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연표

근대› 개항기

개화 정책과 위정척사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두고 일본과 청에 시찰단을 보내며 개화 정책을 폈습니다. 유생들은 『조선책략』에 반발해 만인소를 올렸고, 조선은 미국과 첫 서양 조약을 맺었습니다.

기간
1880.1 ~ 1882.6 · 2년 5개월
누가 다스렸나
임금 고종
담긴 것
사건 6 · 영상 25 · 영화·드라마 5

이 시기를 한 번에 보는 영상 6편

여러 사건을 이어서 다루는 영상입니다. 옆으로 넘겨 보세요.

해설·교양 · 강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 암군인가 개혁 군주인가, 고종은 어떤 왕이었을까

사피엔스 스튜디오 · 169.3만회 ·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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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75%추천 ★★★★★

고종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재위 기간을 훑는 강연입니다.

1864.1.21 ~ 1907.7.20 · 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해설·교양 · 해설

흥선대원군부터 한일 병합까지 근대 한국사 한번에(지도 애니메이션)

로빈의 역사 기록 · 97만회 · 1: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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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부터 병합까지 근대사를 90분에 훑는 통합 영상입니다.

1864.1.21 ~ 1910.8.29 · 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해설·교양 · 다큐

KBS 한국사전 — 흥선대원군, 왜 아들과 화해하지 못했나

KBS 히스토리 · 95.5만회 · 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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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일치도 75%추천 ★★★★★

대원군과 고종의 대립을 축으로 집권부터 을미사변 무렵까지 다룹니다.

1864.1.21 ~ 1895.10.8 · 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해설·교양 · 강의

7일의 기적 5일차 2교시 — 개항부터 갑신정변까지

최태성 1TV · 79.7만회 ·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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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부터 갑신정변까지의 기출 개념을 한 번에 정리한 강의입니다.

1875.9.20 ~ 1885.4.18 · 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해설·교양 · 다큐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

EBS 다큐 · 70.5만회 · 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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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외교 선택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 일부입니다.

1864.1.21 ~ 1907.7.20 · 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해설·교양 · 해설

조선이 니들 동네 북이냐? 강화도 조약·임오군란 — 한국사 요약 8편

아그래 역사 · 31.1만회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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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부터 임오군란까지를 개인 채널이 요약합니다.

1876.2.27 ~ 1882.8.30 · 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드라마 5편

공식 영상이 있는 작품은 바로 재생됩니다.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

드라마 · 1982· 제목만

「풍운」

배경 1863 ~ 1898

KBS 대하드라마(51부작). 유주현의 소설 『대원군』이 원작으로, 흥선대원군(이순재)의 집권과 쇄국을 그렸습니다

드라마 · 2001· 공식 영상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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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66 ~ 1895.10.8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의 일생을 따라 대원군과의 갈등부터 을미사변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드라맛집] 내가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 몰아보기

KBS Drama Classic · 12.3만회 ·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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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2018· 공식 영상

「미스터 션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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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71.6.1 ~ 1907.8

tvN. 신미양요 때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이 미군 장교가 되어 돌아온 이야기. 의병 운동까지

요약 영상 ·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최유진♥고애신 명장면 하이라이트

TVING 티빙 · 159.3만회 ·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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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2009· 제목만

「불꽃처럼 나비처럼」

배경 1873 ~ 1895.10.8

명성황후와 호위 무사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엮은 영화

드라마 · 2014· 공식 영상

「조선총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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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80 ~ 1884.12.6

KBS. 개화기 총을 든 무사의 복수극. 갑신정변 무렵이 배경

사건 연표 6건

AI 분석 — 영상마다 제목·설명문·채널을 붙은 사건과 대조해 일치도(그 사건을 얼마나 정면으로 다루나)와 추천도(일치도·출처·설명의 충실함·조회수)를 매겼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본 결과가 아니라 추정치입니다(2026-09-25 기준). 영상은 사실 기록(그때 찍은 기록·방송 뉴스), 해설·교양(다큐·강의·교양 예능), 창작(드라마·영화 — 허구가 섞임)으로 나눴습니다.

  1. 1880

    외교

    2차 수신사와 『조선책략』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이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이 쓴 『조선책략』을 들여왔습니다. 러시아를 막으려면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이 책이 퍼지자 이듬해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반대하는 영남 만인소를 올렸습니다.

    배경

    개항 뒤 무관세 무역과 쌀 유출 문제가 커지자 조선은 관세를 매기고, 일본이 요구한 인천 개항을 늦추기 위해 교섭에 나섰습니다. 1880년 음력 5월 김홍집을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보냈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하나부사 요시모토를 공사로 삼아 서울에 공사관을 두려 했고, 인천 개항과 공사의 서울 상주를 계속 요구했습니다. 1880년 일본 공사관은 서대문 밖 청수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선은 이런 요구에 대응하면서 일본의 속내와 서양 여러 나라의 움직임을 살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전개

    김홍집은 도쿄에서 관세 문제를 제기했지만 일본은 권한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받아 주지 않아 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도쿄의 청 공사관을 찾아가 공사 허루장(하여장), 참찬관 황쭌셴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황쭌셴은 김홍집에게 자신이 쓴 『조선책략』을 건넸습니다. 러시아의 남하가 조선에 가장 큰 위협이니 ‘중국과 친하고(친중국), 일본과 맺고(결일본), 미국과 이어져야(연미국)’ 하며, 스스로 힘을 기르기 위해 서양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홍집이 청 공사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말이 아니라 한문으로 글을 써서 주고받는 필담으로 이뤄졌습니다. 『조선책략』은 러시아가 조선을 노린다는 경고로 시작해, 조선이 외교 관계를 넓히고 서양 기술을 배워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청의 실력자 리훙장의 생각이 반영된 책이었습니다.

