다. 참사 이후 4월 16일은 ‘국민 안전의 날’로 정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인물
이준석(세월호 선장)
박근혜1952~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진상 규명은 충분히 이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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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