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연표

현대

6·25 전쟁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유엔군과 중국군이 참전하며 국제전이 됐습니다. 전선은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오간 뒤 38도선 부근에서 굳었고, 1953년 정전 협정으로 멈췄습니다.

기간
1950.6.25 ~ 1953.7.27 · 3년 1개월
누가 다스렸나
대통령 이승만
담긴 것
사건 22 · 영상 21 · 영화·드라마 11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드라마 11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영화 · 2019· 공식 영상

봉오동 전투

배경 1920.6.7

독립군이 일본군을 골짜기로 끌어들여 이긴 전투

영화 · 2016· 제목만

밀정

배경 1923

1923년 의열단의 폭탄 반입 사건(황옥 경부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영화 · 2015· 제목만

대호

배경 1925

일제의 조선 호랑이 사냥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영화 · 2015· 공식 영상

암살

배경 1933

1933년 경성, 친일파와 일본 요인 암살 작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창작

드라마 · 1991· 제목만

여명의 눈동자

배경 1943 ~ 1953.7.27

MBC. 일제강점기 말부터 6·25 전쟁까지 세 남녀의 삶

영화 · 2004· 제목만

태극기 휘날리며

배경 1950.6.25 ~ 1953.7.27

전쟁에 함께 끌려간 형제의 이야기

영화 · 2005· 제목만

웰컴 투 동막골

배경 1950.9 ~ 1950.10

산골 마을에서 마주친 국군·인민군·연합군 병사. 우화적 창작

영화 · 2019· 제목만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배경 1950.9.14

인천 상륙 작전 전날 양동 작전에 투입된 학도병들

영화 · 2016· 공식 영상

인천상륙작전

배경 1950.9.15

상륙 작전 전 첩보 작전(X-RAY)을 극화

영화 · 2014· 공식 영상

국제시장

배경 1950.12.15 ~ 1983.11.14

흥남 철수부터 파독 광부, 베트남, 이산가족 찾기까지 한 사람의 삶

영화 · 2011· 제목만

고지전

배경 1953 ~ 1953.7.27

정전 협정 직전 동부 전선의 고지 쟁탈전

사건 연표 22

앞 시기에서 이어지는 일: 제주 4·3 사건 (~1954.9.21)

  1. 1950

    6월

    사회

    국민 보도 연맹 사건

    1950.6 ~ 1950.9 · 3개월

    전쟁 초기 군과 경찰이 좌익 전향자 단체인 국민 보도 연맹원과 예비 검속된 사람들을 재판 없이 집단 처형한 사건입니다. 정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국가의 책임을 확인했습니다.

  2. 6.25

    전쟁

    북한군의 남침

    새벽 4시 북한군이 38도선 전역에서 기습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공개된 옛 소련 문서로 스탈린이 이 계획을 승인하고 지원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그날 북한의 무력 공격 중지를 결의했고, 이어 회원국의 군사 지원을 권고했습니다(소련은 회의에 불참).
  3. 6.28

    전쟁

    서울 함락과 한강 인도교 폭파

    전쟁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습니다. 국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늦추려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는데, 다리 위의 피난민이 희생됐고 서울 시민 상당수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4. 6.28

    사회

    북한군 점령기 민간인 학살

    1950.6.28 ~ 1950.9 · 3개월

    북한군은 점령 지역에서 인민재판으로 공무원·경찰·우익 인사 등을 처형했고, 후퇴하면서 대전 형무소 등에서 수감자와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5. 7.5

    전쟁

    오산 죽미령 전투

    처음 투입된 미 지상군 스미스 부대가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첫 전투를 치렀습니다.

  6. 7.26

    사회

    노근리 사건

    1950.7.26 ~ 7.29 · 4일

    충북 영동 노근리 철교 부근에서 미군이 피난민을 향해 공중 폭격과 사격을 해 많은 민간인이 숨졌습니다. 2001년 미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7. 8월

    전쟁

    낙동강 방어선

    1950.8 ~ 1950.9 · 1개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을 따라 최후 방어선을 쳤습니다. 다부동 전투 등으로 대구와 부산을 지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8. 9.15

    전쟁

    인천 상륙 작전

    맥아더가 지휘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었습니다. 낙동강 전선의 반격과 맞물려 전세가 뒤집혔습니다.

