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경제와 삼백 산업
미국의 원조 물자인 밀·설탕 원료·면화를 가공하는 제분·제당·면방직의 '삼백 산업'이 성장했습니다. 1950년대 후반 무상 원조가 줄면서 경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배경
6·25 전쟁으로 공장과 도로, 다리, 주택 상당수가 부서졌고, 정부는 세금만으로 나라 살림과 복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냉전 속에서 한국을 반공의 최전선으로 보고 대규모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해방 뒤부터 1960년 무렵까지 미국의 원조는 모두 수십억 달러에 이르렀고, 1950년대 중반에는 나라 전체 수입의 대부분을 원조로 들여왔습니다.
전개
원조는 대부분 돈이 아니라 밀가루·원면(목화)·원당(설탕 원료) 같은 소비재와 원료로 들어왔습니다. 정부는 이를 팔아 생긴 돈을 ‘대충 자금’이라는 계정에 쌓아 국방비와 재정에 썼습니다. 원조 물자를 가공하는 제분·면방직·제당 공업이 크게 자랐고, 밀가루·면직물·설탕이 모두 흰색이어서 이를 ‘삼백(三白) 산업’이라고 불렀습니다.
1956년 무렵부터는 미국의 남는 농산물을 들여오는 원조가 늘었습니다. 원조 물자와 달러를 누구에게 나눠 주느냐, 적산(일본인이 남기고 간 재산)을 누구에게 싸게 넘기느냐가 기업 성장에 결정적이어서,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유착 논란이 일었습니다.
결과와 의미
원조 덕분에 전후 복구가 이뤄지고 소비재 공업이 자리를 잡았으며, 오늘날 대기업 가운데 일부가 이 시기 제당·제분·방직으로 성장의 기반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값싼 원조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국내 밀과 목화 재배가 크게 줄고 곡물값이 낮아져 농촌 경제가 어려워졌습니다.
미국이 국제 수지 문제 등으로 1957년 무렵부터 무상 원조를 줄이고 유상 차관 쪽으로 바꾸자, 원조에 의존하던 산업이 어려워지고 1950년대 말 경기가 크게 나빠졌습니다. 이 경제 불안은 4·19 혁명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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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백두진1908~1993
이병철1910~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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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원조 경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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