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해체
취임 직후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 출신 장성들을 대거 물러나게 했습니다. 군의 정치 개입을 막는 계기가 됐습니다.
배경
하나회는 1960년대 초 육군사관학교 11기인 전두환·노태우·정호용·김복동 등이 중심이 돼 만든 군 내부의 비밀 사조직입니다. 주로 영남 출신 정규 육사 장교들로 기수마다 회원을 뽑았고, 서로 끌어 주며 군의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하나회 회원들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의 핵심 세력이었고, 제5·6공화국 동안 군과 정부의 주요 자리를 맡았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군이 다시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는 걱정이 계속됐습니다.
1973년에는 하나회 후원자로 알려진 윤필용 수도 경비 사령관이 쿠데타 모의 의혹으로 처벌받으면서 하나회 회원 일부가 군복을 벗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던 전두환 등 핵심 인물은 살아남았습니다. 12·12 이후 하나회 출신들은 육군 참모 총장, 보안 사령관, 수도 경비 사령관 같은 핵심 지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전개
1993년 2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11일 만인 3월 8일 김진영 육군 참모 총장과 서완수 국군 기무 사령관을 갑자기 교체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회 출신이었습니다.
4월 2일에는 수도 방위 사령관과 특전 사령관이 교체됐고, 이후 몇 달 동안 하나회 출신 장성들이 잇따라 요직에서 밀려나거나 전역했습니다. 4월 초에는 하나회 회원 명단이 적힌 전단이 군인 아파트에 뿌려져 조직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교체는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통해 진행됐습니다. 인사 발표는 예고 없이 이뤄졌고, 군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전격 인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1993년 한 해 동안 하나회 출신 장성 여럿이 요직에서 물러나거나 전역했습니다.
결과와 의미
하나회는 사실상 해체됐고, 이후 군 인사에서 사조직의 영향력은 크게 줄었습니다. 이 조치 이후 한국에서는 군사 정변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군이 민간 정부의 통제를 받는 원칙이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같은 시기 김영삼 정부는 무기 도입 사업(율곡 사업) 비리를 감사해 전직 국방부 장관 등을 처벌했습니다. 1995~1997년 12·12와 5·18에 대한 사법 처리도 이어졌습니다.
날짜로 따라가기
인물
김영삼1927~2015
권영해1937~
김진영
평가가 갈리는 부분 — 입장을 나란히 적습니다
하나회 해체 방식에 대한 평가