    결과와 의미

    김홍집이 이 책을 고종에게 올리자 조정은 이를 널리 돌려 읽게 했고, 미국과 수교하는 논의가 힘을 얻었습니다.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반면 책 내용이 알려지자 유생들이 크게 반발해 1881년 영남 만인소를 비롯한 위정척사 상소가 잇따랐습니다.

    고종은 1880년 가을 중신들을 모아 이 책을 논의하게 했고, 영의정 이최응 등은 책의 주장에 받아들일 만한 점이 있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해 말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고 이듬해 조사 시찰단과 영선사가 파견되는 등, 개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0년 음력 5월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임명돼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2. 1880년 여름도쿄에서 관세 문제와 인천 개항 문제를 꺼냈지만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 도쿄 체류 중청 공사 허루장, 참찬관 황쭌셴과 여러 차례 필담을 나눴고, 황쭌셴에게서 『조선책략』을 받았습니다.
    4. 1880년 가을귀국한 김홍집이 고종에게 복명하며 『조선책략』을 올렸습니다. 조정은 중신 회의를 열어 책의 내용을 논의했습니다.
    5. 1881년 1월(음력 1880년 12월)개화 정책을 맡을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됐습니다.
    6. 1881년 3월(음력 2월)영남 유생들이 『조선책략』을 비판하는 영남 만인소를 올렸습니다.
    7. 1882년 5월 22일조선이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었습니다.

    사료로 읽기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인가. 중국과 친하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연결(聯美國)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 황쭌셴, 『조선책략』(1880), 우리역사넷 번역

    인물

    • 김홍집1842~1896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가서 『조선책략』을 들여왔습니다.

      온건 개화파를 대표하는 관료입니다. 조미 조약 협상, 임오군란 뒤 제물포 조약, 갑신정변 뒤 한성 조약 교섭에 잇따라 참여했습니다. 갑오개혁 때 총리대신으로 개혁을 이끌었으나 1896년 아관파천 직후 성난 군중에게 살해됐습니다.

    • 황쭌셴(黃遵憲)1848~1905

      주일 청국 공사관 참찬관으로 『조선책략』을 써서 김홍집에게 건넸습니다.

      청의 외교관이자 시인입니다. 일본의 근대화를 연구한 『일본국지』를 썼고, 뒷날 청 말기 개혁 운동인 변법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조선책략』은 누구를 위한 책이었나

    조선의 생존 전략을 제시했다고 보는 쪽

    러시아의 남하라는 실제 위협을 짚고,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어 힘의 균형을 이루라는 현실적인 조언이었다고 봅니다. 조선이 서양 나라들과 수교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중시합니다.

    청의 이익을 앞세웠다고 보는 쪽

    ‘친중국’을 맨 앞에 둔 것은 조선을 계속 청의 영향 아래 두려는 의도였고, 러시아를 막으려는 청의 외교 전략에 조선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봅니다. 일본과 결속하라는 권고 역시 조선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위정척사

    해설·교양 · 강의

    오늘078_조선책략 헌사 l 큰별쌤의 오늘

    최태성 2TV · 6,374회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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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김홍집의 조선책략 헌사를 짧게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해설

    [우리역사넷] 조선책략과 만국공법

    국사편찬위원회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 433회 ·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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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0%추천 ★★★★★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책략과 만국공법을 책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2. 5월

    경제

    원산 개항

    강화도 조약에 따라 부산에 이어 원산이 두 번째 개항장으로 열렸습니다.

    배경

    강화도 조약은 부산 외에 두 항구를 더 열기로 했지만 어디를 열지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동해안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좋은 곳을 원했고, 처음에는 함경도 영흥만을 요구했습니다. 영흥은 조선 왕실의 선조와 관련된 땅이라 조선이 거부하자, 협상 끝에 가까운 원산으로 정해졌습니다.

    강화도 조약 제5관은 경기·충청·전라·경상·함경 다섯 도의 바닷가에서 통상에 알맞은 항구 두 곳을 골라 열기로 했습니다. 일본은 1877년 무렵부터 군함을 보내 동해안을 측량하며 후보지를 찾았고,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던 일본에게 동해안 항구는 무역뿐 아니라 군사적 의미도 컸습니다.

    영흥은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이어서 조정은 왕실의 뿌리가 있는 땅을 외국에 열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협상 끝에 1879년 무렵 영흥 대신 덕원부에 속한 원산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전개

    1880년 5월 원산이 문을 열었습니다. 일본은 영사관을 두고 개항장 안에 일본인 거류지를 마련했습니다.

