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제물포) 개항
서울과 가까운 인천이 세 번째 개항장으로 열렸습니다. 이후 외국 상인과 조계지가 몰려들었습니다.
근대›개화 정책의 확대
1883.1
근대› 개항기
인천이 열리고 태극기가 국기가 됐습니다. 보빙사를 미국에 보내고 한성순보·전환국·기기창 같은 근대 시설을 세우는 한편, 영국·독일·러시아와도 수교했습니다.
여러 사건을 이어서 다루는 영상입니다. 옆으로 넘겨 보세요.
태극기 탄생의 비밀
역사 읽어드립니다 — 암군인가 개혁 군주인가, 고종은 어떤 왕이었을까
흥선대원군부터 한일 병합까지 근대 한국사 한번에(지도 애니메이션)
KBS 한국사전 — 흥선대원군, 왜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나
7일의 기적 5일차 2교시 — 개항부터 갑신정변까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명성황후」
「미스터 션샤인」
「불꽃처럼 나비처럼」
「조선총잡이」
1883
1월
서울과 가까운 인천이 세 번째 개항장으로 열렸습니다. 이후 외국 상인과 조계지가 몰려들었습니다.
120년전 인천 혹은 제물포ㅣ188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개항 이후 인천의 변화ㅣ120 years ago, Jemulpo (Incheon)
[한국사 探] 개항의 관문, 인천의 근대사 / YTN 사이언스
120년전 인천 혹은 제물포ㅣ188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개항 이후 인천의 변화ㅣ120 years ago, Jemulpo (Incheon)
[한국사 探] 개항의 관문, 인천의 근대사 / YTN 사이언스
재정난을 메우려 상평통보의 5배 가치를 매긴 당오전을 찍었습니다. 실제 가치가 이에 못 미쳐 물가가 올랐습니다.
상평통보 당오전 수집 정리편
상평통보 당오전 수집 정리편
3월
조정이 태극 무늬와 4괘를 그린 기를 나라의 국기로 공포했습니다. 앞서 1882년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길에 이 기를 게양했습니다.
북한 국기가 원래 태극기였다고?
북한 국기가 원래 태극기였다고?
7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후 민영익·홍영식·서광범·유길준 등을 미국에 보냈습니다. 서양에 간 첫 공식 사절단이며, 유길준은 남아서 미국에서 공부했습니다.
보빙사, 그들은 스파이였나?
[박종인의 땅의 역사] 88.함께 신세계를 봤으되, 너무나도 달랐던 그들: 1883년 미국 보빙사와 실세 민영익-1
고종의 미국사절단 보빙사 (報聘使) 1부 그들은 스파이였다 [역사실험] KBS 2012.03.10 방송
구한말 미국 사절단 보빙사 (報聘使) 2부 조선 운명의 개척자 [역사실험] KBS 2012.03.17 방송
보빙사, 그들은 스파이였나?
[박종인의 땅의 역사] 88.함께 신세계를 봤으되, 너무나도 달랐던 그들: 1883년 미국 보빙사와 실세 민영익-1
고종의 미국사절단 보빙사 (報聘使) 1부 그들은 스파이였다 [역사실험] KBS 2012.03.10 방송
구한말 미국 사절단 보빙사 (報聘使) 2부 조선 운명의 개척자 [역사실험] KBS 2012.03.17 방송
10.31
박문국에서 열흘마다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입니다. 순한문으로 쓰였고 정부 소식과 외국 사정을 알렸습니다.
(근대신문 정리) 한성순보부터 대한매일신보까지 1p로 끝내기! (도식 포함)
(근대신문 정리) 한성순보부터 대한매일신보까지 1p로 끝내기! (도식 포함)
11.26
1882년 맺었다가 비준하지 못한 조약을 고쳐 영국·독일과 다시 조약을 맺었습니다. 조미 조약보다 조선에 더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조영수호통상조약 원본 관람: 국제조약의 정의와 종류
조영수호통상조약 원본 관람: 국제조약의 정의와 종류
1884
7.7
청의 간섭을 줄이려 청을 거치지 않고 러시아와 직접 수교했습니다. 이후 러시아는 조선 문제의 주요 당사국이 됐습니다.
조러수호통상조약 140주년 기념 전시회 개막식
조러수호통상조약 140주년 기념 전시회 개막식
사건 설명에 나오는 말을 풀었습니다. 사건 밑의 개념 이름을 누르면 여기로 옵니다.
중국 황제가 주변국 왕을 책봉하고 주변국이 조공을 바치던 동아시아의 전통적 외교 질서입니다.
형식상의 위계 관계였지만, 조선은 내정과 외교를 스스로 결정해 왔습니다. 임오군란 뒤 청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속방'이라는 말을 넣고 내정에 직접 간섭하며 이 관계를 실질적인 지배로 바꾸려 했습니다.
청일 전쟁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이 관계가 끝났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해 황제국임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조공-책봉 관계의 실상|'삼국시대에도 착한 외교는 없었다' - 안정준 교수|차이나는 클라스|JTBC 220206 방송
'조공-책봉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낳은 동아시아 역사 왜곡! 차이나는 클라스(jtbclecture) 228회 | JTBC 220206 방
고구려가 조공을 바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