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이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이 만세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는 두 달 넘게 전국과 만주·연해주·미주로 퍼졌습니다.
- 종교계(천도교·기독교·불교)와 학생이 준비하고 농민·노동자·상인까지 신분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 박은식의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는 사망자를 7,509명으로 적었습니다. 총독부 집계는 이보다 훨씬 적어 자료마다 차이가 큽니다.
- 일제는 이후 통치 방식을 이른바 문화 통치로 바꿨고, 독립운동을 이끌 조직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