    개항과 함께 일본인 거류지가 정해져 상인들이 건너와 가게와 창고를 지었습니다. 일본 상인은 영국산 면직물 같은 외국 상품을 들여오고, 함경도·강원도에서 나는 곡물과 해산물, 사금 등을 사 갔습니다.

    결과와 의미

    원산은 함경도와 강원도의 물자가 모이는 동해안 무역의 중심이 됐습니다. 외국 상인의 진출에 대응해 1883년 원산 주민과 덕원 부사 정현석이 힘을 모아 근대식 학교인 원산학사를 세운 것도 이곳입니다.

    원산학사는 원산 상인과 주민이 돈을 모아 세운 학교로, 외국어·산수·기계 같은 새 과목과 무예를 함께 가르쳤습니다. 외국 상인과 경쟁하려면 새 지식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개항장 주민들의 생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1883년에는 부산·인천과 함께 원산에도 관세를 거두는 해관이 설치됐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76년 2월강화도 조약 제5관에서 부산 외에 두 항구를 더 열기로 했습니다.
    2. 1877년 무렵일본이 동해안을 측량하며 함경도 영흥만을 개항지로 요구했습니다.
    3. 1879년 무렵조선이 영흥 대신 덕원부 원산을 열기로 일본과 합의했습니다.
    4. 1880년 5월원산이 두 번째 개항장으로 문을 열었고, 일본 영사관과 일본인 거류지가 들어섰습니다.
    5. 1883년원산 주민과 덕원 부사 정현석이 원산학사를 세웠고, 원산에도 해관이 설치됐습니다.

    인물

    •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

      일본 대리공사로 개항지 선정 협상을 맡아 원산 개항을 성사시켰습니다.

      초대 주조선 일본 공사입니다. 원산·인천 개항 교섭을 이끌었고, 임오군란 때 공사관이 습격당하자 일본으로 피했다가 돌아와 제물포 조약을 맺었습니다.

    • 정현석

      덕원 부사로 원산 주민들과 함께 원산학사 설립을 이끌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지방관입니다. 개항장이 된 원산에서 주민들의 교육 요구를 받아들여 학교 설립을 정부에 보고하고 지원을 얻어 냈습니다.

    더 알아두기

    왜 원산이었나
    일본에게 원산은 무역항이면서 러시아 연해주와 가까운 전략 거점이었습니다. 부산이 옛 왜관을 이어받은 항구, 인천이 수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면 원산은 동해안과 북방을 겨냥한 항구였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디딤영상#12]근대 문물로 인한 변화들/중3/역사/거꾸로교실/근현대사/근대문물/기기창/우정총국/석조전/원산학사/육영공원/대한매일신보/신채호/박은식

    희쌤교실 · 226회 ·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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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30% · 간접 관련추천 ★★★★★

    근대 문물 전반을 다루는 중학 수업이라 원산 개항은 원산학사 언급 정도입니다.

  3. 1881

    외교

    조사 시찰단·영선사 파견

    박정양 등 조사 시찰단을 일본에 보내 행정·산업 시설을 살피게 했고, 김윤식이 이끈 영선사는 청 톈진에서 무기 제조 기술을 배웠습니다. 영선사의 경험은 뒷날 기기창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배경

    1880년 말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며 개화 정책에 속도를 낸 조정은 이웃 나라의 근대 제도와 기술을 직접 보고 배워 오기로 했습니다. 일본에는 행정·산업을 살필 시찰단을, 청에는 무기 제조를 배울 유학생을 보냈습니다.

    당시 조정은 개화 정책을 서두르면서도, 『조선책략』에 대한 유생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시찰은 조용히 준비하고, 청에는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미국과의 수교 문제를 청과 상의하는 일을 함께 맡겼습니다.

    전개

    1881년 음력 4월 박정양·어윤중·홍영식 등 관리 12명과 수행원을 합쳐 60여 명이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유생들의 반발을 피하려고 겉으로는 동래 암행어사로 임명해 비밀리에 보냈습니다. 이들은 약 넉 달 동안 분야를 나눠 정부 부처, 세관, 조폐국, 공장, 학교, 군대 등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같은 해 음력 9월에는 김윤식이 영선사로 학생·기술자 약 40명을 이끌고 청 톈진으로 가서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와 과학 기술을 배웠습니다.

    조사는 박정양·어윤중·홍영식·조준영·엄세영·강문형·조병직·민종묵·이헌영·심상학·이원회·김용원 등 12명이었습니다. 이들은 각자 내무·외무·재정·군사·세관 등 맡은 분야를 나눠 조사했고, 돌아와 분야별 보고서와 견문 기록을 고종에게 올렸습니다.

    영선사 김윤식은 톈진에 머무는 동안 리훙장과 여러 차례 만나 미국과의 수교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이 논의는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조사 시찰단의 보고서는 이후 개화 정책의 기초 자료가 됐고, 유길준·윤치호처럼 시찰단 수행원으로 갔다가 일본에 남아 공부한 사람도 나왔습니다.

    영선사는 비용 부족과 1882년 임오군란으로 일정을 다 마치지 못하고 일찍 돌아왔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1883년 서울에 근대식 무기 공장인 기기창이 세워졌습니다.

