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이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이 쓴 『조선책략』을 들여왔습니다. 러시아를 막으려면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이 책이 퍼지자 이듬해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반대하는 영남 만인소를 올렸습니다.
배경
개항 뒤 무관세 무역과 쌀 유출 문제가 커지자 조선은 관세를 매기고, 일본이 요구한 인천 개항을 늦추기 위해 교섭에 나섰습니다. 1880년 음력 5월 김홍집을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보냈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하나부사 요시모토를 공사로 삼아 서울에 공사관을 두려 했고, 인천 개항과 공사의 서울 상주를 계속 요구했습니다. 1880년 일본 공사관은 서대문 밖 청수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선은 이런 요구에 대응하면서 일본의 속내와 서양 여러 나라의 움직임을 살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전개
김홍집은 도쿄에서 관세 문제를 제기했지만 일본은 권한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받아 주지 않아 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도쿄의 청 공사관을 찾아가 공사 허루장(하여장), 참찬관 황쭌셴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황쭌셴은 김홍집에게 자신이 쓴 『조선책략』을 건넸습니다. 러시아의 남하가 조선에 가장 큰 위협이니 ‘중국과 친하고(친중국), 일본과 맺고(결일본), 미국과 이어져야(연미국)’ 하며, 스스로 힘을 기르기 위해 서양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홍집이 청 공사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말이 아니라 한문으로 글을 써서 주고받는 필담으로 이뤄졌습니다. 『조선책략』은 러시아가 조선을 노린다는 경고로 시작해, 조선이 외교 관계를 넓히고 서양 기술을 배워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청의 실력자 리훙장의 생각이 반영된 책이었습니다.
결과와 의미
김홍집이 이 책을 고종에게 올리자 조정은 이를 널리 돌려 읽게 했고, 미국과 수교하는 논의가 힘을 얻었습니다.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반면 책 내용이 알려지자 유생들이 크게 반발해 1881년 영남 만인소를 비롯한 위정척사 상소가 잇따랐습니다.
고종은 1880년 가을 중신들을 모아 이 책을 논의하게 했고, 영의정 이최응 등은 책의 주장에 받아들일 만한 점이 있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해 말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고 이듬해 조사 시찰단과 영선사가 파견되는 등, 개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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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기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인가. 중국과 친하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연결(聯美國)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인물
김홍집1842~1896
황쭌셴(黃遵憲)1848~1905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조선책략』은 누구를 위한 책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