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 전쟁
만주와 한반도를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입니다. 대한제국은 전쟁 직전 국외 중립을 선언했지만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했고, 일본이 이겨 포츠머스 조약으로 끝났습니다.
- 포츠머스 조약에서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도·보호·감리권을 인정했습니다.
배경
청일 전쟁 뒤 러시아는 삼국 간섭으로 일본을 견제하고, 만주에 철도를 놓고 뤼순·다롄을 빌려 세력을 넓혔습니다. 1900년 의화단 운동을 계기로 만주에 군대를 보낸 러시아는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았고, 1903년에는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를 점령해 조차를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영일 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했습니다. 한국과 만주를 두고 두 나라가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하지 못했고, 전쟁 위기가 커졌습니다.
전개
대한제국은 1904년 1월 21일 전쟁이 나도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는 국외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2월 8일 뤼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하고, 2월 9일 제물포 앞바다에서 러시아 군함을 공격했으며, 같은 날 일본군이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일본은 2월 10일 선전 포고를 했습니다.
일본은 2월 23일 한일 의정서를 강요해 한국 땅을 군사 기지로 쓸 수 있게 했고, 8월에는 제1차 한일 협약으로 고문을 두었습니다. 전쟁은 만주에서 이어져 1905년 1월 뤼순 요새가 함락됐고, 3월 펑톈(봉천) 전투에서도 일본이 이겼습니다.
1905년 5월 27~28일 유럽에서 먼 길을 돌아온 러시아 발트 함대가 대한 해협(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에 크게 졌습니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을 계속할 여력이 부족해지자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중재에 나섰고, 1905년 9월 5일 미국 포츠머스에서 강화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결과와 의미
포츠머스 조약에서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도·보호·감리권을 인정하고, 뤼순·다롄 조차권과 창춘 이남 철도, 사할린 남부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전쟁 중 일본은 1905년 2월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했고,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의, 8월 제2차 영일 동맹으로 영국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한국을 둘러싼 열강의 견제가 사라지자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습니다.
아시아 국가가 유럽 강대국을 이긴 이 전쟁은 여러 식민지 민족에게 충격을 주었고, 러시아에서는 1905년 혁명의 한 원인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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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기
“러시아 제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탁월한 이익을 갖는다는 것을 승인하고 일본 제국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이를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정한다.”
인물
고종1852~1919
이토 히로부미1841~1909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대한제국의 중립 외교는 의미가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