    기기창은 무기를 만들고 고치는 근대식 공장으로, 1884년 무렵 세워진 부속 건물 번사창이 지금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남아 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1년 1월통리기무아문이 설치돼 개화 정책을 맡을 기구가 생겼습니다.
    2. 1881년 초조사 12명을 겉으로는 동래 암행어사로 임명해 일본 시찰을 비밀리에 준비했습니다.
    3. 1881년 음력 4월조사 시찰단이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4. 1881년 여름도쿄 등지에서 약 넉 달 동안 관청·세관·조폐국·공장·학교·군대를 분야별로 조사했습니다.
    5. 1881년 가을시찰단이 귀국해 보고서와 견문 기록을 올렸습니다. 유길준·윤치호 등은 일본에 남아 공부했습니다.
    6. 1881년 음력 9월김윤식이 영선사로 학생과 기술자를 이끌고 청 톈진으로 떠났습니다.
    7. 1882년 초김윤식이 톈진에서 리훙장과 만나 미국과의 수교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8. 1882년 여름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비용도 부족해 영선사 일행이 일정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9. 1883년영선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에 기기창이 설치됐습니다.

    인물

    • 박정양1841~1905

      조사 시찰단의 한 사람으로 일본의 행정 제도를 조사했습니다.

      온건 개화파 관료입니다. 1887년 초대 주미 공사로 미국에 갔다가 청의 압력으로 소환됐고, 갑오개혁과 대한제국 시기에 내각의 요직을 지냈습니다.

    • 어윤중1848~1896

      조사 시찰단에서 일본의 재정·경제 제도를 맡아 조사했습니다.

      재정 전문가로 이름난 온건 개화파입니다. 갑오개혁 때 탁지부 대신으로 재정 개혁을 이끌었고, 1896년 아관파천 직후 피살됐습니다.

    • 김윤식1835~1922

      영선사로 학생과 기술자를 이끌고 청 톈진에 가서 무기 제조를 배우게 했습니다.

      박규수에게 배운 온건 개화파로 청과의 관계를 중시했습니다. 갑오개혁 때 외부 대신을 지냈고, 병합 뒤 일본의 작위를 받았다가 1919년 3·1 운동 때 조선 독립을 청원하는 글을 일본에 보내 작위를 빼앗겼습니다.

    더 알아두기

    ‘신사 유람단’이라는 이름
    예전에는 ‘신사 유람단’이라고 불렀지만, 구경하러 간 단체가 아니라 관리(조사)가 제도를 조사하러 간 사절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교과서는 ‘조사 시찰단’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36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가 유길준,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가다

    KBS 히스토리 · 6,520회 ·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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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유길준을 중심으로 조사 시찰단의 일본 방문을 다룬 영상한국사입니다.

  4. 1월

    정치음력 1880년 12월

    통리기무아문 설치와 별기군 창설

    1881.1 ~ 1881

    개화 정책을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을 두고 아래에 12사를 설치했습니다. 몇 달 뒤(1881년 음력 4월) 일본인 교관이 훈련하는 신식 군대 별기군을 만들었습니다.

    배경

    2차 수신사가 가져온 『조선책략』과 일본 사정 보고를 계기로, 고종과 조정은 외교와 개화 정책을 전담할 새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존 의정부와 6조 체제로는 외국과의 교섭, 신식 군대, 무역 같은 새 업무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새 기구의 모델은 청이 1861년 외교를 맡기려고 만든 총리아문이었습니다. 조선은 기존 관청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 기구를 얹는 방식을 택해, 개화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면서도 기존 제도와 부딪히는 문제를 줄이려 했습니다.

    전개

    1880년 음력 12월(양력 1881년 1월) 청의 총리아문을 본뜬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 사대사·교린사·군무사·통상사 등 12사를 두어 외교·군사·통상·기계 제조 등을 나눠 맡게 했습니다.

    1881년 음력 4월에는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습니다. 양반 자제 중에서 뽑은 80여 명을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가 훈련시켰습니다. 이와 함께 기존 5군영을 무위영·장어영 두 영으로 줄였습니다.

    통리기무아문의 총책임자인 총리대신은 영의정 이최응이 맡았습니다. 12사는 사대사(청과의 외교), 교린사(일본 등과의 외교), 군무사(군사), 변정사(국경), 통상사(무역), 군물사(무기), 기계사(기계 제조), 선함사(선박), 기연사(해안 경비), 어학사(외국어), 전선사(인재 선발), 이용사(재정)로 나뉘었습니다.

    별기군은 서울 하도감에서 신식 소총을 들고 서양식 훈련을 받았습니다.

    결과와 의미

    통리기무아문은 개화 정책을 이끄는 중심 기구가 됐지만, 이 과정에서 민씨 척족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별기군은 좋은 대우를 받은 반면 구식 군인들은 인원이 줄고 급료도 밀려 불만이 쌓였고, 이것이 1882년 임오군란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모두 없앴습니다. 군란 뒤 외교는 통리아문(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내정은 통리내무아문으로 나뉘어 다시 설치됐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0년 가을2차 수신사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들여왔고, 조정은 개화 정책을 맡을 기구를 논의했습니다.
    2. 1881년 1월(음력 1880년 12월)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12사를 두었습니다. 총리대신은 영의정 이최응이 맡았습니다.
    3. 1881년 음력 4월신식 군대 별기군을 창설하고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에게 훈련을 맡겼습니다.
    4. 1881년 말5군영을 무위영과 장어영 두 영으로 줄였습니다.
    5. 1882년 7월임오군란이 일어나 호리모토와 이최응이 살해됐고, 다시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이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없앴습니다.
    6. 1882년 말외교를 맡는 통리아문(뒤의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과 내정을 맡는 통리내무아문이 새로 설치됐습니다.

