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개혁
을미사변 뒤 들어선 김홍집 내각이 개혁을 이어 갔습니다. 태양력을 쓰기로 해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삼았고, '건양' 연호를 정했습니다.
- 종두법을 시행하고 우체사와 소학교를 세웠으며, 친위대(서울)와 진위대(지방)를 뒀습니다.
배경
을미사변 뒤 김홍집을 총리대신으로 한 새 내각이 들어섰습니다. 유길준·정병하·조희연 등 친일 성향 인사가 요직을 맡았고, 러시아·미국과 가까운 인사들은 물러나거나 피신했습니다. 이 내각은 중단된 개혁을 서둘러 이어 갔습니다.
새 내각은 일본인 고문관의 조언을 받으며 3차 김홍집 내각 때 준비하던 제도들을 한꺼번에 시행했습니다. 삼국 간섭 뒤 가라앉았던 일본의 영향력이 을미사변으로 다시 커진 상태였고, 왕비 시해로 민심은 매우 나빴습니다.
전개
1895년 가을부터 이듬해 초까지 여러 개혁이 시행되었습니다. 음력을 버리고 태양력을 쓰기로 해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삼았고, 새 연호 ‘건양’을 정했습니다. 종두법을 시행하고 우편 업무를 맡는 우체사를 두었으며, 소학교를 세웠습니다. 군제를 바꿔 서울에는 친위대, 지방에는 진위대를 두었습니다.
1895년 12월 30일(음력 11월 15일)에는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내려졌습니다.
태양력은 음력 1895년 11월 16일 다음 날을 곧바로 1896년 1월 1일로 삼는 방식으로 시행되어, 그해 음력 섣달까지 한 달 반가량이 달력에서 건너뛰었습니다. 우편 사무는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이 문을 닫은 지 약 10년 만인 1895년에 우체사를 통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결과와 의미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에 단발령이 겹치면서 전국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습니다. 정부가 의병 진압을 위해 친위대를 지방으로 보낸 사이,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이 일어났습니다. 김홍집 내각은 무너졌고, 김홍집·정병하 등은 살해되고 유길준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단발령은 강제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태양력 등 여러 제도는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관청은 이후 양력을 공식 달력으로 썼지만,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음력으로 명절과 제사를 지냈습니다. 친위대·진위대로 개편한 군제는 대한제국기에 다시 바뀌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인물
김홍집1842~1896
유길준1856~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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