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 학당·이화 학당·육영 공원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 학당(1885)을, 스크랜튼 부인이 여성 교육 기관 이화 학당(1886)을 세웠습니다. 정부는 미국인 교사를 초빙해 관립 학교 육영 공원(1886)을 열었습니다.
배경
개항 뒤 외국어와 새 학문을 아는 인재가 필요해졌습니다. 1883년 원산 주민들이 원산학사를, 정부가 통역관을 기르는 동문학을 세웠습니다. 1880년대 중반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며 교육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공개적인 선교는 아직 허용되지 않아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통해 활동했습니다.
전개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1885년 8월 학생 두 명을 데리고 서울 정동에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887년 무렵 고종이 ‘인재를 기르는 집’이라는 뜻의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습니다.
같은 교단의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스크랜튼 부인)은 1886년 5월 학생 한 명으로 여성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꺼리던 때라 처음에는 가난한 집 아이나 고아가 많았습니다. 1887년 명성황후가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습니다.
정부는 1886년 9월 미국인 교사 헐버트·길모어·벙커를 초빙해 관립 학교 육영 공원을 열었습니다. 현직 관리(좌원)와 양반 자제(우원)를 뽑아 영어와 수학·지리·정치 등을 가르쳤습니다.
결과와 의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서양식 교과와 한글·영어를 가르치며 근대 교육을 퍼뜨렸고, 이화학당은 우리나라 여성 교육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두 학교는 오늘날 배재고등학교·배재대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대학교로 이어집니다.
육영 공원은 양반 자제만 받아 폭이 좁았고, 학생들의 의욕 부족과 재정난 속에 1894년 문을 닫았습니다. 근대 교육이 전국에 제도로 자리 잡은 것은 1895년 교육 입국 조서 이후였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인물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1858~1902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1832~1909
헐버트(Homer B. Hulbert)1863~1949
더 알아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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