    인물

    • 이최응1815~1882

      영의정으로 통리기무아문의 총리대신을 맡아 개화 정책을 이끌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형입니다. 대원군과 달리 고종의 친정 이후 민씨 정권과 함께하며 개항과 개화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봉기한 군인들에게 살해됐습니다.

    •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

      일본인 교관으로 별기군을 훈련시켰습니다.

      일본 육군 소위로 공사관 소속 무관이었습니다. 별기군에 서양식 군사 훈련을 가르치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군인들에게 살해됐습니다.

    더 알아두기

    별기군은 ‘왜별기’로 불렸다
    일본인 교관이 가르치고 옷과 무기가 신식이어서 당시 사람들은 별기군을 ‘왜별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대한 반감과 구식 군인들의 소외감이 겹쳐, 임오군란 때 교관 호리모토가 살해됐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개화파(온건·급진)음력과 양력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31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고종의 통리기무아문 설치와 개화정책

    KBS 히스토리 · 1.3만회 ·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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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85%추천 ★★★★★

    통리기무아문 설치와 개화 정책을 다룬 영상한국사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EBS(사회탐구)한국사-통리기무아문이란 무엇이고 어떤일들을 했나?

    EBSi · 8,631회 ·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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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최태성의 EBS 강의로 통리기무아문의 설치와 역할을 설명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고1 한국사] 3단원 4차시│개화파의 형성│통리기무아문

    워니비 · 7.8만회 ·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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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5%추천 ★★★★★

    개화파 형성과 함께 통리기무아문을 가르치는 수업입니다.

    해설·교양 · 만화

    1년치 급여 밀리고 밑장빼기한 옛날 군대가 FLEX 해버렸지 뭐야.. | 임오군란, 통리기무아문, 별기군 | 핵심 in 한국사

    EBSi · 1.3만회 ·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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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5%추천 ★★★★★

    EBSi 애니메이션으로 별기군과 통리기무아문, 임오군란을 잇습니다.

    해설·교양 · 강의

    #개화냐 #척사냐 갈림길에 놓인 조선(#통리기무아문~#위정척사운동 정리)

    역사길잡이최재원샘 · 1.9만회 ·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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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60%추천 ★★★★★

    통리기무아문부터 위정척사 운동까지 흐름을 정리합니다.

  5. 3월

    운동음력 2월

    영남 만인소

    이만손을 비롯한 영남 유생 1만여 명이 『조선책략』 유포와 미국과의 수교 논의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위정척사 운동이 전국으로 번졌고, 정부는 주동자를 처벌했습니다.

    배경

    1880년 김홍집이 들여온 『조선책략』을 조정이 전국에 돌려 읽게 하고 미국과의 수교를 추진하자, 성리학 질서를 지키고 서양·일본 세력을 배척해야 한다는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들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영남은 퇴계 이황의 학맥을 잇는 유학자가 많은 지역이어서 성리학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특히 강했습니다. 조정이 『조선책략』을 관리와 유생들에게 돌려 읽게 하자, 이 책을 조정의 공식 방침으로 받아들인 영남 유생들은 각 고을에서 뜻을 모아 연명 상소를 준비했습니다.

    전개

    1881년 음력 2월 경상도 유생 이만손을 대표(소두)로 영남 각지 유생들이 이름을 올린 상소가 조정에 올라왔습니다. 1만 명에 가까운 이름이 올라 ‘만인소’라 불립니다. 상소는 『조선책략』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이를 들여온 김홍집의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영남 만인소를 계기로 경기·충청·전라·강원 등지에서도 비슷한 상소가 잇따랐습니다. 강원도 유생 홍재학은 국왕의 정책까지 직접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상소는 『조선책략』이 권한 대로 러시아를 적으로 삼고 미국을 끌어들이면 오히려 새로운 위험을 부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본은 이미 조선의 지형을 잘 알고 있어 경계해야 할 나라이며, 서양 종교인 천주교가 퍼질 것도 걱정했습니다. 상소를 올린 유생들은 궁궐 앞에 엎드려 답을 기다렸습니다.

    결과와 의미

    고종은 척사의 뜻을 밝히는 윤음을 내려 유생들을 달래는 한편, 주동자를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이만손은 유배됐고, 홍재학은 처형됐습니다. 같은 해 흥선대원군 쪽 인물들이 고종을 몰아내려 한 모의가 드러나 관련자가 처벌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반대를 누르고 개화 정책을 이어 가 이듬해 미국과 조약을 맺었지만, 개화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더 깊어졌습니다.

