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
북한 특수 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서울 세검정 부근에서 저지됐습니다. 이틀 뒤에는 북한이 동해에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습니다.
- 이후 향토 예비군(1968.4)이 창설되고 주민 등록증이 발급되기 시작했습니다(1968.11).
배경
1960년대 후반 북한은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의 관심이 분산된 틈을 타 남한에 대한 무력 도발을 크게 늘렸습니다. 비무장 지대 일대에서의 교전과 무장 간첩 침투가 잇따랐고, 특수 부대를 이용한 공작도 강화했습니다.
전개
1968년 1월 북한 민족 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 부대원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목표는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해치는 것이었습니다. 1월 21일 밤 9시 30분 무렵 이들은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세검정 고개 부근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았고,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종로 경찰서장 최규식 총경 등이 숨졌습니다.
이후 소탕 작전으로 29명이 사살되고 1명(김신조)이 생포됐으며 1명은 북으로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쪽은 군인·경찰·민간인을 합쳐 30명가량이 숨졌습니다.
이틀 뒤인 1월 23일 북한은 원산 앞바다에서 미 해군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습니다. 승조원 1명이 숨지고 82명이 억류됐다가, 미국이 영해 침범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한 뒤 12월 23일 풀려났습니다. 선체는 지금도 북한에 있습니다.
결과와 의미
정부는 안보 체제를 크게 강화했습니다. 1968년 4월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고, 11월부터 주민 등록증이 발급됐으며,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군사 훈련인 교련이 실시됐습니다. 북한에 보복하기 위한 비밀 부대(684부대)도 만들어졌습니다.
한편 미국이 푸에블로호 문제를 북한과 직접 협상하고 청와대 습격에는 강하게 대응하지 않자, 한국 정부는 미국에 불만을 드러냈고 자주 국방을 강조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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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김신조1942~2025
최규식1932~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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