  9. 9.28

    전쟁

    서울 수복

    국군과 유엔군이 석 달 만에 서울을 되찾았습니다.

  10. 10.1

    전쟁

    38도선 돌파와 북진

    1950.10.1 ~ 10.26 · 26일

    국군이 10월 1일 38도선을 넘었고(지금의 국군의 날),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했습니다. 일부 부대는 압록강 초산까지 닿았습니다.

  11. 10.19

    전쟁

    중국군 참전

    1950.10.19 ~ 10.25 · 7일

    중국 인민 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참전했고, 10월 25일 국군과 첫 교전을 벌였습니다. 전쟁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12. 11.27

    전쟁

    장진호 전투

    1950.11.27 ~ 12.13 · 17일

    함경남도 장진호 일대에서 미 해병 제1사단 등이 영하 30도 안팎의 혹한 속에 포위한 중국군과 싸우며 흥남으로 철수했습니다.

  13. 12월

    사회

    국민 방위군 사건

    1950.12 ~ 1951 · 1년

    중국군 참전 뒤 급히 소집한 국민 방위군 간부들이 보급품과 예산을 빼돌려, 후방으로 이동하던 장정 다수가 굶주림과 추위, 병으로 숨졌습니다. 관련 간부들은 처형됐습니다.

  14. 12.15

    전쟁

    흥남 철수

    1950.12.15 ~ 12.24 · 10일

    포위된 국군·유엔군과 함께 피난민 약 10만 명이 흥남 부두에서 배로 철수했습니다.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한 번에 1만 4천여 명을 태웠습니다.

  15. 1951

    1.4

    전쟁

    1·4 후퇴

    중국군의 공세로 서울을 다시 내주고 평택~삼척 선까지 물러났습니다.

  16. 2.9

    사회

    거창 사건

    1951.2.9 ~ 2.11 · 3일

    지리산 일대 공비 토벌 작전 중 국군 제11사단 일부 부대가 경남 거창 신원면 주민을 통비 혐의로 몰아 집단 학살했습니다. 희생자는 719명으로 확인됐습니다.

  17. 3.15

    전쟁

    서울 재수복

    유엔군이 반격해 서울을 다시 되찾았습니다. 이후 전선은 38도선 부근에서 오르내렸습니다.

  18. 7월

    전쟁

    고지 쟁탈전

    1951.7 ~ 1953.7 · 2년

    회담이 이어지는 동안 조금이라도 유리한 경계선을 얻으려 백마고지·펀치볼·단장의 능선 등에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습니다.

  19. 7.10

    외교

    휴전 회담

    1951.7.10 ~ 1953.7.27 · 2년

    개성에서 휴전 회담이 시작돼 판문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군사 분계선과 포로 송환 방식을 두고 2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 유엔군은 포로 본인이 돌아갈 곳을 고르는 자유 송환을, 공산군은 모두 돌려보내는 강제 송환을 주장했습니다.
    • 이승만 정부는 휴전에 반대하며 북진 통일을 주장했습니다.
  20. 1952

    5.25

    정치

    부산 정치 파동과 발췌 개헌

    1952.5.25 ~ 7.4 · 41일

    국회 간선으로는 재선이 어렵게 되자 이승만 정부는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을 연행했습니다. 국회는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개헌안을 기립 표결로 통과시켰습니다.

    • 8월 치른 첫 직선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재선됐습니다.
  21. 1953

    6.18

    정치

    반공 포로 석방

    휴전에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과 상의 없이 북한 송환을 거부한 반공 포로 2만 7천여 명을 석방했습니다.

  22. 7.27

    조약

    정전 협정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군·중국 인민 지원군 사령관이 정전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군사 분계선과 비무장 지대가 정해졌고, 한국 정부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 전쟁으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고, 1천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이 생겼다고 합니다.
    • 법적으로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춘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교과서와 공적 기관 서술을 기준으로 적었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양쪽 견해를 함께 적었습니다. 1895년 이전 날짜는 양력이며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적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조회수는 2026-09-24 기준입니다. 영화·드라마는 공식 예고편이고,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