    고종은 1881년 음력 5월 척사윤음을 내려 바른 학문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생들을 달래려는 조치였고, 개화 정책 자체를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해 음력 8월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자로 난 맏아들 이재선을 왕으로 세우려 한 안기영 등의 모의가 드러나, 이재선은 사사되고 관련자들은 처형됐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0년 가을조정이 김홍집이 들여온 『조선책략』을 관리와 유생들에게 돌려 읽게 했습니다.
    2. 1881년 초영남 각 고을 유생들이 상소에 이름을 올리며 뜻을 모았습니다.
    3. 1881년 3월(음력 2월)이만손을 소두로 한 영남 만인소가 올라왔습니다. 김홍집의 처벌과 『조선책략』의 배척을 요구했습니다.
    4. 1881년 봄~여름경기·충청·전라·강원 등 여러 도의 유생들이 비슷한 상소를 잇달아 올렸습니다.
    5. 1881년 음력 5월고종이 척사윤음을 반포해 유생들을 달랬습니다.
    6. 1881년 가을강원도 유생 홍재학이 국왕까지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처형됐습니다.
    7. 1881년 음력 8월이재선을 추대하려 한 안기영 등의 모의가 드러나 관련자들이 처벌됐습니다.
    8. 1882년 5월반대 속에서도 조선은 미국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사료로 읽기

    “미국은 우리가 원래 잘 모르던 나라입니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의 종용을 받아 우리 스스로 (미국을) 끌어들여 풍랑과 바다의 온갖 험난함을 무릅쓰고 건너와서 우리 신하들을 피폐하게 하고 우리 재물을 자꾸 없앨 것입니다.”
    — 영남 만인소(1881), 우리역사넷 번역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공연히 남이 이간질하는 말을 믿었다가 우리의 체통이 손상되는 바가 클 것입니다.”
    — 영남 만인소(1881), 우리역사넷 번역『조선책략』이 러시아를 가장 큰 위협으로 본 것에 반박한 대목입니다.

    인물

    • 이만손1811~1891

      영남 만인소의 소두(대표)로 상소를 이끌었습니다.

      경상도 안동 지역의 유학자입니다. 상소를 주도한 죄로 유배됐다가 뒤에 풀려났습니다.

    • 홍재학1848~1881

      강원도 유생 대표로 개화 정책과 국왕을 강하게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위정척사 사상가 이항로·김평묵의 학맥을 이은 유생입니다. 상소 내용이 문제가 돼 1881년 처형됐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위정척사 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주 수호의 의미를 강조하는 쪽

    외세가 조선을 침략하려는 위험을 경계하고 나라의 주체성을 지키려 한 운동이었으며, 뒤의 항일 의병으로 이어진 저항 정신의 뿌리였다고 봅니다.

    보수·쇄국의 한계를 강조하는 쪽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와 성리학 체제를 지키는 데 목적이 있어, 근대 문물을 배워 나라를 강하게 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에 대안을 내지 못했고 개화 정책을 늦췄다고 봅니다.

    더 알아두기

    위정척사란
    ‘바른 것(성리학)을 지키고 사악한 것(서양 종교·문물)을 물리친다’는 뜻입니다. 1860년대 통상 반대, 1870년대 개항 반대(최익현), 1880년대 개화 정책 반대(영남 만인소), 1890년대 이후 항일 의병 운동으로 시기마다 모습을 바꿔 이어졌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위정척사

    해설·교양 · 해설

    조선책략의 유포와 영남 만인소

    신인섭 · 8,418회 ·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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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조선책략 유포와 영남 만인소를 짧게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다큐

    역사채널e - The history channel e_만 명의 외침, 만인소

    EBSCulture (EBS 교양) · 2.6만회 ·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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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45% · 간접 관련추천 ★★★★★

    만인소 전반을 다루고 1881년 영남 만인소는 일부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KBS 역사스페셜 – 길이 100미터의 상소문, 만인소 / KBS 20100911 방송

    KBS 히스토리 · 6.4만회 · 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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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30% · 간접 관련추천 ★★★★★

    정조 때 사도세자 관련 만인소를 다루며 영남 만인소는 아닙니다.

  6. 1882

    5.22

    조약음력 4월 6일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청의 알선으로 조선이 서양 나라와 맺은 첫 조약입니다. 치외 법권과 최혜국 대우를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지만, 분쟁이 생기면 서로 돕는다는 거중 조정 조항이 들어갔습니다.

    • 이듬해 민영익 등 보빙사를 미국에 보냈습니다. 이어 영국·독일(1883), 러시아(1884), 프랑스(1886)와도 조약을 맺었습니다.

    배경

    『조선책략』 이후 조정 안에서는 미국과 수교하자는 의견이 커졌습니다. 청의 북양 대신 리훙장도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면 조선이 서양 나라와 조약을 맺는 것이 청에 유리하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주선했습니다. 미국은 1871년 신미양요 이후에도 조선과의 수교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전개

    조약 문안은 청 톈진에서 리훙장과 미국 해군 제독 슈펠트가 사실상 먼저 협의했습니다. 청은 ‘조선은 청의 속방’이라는 조항을 넣으려 했지만 미국이 반대해 빠졌고, 대신 조선 국왕이 이를 밝히는 별도의 편지를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습니다.

    1882년 5월 22일(음력 4월 6일) 제물포에서 조선 대표 신헌·김홍집과 슈펠트가 14개 조항의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청의 마건충이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한쪽이 제3국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면 다른 쪽이 좋게 해결되도록 돕는다는 거중 조정(제1관), 미국인에 대한 영사 재판권, 그리고 조선이 다른 나라에 준 가장 좋은 조건을 미국에도 자동으로 준다는 최혜국 대우였습니다.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는 조항도 들어갔습니다.

    결과와 의미

    조선이 서양 나라와 맺은 첫 조약입니다. 영사 재판권과 한쪽에만 적용되는 최혜국 대우가 있어 불평등 조약이었지만, 관세 자주권을 일부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강화도 조약보다는 나은 조건이었습니다.

    이 조약은 이후 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 등과 맺은 조약의 본보기가 됐고, 최혜국 대우 조항 때문에 한 나라에 준 특권이 다른 나라에도 차례로 퍼지게 됐습니다. 이듬해 조선은 답례로 보빙사를 미국에 보냈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1. 1880년 5월슈펠트가 부산에 와서 일본을 통해 조선에 수교를 요청했지만 조선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 1880년 여름리훙장이 슈펠트를 톈진으로 불러 조선과의 수교를 청이 주선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3. 1882년 초톈진에서 영선사 김윤식이 리훙장과 조약 문제를 논의했고, 리훙장과 슈펠트가 조약 문안을 협의했습니다.
    4. 1882년 5월슈펠트가 군함을 타고 제물포에 도착했고, 청의 마건충도 함께 왔습니다.
    5. 1882년 5월 22일(음력 4월 6일)제물포에서 신헌·김홍집과 슈펠트가 14개 조항의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6. 1883년 5월초대 미국 공사 푸트가 서울에 와서 비준서를 교환했습니다.
    7. 1883년 7월조선이 답례로 민영익 등 보빙사를 미국에 보냈습니다.

    사료로 읽기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 및 그 인민은 각각 모두 영원히 화평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타국의 어떠한 불공평이나 경멸하는 일이 있을 때에 일단 통지하면 서로 도와주며, 중간에서 잘 조처하여 두터운 우의를 보여 준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제1관(1882), 우리역사넷 번역거중 조정 조항입니다. 원문은 ‘若他國有何不公輕藐之事, 一經照知, 必須相助, 從中善爲調處’입니다.
    “대조선국 군주가 어떠한 은혜로운 정사와 은혜로운 법 및 이익을 다른 나라 혹은 그 상인에게 베풀 경우 … 미국 관원과 백성이 일체 균점(均霑)하는 것을 승인한다.”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제14관(1882), 우리역사넷 번역최혜국 대우 조항입니다. 조선이 다른 나라에 준 혜택을 미국도 똑같이 누리게 했습니다.

    인물

    • 슈펠트(Robert W. Shufeldt)1822~1895

      미국 전권 대사로 조약을 협상하고 서명했습니다.

      미국 해군 제독입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조사로 조선과 인연을 맺었고, 여러 해 동안 조선과의 수교를 추진했습니다.

    • 리훙장(李鴻章)1823~1901

      조약 문안을 미국과 먼저 협의하며 체결을 주선했습니다.

      청 말기 외교·군사를 쥔 실력자로 북양 대신이었습니다. 조선 정책을 사실상 총괄했으며, 뒷날 청일 전쟁 패배 뒤 시모노세키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거중 조정 조항의 의미

    외교적 안전장치로 의미를 두는 쪽

    조선이 강대국 사이에서 기댈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얻은 것이며, 고종이 이후 미국에 도움을 거듭 요청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고 봅니다.

    실효가 없었다고 보는 쪽

    ‘돕는다’는 약속일 뿐 구속력이 없었고, 실제로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무렵 일본의 한국 지배를 묵인했습니다. 조선이 이 조항에 지나친 기대를 걸었다고 지적합니다.

    더 알아두기

    최혜국 대우란
    조약을 맺은 상대에게 다른 어느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조선만 이 의무를 지는 일방적 형태여서, 뒤에 누구에게 새 특권을 주면 미국도 저절로 같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알고 보면 쉬운 개념불평등 조약치외 법권(영사 재판권)최혜국 대우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33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고종이 미국에 호의를 갖다

    KBS 히스토리 · 1.1만회 ·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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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조미 조약 체결 과정을 다룬 영상한국사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역사스페셜 — 1882 조선은 왜 미국과 조약을 맺었나

    KBS 히스토리 · 5만회 · 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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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0%추천 ★★★★★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체결 배경과 과정을 다룬 역사스페셜입니다.

    해설·교양 · 다큐

    영상한국사 I 034 중국인 영어통역으로 진행된 조미수호통상조약

    KBS 히스토리 · 5,700회 ·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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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KBS 영상한국사로 중국인 통역을 거친 조약 체결 과정을 봅니다.

    해설·교양 · 강의

    오늘009_[이벤트 종료]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큰별쌤의 오늘

    최태성 2TV · 1.5만회 ·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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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2%추천 ★★★★★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정면으로 다룬 짧은 강의입니다.

    해설·교양 · 강의

    [큰별쌤의 오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스터디요 · 6,294회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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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95%추천 ★★★★★

    조약의 거중 조정과 최혜국 대우 조항을 2분 남짓 정리합니다.

    해설·교양 · 강의

    [역사시험대비특강]#강화도조약부터 #조미수호통상조약까지(#조일수호조규부록,#조일무역규칙,#조일통상장정 쉽게 정리)

    역사길잡이최재원샘 · 3.8만회 ·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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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분석일치도 55%추천 ★★★★★

    강화도 조약부터 조미 조약까지 여러 조약을 묶어 정리합니다.

이 시기의 핵심 개념 6개

사건 설명에 나오는 말을 풀었습니다. 사건 밑의 개념 이름을 누르면 여기로 옵니다.

위정척사

'바른 것(성리학)을 지키고 사악한 것(서양 문물)을 물리친다'는 보수 유생의 사상입니다.

이항로·기정진 등에서 비롯해 시기마다 모습을 바꿨습니다. 1860년대에는 서양과의 통상 반대(척화), 1870년대에는 일본과의 개항 반대(최익현의 왜양일체론), 1880년대에는 『조선책략』 반대(영남 만인소), 1890년대 이후에는 의병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외세 침략에 맞선 자주 의식이 강했다는 평가와 함께,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한계도 함께 지적됩니다.

해설

위정척사운동 한번에 다보기 l 근대 한국사 8부

로빈의 역사 기록 / Robin's Historical · 5.4만회 ·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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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고1 한국사] 3단원 5차시│위정척사파│임오군란│

워니비 · 7.5만회 ·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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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빡공시대 중3역사2[1-1](2)조선의 문호개방 및 개화사상과 위정척사사상(2021)-음질개선판

빡공시대TV · 58.7만회 · 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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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온건·급진)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바꾸자는 세력으로, 방법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온건 개화파(김홍집·김윤식·어윤중)는 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유교 질서 위에 서양 기술만 받아들이자고 했습니다(동도서기). 청의 양무운동이 본보기였습니다.

급진 개화파(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는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 제도까지 바꾸자고 했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삼아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개화사상의 뿌리는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 북학파 실학의 전통에서 찾습니다.

해설

개화파의 형성과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 l 근대 한국사 7부

로빈의 역사 기록 / Robin's Historical · 6.6만회 ·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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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고1 기말에 무조건 나오는 개화정책 10분정리 | 빡공시대 고등한국사

빡공시대TV · 7.5만회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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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과 양력

달의 모양을 기준으로 한 달력(음력)과 해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달력(양력)입니다.

조선이 쓰던 달력은 달의 차고 기움으로 달을 정하고 윤달을 넣어 계절을 맞추는 태음태양력이었습니다. 1896년 1월 1일부터 나라의 공식 달력을 태양력으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1895년 이전 사건은 기록된 음력 날짜와 양력 날짜가 한 달 넘게 차이 납니다. 이 연표는 순서가 뒤섞이지 않도록 모두 양력으로 적고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표시했습니다.

해설

양력과 음력은 어떻게 다른가요?

3분차이 · 8.8만회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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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왜 설날 날짜는 매년 제멋대로일까? 음력은 사실 '달'만 보는 달력이 아니다 (태음태양력의 반전)

안될과학 Unrealscience · 7.4만회 ·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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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조약

한쪽 나라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담은 조약입니다.

대표적인 조항은 치외 법권(영사 재판권), 최혜국 대우, 관세 자주권 부정입니다. 서양 열강이 19세기 아시아 나라들과 맺은 조약에 흔했고, 일본도 1850년대 미국과 이런 조약을 맺었다가 뒤에 고쳤습니다.

조선이 맺은 강화도 조약(1876),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해설

각국과의 불평등 조약 체결 l 근대 한국사 6부

로빈의 역사 기록 / Robin's Historical · 5.2만회 ·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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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일본의 ′무력시위′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 = ′강화도 조약′ 차이나는 클라스 118회

교양 Voyage · 4.8만회 ·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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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일본의 근대화 3 - 불평등 조약과 "존왕양이"파의 등장 (천황 vs 막부!) [동글동글 세계사]

(구) 동글동글 세계사 · 8.3만회 ·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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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외 법권(영사 재판권)

외국인이 머무는 나라의 법이 아니라 자기 나라 법으로 재판받는 권리입니다.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죄를 지어도 조선 관리가 재판할 수 없고 일본 영사가 재판했습니다. 조선의 사법 주권을 해치는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입니다.

최혜국 대우

다른 나라에 준 가장 좋은 조건을 이 나라에도 자동으로 준다는 조항입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에 처음 들어갔습니다. 조선이 어느 한 나라에 이권을 주면 조약을 맺은 다른 나라들도 같은 이권을 요구할 수 있어, 열강의 이권 침탈이 연쇄적으로 번지는 통로가 됐습니다.

사실은 교과서와 공적 기관 서술을 기준으로 적었고, 평가가 갈리는 부분은 양쪽 견해를 함께 적었습니다. 1895년 이전 날짜는 양력이며 원래 음력 날짜를 따로 적었습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재생되며 조회수는 2026-09-24 기준입니다. 영화·드라마는 공식 예고편이고, 극에는 사실에 창작이 더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